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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 May 02. 2023

이사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8번째 집에서의 이사를 2주 남겨놓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갑작스런 직장이동으로 오랜 노력? 끝에 나갔다. 나갔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부터, 아니 사실 부동산에 내놓은 날부터 요란하게도 싸놓은 짐들이 이젠 곳곳에 널브러져 집을 더 혼란스럽게 하여 언제 한 번 본가에 가져다 놓고 오리라는 생각을 일주일 동안 하고 있다가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실행에 옮겼다. 헉헉


힘들게 가져간 짐은 1/2 정도가 될 것이라 생각했으나, 짐을 옮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돌아온 집은 약간이라도 깔끔해짐은 커녕 그대로였다. 안에 있는 것을 뺐으니 바깥 보이는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옮겨야 되는 짐이 줄었다는 후련함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아직도 정리할 짐이 많다는 생각이 나를 못살게 했다.

자야 하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잠은커녕 빈 상자에 뭐라도 채우려 옷장과 신발장, 수납장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한다. 계속 금방 닫은 서랍장을 다시 열어보곤,


‘누구는 이사 가기 전전날 짐을 잘도 싸는데 왜 나는 몇 달 전부터 이럴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이별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장소에 눈물 흘린다.

집을 떠날 때에도, 도시를 떠날 때에도 눈물이 났다. 살았던 집을 떠나 새 집으로 갈 때도, 더 좋은 집으로 갈 때도, 가득 기대하며 다른 나라로 갈 때에도 늘 너무나 힘든 이별을 하여

‘아. 이별이란 것은 사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구나’를 많이도. 자주도. 꾸역꾸역 도 느꼈다.


그 많은 이별을 감당하고 마주하고 견뎌왔던 나를 토닥여주고 싶다.



내가 계속 상자에 짐을 정리하는 이유는,

이별에 익숙해지도록, 끊임없이 훈련하는 날들이었다. 점점 비어져 가는 집을 보며 마음을 다 잡으려는 내 스스로의 방어였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안되었다.


사람관계도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받을 것을, 아플 것을. 알아서인지

끝나지 않았는데도, 또한 끝날 일이 없는데도 이별을 염두하여 스스로의 다짐을 수차례 해왔고 또 하고 있다.


‘아프지 말아야지.’




모두 의아해하기도 한다.


“또 이사가나?”


잔잔하고도 은근하게도 ‘정착’이라는 조언을 들을 수 있을 만한 이야기다.




#위로의 학문

몇 해 전 접한 ‘명리학’ 은 그 누구보다도 위로가 되었다.


고향을 나가야만 성공하며, 집에만 있으면 병이 든다. 돌아다녀야 한다 등등


누군가는 내게 왜 그렇게 이사를 많이 다니는지, 정착하지 못하는지, 본가가 왜 싫은지, 질문함에도

그리고 내 스스로도 가끔 내가 왜 이런 고달픈 인생을 사는지, 사실 고달프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나 깊은 자괴감 비스무리한 것은 늘 함께 한다.

그럴 때 사주명리라는 것은 참.

원래부터 나라는 사람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오랜 친구처럼 그렇게 ‘괜찮다. 너는 그런 사람이어서 그러는 거다. ’라고 당장의 누구보다 큰 위로를, 이미 운명처럼 이야기한다.



나는 내일도 모레도 짐을 정리할 것이다.

후회 없이, 그리고 아낌없이.

내가 가장 사랑한 이 집에 인사하고 준비된 모습으로 떠날 것이다.

덕분에 또 너무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고,

너와 함께 해서 난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오래도 걸리고 다소 요란한 나만의 이별법을

사랑한다








그리고 남은 올해 동안, 난 또 세 번의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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