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되고 싶다
개인이 무언가를 선택함에 있어 우선적인 가치는 모두 다르다.
장기적으로 또 삶의 목표가, 당장에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 '돈'이 아니겠냐마는 그보다 우리는 매 순간 집중하고도 포기하는 것이 돈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친구는 돈이 모이는 게 너무 좋다 한다. 그 친구는 택시를 절대 타는 법이 없으며 어떻게 하면 돈을 불릴까 많은 시간 고민한다.
어떤 친구는 인생도 사람도 즐거움이 큰 기준이 된다. 그 친구는 그날 얼마를 지출하는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즐거운 친구와 함께하는 것이 먼저이다.
어떤 친구는 지적 욕구가 채워지면 아니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좋아한다. 그와 비판적 사고와 토론을 하자고 하면 택시를 타고 새벽이든 어디든 달려온다.
물론 나의 친구들은 결혼 전이라 보다 여러 가지 모습이 보일 수 있지만,
돈, 즐거움, 앎,.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살게 하는 것은 모두 다르다.
2년 전인가부터 참을 수 없이 '그것'이 아까워 온통 그 생각 속에 살아간 것 같다.
'그것'에 대한 집착은 20살 무렵부터 비스무리한 생각들이 고착화되어 온 것 같다.
매일 재고 따지며 모든 나의 선택의 가장 첫 번째 기준이 되고 자잘한 비용지불이 두렵지 않은 나의 가장 중요한 가치, '그것'은 '시간'이다.
'후회 없이 살자'가 점점 '시간을 후회 없이 쓰자',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나중에 돌아봤을 때 그때 뭐 했지라는 생각은 하면 안 돼'와 같은 생각들로 내 안의 내재된 것들이 점점 살이 붙어 표출되고 분출되었다.
학교-집-카페-시내라는 비교적 한정된 구간 속 생활했던 학생때와는 다르게 직장-집-취미-여행을 이루어가는 보다 넓은 반경을 아우르고 있는 어른이 된 후에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며 원하는 곳에 빠르고 쉽게 가지 못하는 것이 어느 날 문득 '이래서 차를 사는구나' 생각으로 이어졌다.
조선시대,
"암행어사 출두요~~~~~~!!"
할 때 흔히 내밀어 보이는 것은 마패이다. 사실 암행어사만 마패를 지니는 것은 아니고 지방 출장을 간 관원들도 이용한다. 마패는 암행어사의 증표처럼 사용되는데 역마를 사용할 수 있는 증명서이다. 마패에 조각된 수량만큼 역마를 징발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 세 마리가 조각되어 있으면 실제로 말 3필을 사용할 수 있다. 말의 수로 신분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차도 기차도 없는 그 시대에 정보전달을 하거나 받거나 정보가 아니라 내가 이동하려면 가장 빠른 것은 사실상 말 뿐 이었다.
'이동거리'와 '시간'을 단축하는 유일한 수단인 말로써 신분이 구별되는 것이다.
이동과 시간을 남들보다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곧 오늘날의 신분구별에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원하는 곳에 빠르게 당도하지 못하니 자연스레 시간이 아까워 죽을 것 같았다. 어릴 적엔 지하철에서 공부도 하고, 특히나 이런 이동시간에 뭐라도 해야 한다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어플이 폰에 잔뜩 깔려있었다. 매일 어김없이 찾아오는 어디론가의 이동시간에 뭔가를 꾸준히 하면 성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을 보람차게 쓰기에 10분 만에 학교에 도착했고 이마저도 매일 불규칙적으로 보냈다. 지하철이 아니고 버스를 이용하면 또 달라지는 시간이다. 여하튼 시간을 그냥 보내지 않으려 했던 강박관념이 있었던 젊은 날의 나를 다시 꺼내어본다.
가능하면 지하철보다는 무조건 버스를 탄다. 숨 막혀오는 지하보다 하늘이 좋은 것도 있지만 지하철 보다 버스를 타며 보는 알게 되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비록 '어? 여기 올리브영이 생겼네' 하는 소소한 것들이지만 말이다. 학생 때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동안 자소서의 많은 항목들을 생각해 내었다. 그만큼 버스를 타며 보는 풍경들과 그 안의 혼자만의 시간들은 진실로, 곧게 그리고 깊게 뿌리내려 꼿꼿하고도 당당히 설 수 있을 정도로 날 탄탄하게 만들어주었고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젠 이동하는 시간 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것이 아닌 좋아하고 내게 안정을 주는 장소에 빨리 도착하여 생각하고 독서하고 싶었다. 또한 이젠 어디론가 나서기 전 이동시간을 모두 합쳐 내가 잃을 시간으로 계산한다.
점점 택시를 타는 횟수가 많아지고, 택시를 타기까지 치열한 계산이 머릿속으로 일어난다. 택시를 타기까지 사용할 수 있는 시간, 탐으로써 얻는 것들을 떠올린 후 가치를 따진다. 그리고 어플에 뜬 택시비가 이를 얻을 만큼 지불가치가 있는지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이용하는 택시비 6500원, 5400원, 7300원 같은 것은 조금 더 화장에 신경 쓸 수 있는 비용, 친구를 기다리게 하지 않는 비용, 대중교통 이용으로 쓰일 체력을 비축하는 비용과 같은 부차적인 것들이 따라온다.
어느새, 사람을 만나더라도 시간이 아까운지 혹은 아깝지 않은지를 계산하게 되었다. 점점 나와 맞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은 관계는 이어가지 않았다. 모든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세상을 몇 번이고 뒤로했고 시간이 갈수록 소원해진 관계들이 넘쳐흐른다.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짧은 시간 많은 내용을 머리에 넣어야 하는 직군이니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다.
며칠 전, 괴테의 파우스트를 당장에 빨리 이해하려고 20분짜리 영상을 보는 참이었는데 영상제목이 ‘100번 읽은 것처럼 만들어드림‘이었다. 유튜브를 보다 보면 정말 많은 분야에서 내놓은 편리함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된다.
유튜브의 발전은 무서울 정도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 무서움이 지금 당장 드러나진 않는다. 개인의 생각과 내면의 성숙으로 일어나기에 눈에 보이는 도표로 설명될 수치들은 아니다. 유튜브는 만들 수 있는 한, 세상 모든 것의 시간을 단축해 준다. 나처럼 시간이 아깝고 미친 듯이 그것을 줄이려는 이에겐 줄여준 고마움도 뒤로하고 이것도 길다는 생각을 한다.
책 한 권을 5분짜리 영상으로,
16부작 드라마를 1시간 몰아보기로,
과거엔 한참을 책을 봐야 이해할 수 있는 그 어려운 원리들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한다.
이도 길까 봐 말의 빠르기를 몇 배속으로 편집해 나온 영상들이 많다.
팩트만으로 이루어져있지는 않은 무분별한 정보가 넘쳐흐르는 곳이지만 그만큼 그것을 수용하는 수용자들의 뛰어나도록 향상되어가고 있는 영상 변별력도 무시하지 못한다.
핸드폰 중독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단지 네모난 물건을 하루종일 붙들고 있더라도 마냥 바보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놀랍게도 퀄리티 높은 영상을 선별하는 능력은 인터넷이 가장 빠른 우리나라, 빨리빨리 하려 해도 답답하니 스킵을 위한 더블클릭을 아침에 눈을 떠서 눈 감을 때까지 갈기고 있는 우리가.
난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 생각한다.
삶이 힘든 이들에게 차분히 고대 철학자의 명언을 읽어주는 목소리 영상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스마트폰이 없을 때, 혹은 유튜브가 아니었으면 도덕경을, 손자병법을 서점과 도서관에서 펼쳐볼 확률은 얼마나 될까.
요가하는 남자, 운동하는 여자가 내 앞이 아닌 화면 너머에 있지만 다수의 건강을 증진시킨다.
엄마밥이라 하는 우리가 먹고 자란 몇 가지의 음식이 있었다면 이제는 매체에 등장하는 무궁무진한 응용된 레시피로 아이들의 식탁 앞에 올라가는 엄마밥상이다.(물론 그래도 엄마의 트레이드마크는 있겠지)
유튜브는 다양한 학문으로의 접근성을 높이고 지적욕구를 충족시켜 주며 사회적 관계에 대해 문제해결능력을 함양시켜주고 때로는 마음의 위안을 온갖 방법으로 얻을 수 있기도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의 삶에서 소요되어야 할 시간을 단축해 주었다.
알고 싶은 것을 비정상적으로 빨리 알 수 있는 시대가 지금 이 시대이다.
조금만 지나면,
조금만 더 지나면 지금 세상에 대한 결과가 눈에 드러날 것이다.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한다는 말은 이제 있을 수 없다. 머지않아 미친 듯이 쏟아지는 훌륭한 머리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울 것 같기도 하지만 많이 아는 만큼 유튜브가 품고 있는 좋은 내용들이 그 인간들을 인격적으로도 함께 성장하게 했기를, 그런 미래였으면 좋겠다.
마패에 그려져 있던 그 말,
그 말의 기능과 정보전달은 세계사의 문명과 통신체계를 빠른 시간 바꿔놓았고 급속도로 역사를 발달시켰다.
조선시대의 말이 되고 싶다. 세상을 바꾼 말.
가장 빨라
시간을 다스렸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