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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수 Feb 27. 2021

배우자의 조건: 조건 없는 사랑

unconditional love?


어떤 사람이 좋아요?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하는가. 키 크고 잘생긴 사람, 착하고 나랑 잘 맞는 사람, 능력 있거나 똑똑한 사람?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그 많은 조건들 중에서 내가 선호하는 바를 딱 3가지로 줄여보라는 말을 들었다. 열심히 교회를 다니는 친구는 그렇게 함축하여 배우자 기도를 하다 보니 사랑하는 짝을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무교에 가까운 나는 처음에는 그 말이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말하는 대로’라는 노래처럼 말을 내뱉으면 그 길을 향해 어느새 행동하고 있다. 그 말에 나의 의지가 담겨서일까. 내가 원하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그렸기에 그에 맞는 사람을 찾게 되는게 아닐까. 때문에 어느 순간 저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껴졌다.


반드시 이성이 아니더라도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 서로 맞는 가치가 있어서일 테다. 같이 있으면 즐겁다던지 취미생활이나 성향이 비슷해서 흥미롭고 편하다던지.


나의 배우자 조건은 이 세 가지였다. 1. 나와 잘 맞고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사람 2. 능력 있어도 겸손한 사람 3. 가족들도 좋아할 사람


이렇게 몇 가지 ‘조건’, 다시 말해 내게 중요한 가치를 고르고 나면, 그 뒤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또 찾게 된다. 조건 없는 사랑은 어떤 것일까? 요즘 세상에도 있긴 한 걸까?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세상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은 흔치 않지만 또 없지는 않다.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은 흔치 않기 때문에 만났을 때 고맙고 귀하게 여겨진다.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모성애, 내게 돌려받는 것이 없어도 다른 사람을 챙기는 사람들, 그리고 적어도 내 사람에게는 잘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배우자를 만나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오히려 점점 회의감에 빠졌다. 회사 선배는 나이가 들수록 대충 조건을 맞춰 결혼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혼란스러웠다. 10년, 20년을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남은 인생은 많으면 70년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결혼을 하면 내 마음이 그동안 한결같을까?


대충 만나 참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대충 맞춰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느꼈다. 그리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와 가치도 맞고 사랑에 빠질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만큼 흔치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성적으로 봤을 때 내가 집에만 있다면 그런 사람은 더더욱 만나지 못하리라. 때로는 지치기도 했지만 그때는 쉬어가며 차라리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혼자 살겠어” 하는 마음을 먹었고 주변에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다 보니 오래 걸렸지만 만나게 되었다. 나의 그 사람을. 한 번에 운명처럼 만나서 결혼한 연인들이 부럽긴 했지만 나는 어떤 일에서든 정석대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결말을 맞이하고는 했기 때문에 이 또한 그러리라 싶었다.


서로에게서 조건 없는 사랑을 느낀 계기는 여러 단계가 있었는데 일단 이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던 나의 태도 변화이다.


그는 항상 바쁜 업무로 주로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직장 근처로 자주 찾아가기도 했고, 잠깐만 보고는 또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져야 하곤 했다. 평소 약속을 잘 안 지키면 화를 내는 타입인데도 그런 순간들이 화가 나거나 하지 않았고 기다리는 시간마저 즐거웠다.


왕복 두 시간 일산까지 차를 타고 가서 두 시간을 더 기다려 만나서 저녁만 먹고 오기도 했다. 잠시 ‘내가 왜 이러지?’하면서도 기분이 참 좋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나의 그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며 인정해주고 고마워하는 그의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또 한 번은 내가 지방에서 수술을 받았을 때이다. 그렇게 바쁜 그가 금요일 밤이 되면 일을 마치고 4시간이 넘도록 버스를 타고 와서 간호를 하고 심야 버스를 타고 다시 서울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환자복을 입은 (통통한) 내게 뼈밖에 남지 않았다며 진심을 다해 말하는데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아직도 엄마는 그 말을 하며 놀리신다.)


그때의 감정은 타인에게서는 느껴 본 적이 없는, 처음 느껴본 차원의 감동이었다. 어떻게 가족처럼 저렇게 날 대해줄 수 있지? 하며 결혼을 확신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작게나마 쌓여있던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나 우울감, 그리고 그에 대한 마지막 마음의 담벼락이 허물어짐을 느꼈다.


이 즈음이 첫 만남으로부터 사계절을 보낸 뒤이다. 결혼 적령기였지만 서두르지 않았던 점이 지금 생각해보니 더 좋았던 것 같다. 그 시간만큼 서로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끈끈한 가족애가 생겨 결혼 후에도 크게 다툴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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