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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 Feb 28. 2023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대구, 너를 사랑하다 못해


“자 여기가 김광석거리입니다~ 개인적으로 둘러보시고 30분 뒤에 만나서 출발할게요~”


이런 무성의한 가이드 멘트는 나에게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내가 사랑하는 가이드라는 직업은 장소와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전달하고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저장하게 하는 일이다. 이곳 김광석거리에 왜 왔는지,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왜 그토록 사랑받는지 또 이 지역과 인물에게서 배울 점은 무엇인지 눈을 맞추며 공감을 나누고 작고도 큰 바람을 마음속에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눈에 고인 것이 눈물이든, 떠오르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듯한 얼굴이든, 새로이 알게 된 사실들에 눈을 반짝이며 보이는 호기심이든, 지금 이 순간 이곳으로 여행을 온 것이 정말 잘했다고 확신의 고개를 끄덕이며 보이는 미소든 그런 것들을 보려 가이드를 했었다.


서로 세상에 온 시간이 달라 잘 알지 못했던 가수 김광석에 대해서는 김광석거리를 안내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하는 인물이었다. 가까운 과거에 살았던 사람이든 기원전에 존재했던 인물이든 가슴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가이드로서 설명은 하기야 하겠지만 가슴을 때릴 수는 없다는 확고한 믿음에 늘 인물을, 장소를, 지역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당연히 인터넷의 자료조사로는 왜 만인에게 사랑받는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방법을 바꾸어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엄마, 이모, 친구, 하루 걸러 하루 만나는 택시기사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왜 김광석이 유명해요?”, “그러면 왜 그 사람을 좋아하세요?”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처음엔 다양한 것 같아 보여도 점점 하나로 모아졌다. 시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은 노래들이다, 노래가 너무 좋다, 우리의 이야기를 노래했다 와 같은 것이었다. 김광석이 노래했던 우리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이상할 수 있지만 가사를 듣지 않고 멜로디를 듣는 나에게 가사를 집중하여 노래를 듣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김광석의 4개 정규앨범을 모두 듣고도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이 노래들을 받아들여야 할지, 무언가 큰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을 때 즈음, 김광석 ‘다시 부르기’ 앨범을 듣게 되었다. 대구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다시 부르기 앨범명에서 착안해 다시 그를 ‘그리워하다’는 뜻과 그를 그리워하며 벽에 ‘그림을 그리다’라는 중의적인 의미로 이름 붙여졌다. 김광석거리는 대구 작가들의 그림들이 거리를 가득히 채운다.


다시 부르기 앨범을 듣고 놀란 나는 2년쯤 지난 지금까지도 마치 아이스크림 줄줄 녹아 흐르듯 흐른 그 마음이 생생히 느껴진다. 김광석 사후에 발매된, 공연장에서 했던 그의 말을 모두 수록한 앨범이었다. 그는 노래를 부르기 전이나 노래를 부르고 난 후, 자신이 이 노래를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고, 이 노래를 통해서 관객들이 무엇을 느꼈으면 좋을지 이야기한다. 그 내용은 사람이라면 모두가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누구나 스스로의 나이에 대한 무게는 스스로 감당해 내면서 지냅니다. 10대 때는 거울처럼 지내지요. 자꾸 비추어보고, 흉내 내고. 선생님, 부모님, 또 친구들. 그러다 20대 때쯤 되면 뭔가 스스로를 찾기 위해서 좌충우돌 부대끼면서 지냅니다. 가능성도 있고.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나름대로 기대도 있고. 자신감은 있어서 일은 막 벌이는데, 마무리를 못해서 다치기도 하고, 아픔도 간직하게 되고, 그럽니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유리처럼 지내지요. 자극이 오면 튕겨내 버리든가, 스스로 깨어지든가. 그러면서 아픔 같은 것들이 자꾸 생겨나고, 더 아프기 싫어서 조금씩 비켜나가죠. 피해 가고. 그러면서 지내다 보면 나이에 ‘ㄴ’ 자 붙습니다. 서른이지요. 뭐 그때쯤 되면 스스로의 한계도 인정해야 하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도 뭐 그렇게 재미있거나 신기하거나 그렇지도 못합니다.”


비춰보고 흉내 내었던 거울 같았던 10대와 와장창 수만 번은 깨졌던 유리 같은 나의 20대가 생각났다. 김광석은 노래를 선물하며 우리가 단연 느끼는 젊음의 시간, 아픔의 시간, 행복의 시간들로 우리를 여행까지 하게 한다. 그때 김광석 앞에 앉아있던 관객이 나였다면 지금처럼 노래가사를 안 듣는 일은 없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옛 기억을 끄집어내고 저 사람은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냈을까, 보냈을까 너무나도 궁금해하게 만든 뒤 그는 노래를 시작한다. 그의 노래는 시간여행이며 덮어두었던 기억의 치료약이다. 실제로 그는 많은 사람들을 음악으로 치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느 날 김광석거리를 함께 온 지인이 말했다.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는 서른이 아니라 마흔에 들어야 하는 노래라 한다. 당시 마흔둘이었던 그가 했던 말을 들었을 때도 정확한 연유를 알진 못했다. 서른즈음에를 마흔둘도 공감하게 하는 그의 노래의 매력은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김광석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로 한 날, 가장 처음으로 펼쳐본 책에서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무릎을 탁 쳤던 그날도 생생하다.


김광석 노래를 철학적으로 해석한 책, 『김광석 우리 삶의 노래』에서 저자는 말한다.

‘ “또 하루 멀어져 간다~." 정말 뭔가 소중한 것이 멀어져 가는 것만 같다. (중략)‘서른즈음에’는 삶의 한계를 노래하고 있다. '서른'이란 나이는 인생의 한계를 느끼는 사람의 심리적 순간들 가운데 한 예일뿐이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음을 섬뜩 느끼는 순간이기 때문에 서른이란 한계점은 특별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심리학자는 마흔이야말로 나이의 무게를 절감하는 때라고 한다. 마흔 즈음에 처음으로 죽음의 의미에 대해 심각히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란다. 마흔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 사이에 있는 고비의 시기이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날마다 적어지기 시작한다는 그 어떤 두려움이 문득 드는 때이기도 하다.‘


”뭔가 스스로 가진 한계라는 것… 꼭 나이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

‘서른즈음에’를 부르고 나서 김광석이 했던 이야기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누구나 이등병부터 시작한다. ‘이등병의 편지’는 단순히 군대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탄 청년들만의 이야기뿐 아니라 집을 떠난 우리는 매일 전쟁을 치르고 그에 맞서 싸우는, 군인보다 더한 치열한 생을 어쩌면 살고 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슬프고도 찬란한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반복되는 가사는, 왠지 시작을 앞둔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듯하다. 누구나 인생의 2막, 3막 그 휘장을 치기 전에, 혹은 앞의 장이 끝나고 다음 장이 보이지 않는 나에게도 위로를 건넨다.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비단 노부부의 시선이 아니라 딸의 입장에서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노래다. ‘큰 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방울/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큰딸아이는 자신의 결혼식에서 눈물짓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고 이 노래는 언제까지나 딸을, 엄마를 그 시간으로 수없이 반복적으로 데려가줄 것이다. 아직 그 눈물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이럴 것이다라는 미리 경험하는 엄마의 사랑이 되기도 하겠다.


‘일어나’는 우리가 주저앉은 모든 시간을 소환한다. 잘 일어나기만 하면 그것이 삶이겠는가. 우리는 무릎이 까지고 발목을 삐고 한동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상처가 깊을 때도 있다. 그리고 누구는 일어나기 싫을 때도 있다. 그냥 가만히 놔두라고. 지금 당장 일어나고 싶지 않다고 할 때에도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어나’라는 말은 ‘어이구 내가 일어나고 만다’ 하고 일어나서 봄의 새싹들처럼 싱그러운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아빠는 엄마는 딸은 아들은 그리고 수많은 사회적 이름을 가진 우리는 그렇게 오늘도 일어나고 노래는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멀리 있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도 나와 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그제서야 우리의 삶을 노래했다는 그 말이 나의 마음에 안착했고 우리의 엄마, 아빠들이 그의 노래를 들으며 얼마나 깊은 공감과 많은 마음을 그에게 내려놓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이제는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김광석거리를 안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앨범의 모든 노래를 들었다. 며칠을 영상 속 그의 음성을 들으며 잠에 들었다.



그로부터 대구가이드를 한 지 1년이란 시간이 지날 무렵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가이드하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해외에서 현지가이드를 했을 때에도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여 아쉬움이 컸다. 꿈꿨던 것처럼 해외에서의 가이딩을 보여드린 것은 아니나 자신 있었다. 사랑하는 대구를 향한 나의 시선이 그대로 전해졌는지 몇 차례 갔던 곳에서도 연신 웃음을 보이신다. 대구 1박 2일 투어를 부모님께 선보이며 가장 가슴 떨리는 순간은 첫째 날 밤, 김광석거리에서였다. 김광석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아픈 시간을 꺼내게 해야 했으니까. 설명이 끝난 후 스무여 명의 손님들 사이에서 부모님은 빠르게 사라졌다.

15분 후, 김광석 길 자유시간에 만난 엄마와 아빠의 눈은 아직 젖어있었다.


20분 전. 김광석거리 위 벤치에 앉아있는 손님들께 김광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며 차오르는 감정에 꾹 참고 말을 이어나갔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라는 노래는요, 우리는 많은 것을 잊고 살지요. 살면서 자연스레 잊혀지는 것도 잊지만 꾸역꾸역 잊어야 하는 것도 있어요. 잊어야만 살 수 있는 것이 있어요. 옛사랑이었던 연인도, 힘들었던 친구사이도,


그리고 가족 도요. "





차마 아빠에게 손 내밀며 당신의 아들이 많이 보고 싶은지 이젠 내가 그 몫까지 다하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15년 동안이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내고 있는 아빠의 가슴에 이제야 겨우 용기 내어 인사를 건넸다. 그날 밤, 투어 수신기 너머로 들려드린 그 노래가 아빠를 조금이라도 치유해 드렸기를 소망한다.





김광석의 노래는 나에게 치유이다















참고

김용석, <김광석 우리 삶의 노래>, 천년의 상상,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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