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운 작가의 장편소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는 배우 공상표가 돌연 잠적하면서 시작된다. 그를 스타로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한 그의 엄마는 사라진 공상표를 찾아다니는 가운데, 공상표는 누나를 만나 자신이 게이임을 고백한다.
한국 문단에서는 이전까지 여러 가지 색의 퀴어 문학이 출간된 바 있다. 그 중 김병운의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는 제목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공상표는 누구인가. 그의 필모그래피는 어떤 것들로 채워졌는가. 단순히 제목 하나만으로 캐릭터에 매료시키기란 쉽지 않으나, 작가 김병운은 그것을 보란 듯이 해냈다.
공상표라는 이름은 그의 엄마가 신 내림 받은 자를 찾아가 얻어온 이름이다. 공상표는 연예인을 꿈꾸던 엄마의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엄마의 지시 아래 연예계 활동을 이어간다. 소속사 선택부터 작품 컨펌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공상표의 모든 부분에 손을 대고 그를 스타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
공상표는 여태껏 배우로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살았다. 남들의 시선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는 진짜 이름인 강은성을 지운 채 엄마가 만들어낸 스타 공상표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삶이란 언젠가 막을 내리기 마련이다. 공상표의 인생도 다르지 않다. 그는 가족에게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진정한 자신을 찾아 떠난다.
그 시발점에는 그의 전 연인 김영우가 있다. 무명 영화감독인 그는 배우 강은성과 단편 영화를 완성했다. 그러나 강은성의 요구로 인해 영화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고, 이를 계기로 그들은 영영 이별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들이 이별한 이유를 단 한 가지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명 감독인 그가 스타 강은성과 연애를 이어오는 데에는 무수히 많은 장애물이 존재했다. 엄마의 꼭두각시로 살아가는 강은성을 늘 답답하게 생각해왔다. 자신보다 잘나가는 강은성에 대한 열등감은 그들의 이별로 몰아내기 충분했다.
강은성이 배우 공상표가 아닌 인간 강은성으로서 커밍아웃을 결심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안에는 전 연인인 김영우에 대한 그리움, 일종의 애도 과정이 포함돼 있다. 강은성이 죽은 연인을 애도하는 방식은 이처럼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비슷한 결을 가진다. 바로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단편 영화를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것이다.
소설 2장에서는 본격적으로 강은성의 시나리오가 공개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기서 강은성과 김영우의 연애 스토리가 소설로 그려진다. 하나의 씬과 하나의 인터뷰를 교차하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더욱 선명하고 애틋하게 보여준다.
작품은 강은성과 김영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시선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두 사람은 강은성이 새로 만든 이야기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다.
최은영 소설가는 추천의 글에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이해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얼마나 익숙하면서도 익숙해질 수 없는 폭력인지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했다"고 전했다.
소수의 이야기는 여전히 다수 안에서 지워지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방식의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의 일상을 이토록 잔혹하고 슬프게 만든다. 이 시점에서 김병운 작가의 이번 소설은 자연스럽게 지워진 이름들을 다시 소환하는 데 의미를 가진다. 이 세상 어딘가 살아가고 있을 또 하나의 공상표에게 위로를 건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