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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 Dec 29. 2020

넷플릭스 <스위트홈>, 욕망의 괴물화

"우리는 절망 속에 서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스위트홈 / 넷플릭스 제공


* 본 글에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절망 속에 서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은 괴물로 뒤덮인 세상 속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가족을 잃은 후 '그린홈'으로 이사 온 현수(송강 분)는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자살을 계획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아파트 복도를 돌아다니는 것을 목격한다. 갑작스러운 코피, 혼절 등의 증세가 바이러스처럼 퍼지며 괴물로 변하는 사람들. 그 가운데, 은둔형 외톨이 현수가 있다.


<스위트홈>은 누적 조회 수만 12억 뷰 이상을 기록한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드라마 '도깨비', '태양의 후예' 등의 이응복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미국 넷플릭스 TOP3에 오르며 'K-크리처물'의 위상을 다시 쓰고 있다. '크리처물'은 특정한 존재나 괴물을 뜻하는 'Creature'와 작품을 뜻하는 물(物)의 합성어로, 주로 사람을 잡아먹거나 살해하는 괴물이 나오는 작품들을 뜻한다.


스위트홈 / 넷플릭스 제공


작품 속 괴물들은 모두 인간의 형상을 띄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다른 생김새와 특징을 갖는다.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괴물부터, 육상 선수처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괴물, 거미처럼 여러 개의 다리로 기어 다니는 괴물까지. 생전 인간이었을 때 품고 있던 '욕망'은 괴물이 된 이후 그들의 모습을 결정한다. 하지만 모든 괴물이 인간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간직한 여자는 거대한 태아의 모습으로 변하고, 또 어떤 괴물은 위험에 빠진 어린 아이를 돕기도 한다.


핵심은 모든 괴물이 인간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곧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는 명제를 갖는다. 주인공 현수 역시 이 명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생전 학교폭력을 당한 이후 은둔형 외톨이가 된 현수는 한껏 움츠러든 모습으로 방 안에 갇혀 움직이지 않지만, '괴물화'가 진행된 이후부터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된다. 엄청난 양의 코피를 쏟고, 눈알이 온통 검은색으로 변한 뒤에는 절대 죽지 않는 괴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현수는 다른 괴물과는 다르다. 인간의 편에 서서 다른 괴물과 맞서 싸우고, 증상이 발현된 이후에는 또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는 그는 '특수감염자'다.


스위트홈 / 넷플릭스 제공


"우리에겐 차현수보다 강력한 무기는 없어요."


때문에 인간은 생존을 위해 그를 이용한다. 절대 죽지 않는 괴물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은 오직 괴물뿐이다. 그는 건물 1층에 모여 있는 생존자들에게 경계를 받으면서도, 때가 되면 은혁(이도현 분)의 지시 아래 괴물과 싸우러 계단을 오른다. 때로는 생존자들의 심부름을 도맡아 다른 층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일도 한다. 할 일을 마친 뒤에는 감옥 같은 방 안에 갇혀 격리되는 일을 반복한다. 그러는 사이 그의 마음은 조금씩 썩어 들어가지만, 결국 현수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끔 기회를 주는 것도 생존자들이다. 괴물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수를 같은 공동체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무수히 많은 갈등과 긴 시간이 필요했다.


생존자들은 매 순간 서로를 경계한다. 언제 어떻게 괴물로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는 완벽하게 서로를 믿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살아남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또 다른 가족이 되어 서로를 챙기기도 한다.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 천식을 앓고 있는 젊은 환자, 시한부 판정을 받은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로 구성된 생존자들은 서로에게 의지한 채 살아남고자 고군분투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절대자인 신에 의지해 용기를 얻고, 누군가는 잃어버린 남편을 찾기 위해 끝까지 싸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다. 이는 곧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그 자체를 상징한다.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그린홈'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재난 상황에 남겨진 사람들에겐 오직 살아야 한다는 욕망만이 남아있다. 때문에 그들은 각자의 손에 칼을 쥐고 피를 묻힌다.


스위트홈 / 넷플릭스 제공


"이런 세상이니까, 살아남았으니까 더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칼끝이 꼭 괴물만을 향하리라는 법은 없다. 극의 후반부에 다다를수록 싸움은 인간들의 것으로 변모한다. 괴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이라는 것, 그 사실은 극을 더욱 긴장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인간은 괴물보다 더 잔혹하고 끔직한 방식으로 인간을 괴롭히고 죽인다. 애초에 세상이 한 순간 잿더미로 변해버린 것도 모두 인간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는가?


이경(이시영 분)이 남편의 실종과 관련된 것들을 파고들면서부터 진실은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른다. 미디어를 통해 국민을 통제하고, 계엄령을 내린 군인이 무언가를 숨기는 현실 속에서 이경은 물러서지 않고 직접 뛰어든다. 실종된 남편을 구해야 한다는 간절함, 그 욕망은 이경을 살아있게 하는 또 다른 힘이다.


스위트홈 / 넷플릭스 제공


또한 작품 속 여성 캐릭터도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각자의 욕망에 따라 현실과 맞서 싸운다. 위기에 빠진 이웃을 먼저 도울 줄 알고, 손에는 총과 무기를 들고 빠르게 앞장선다. 그동안 남성 영화의 전유물처럼 다뤄졌던 '액션 신' 또한 여성의 것으로 그려진다. 타인에 자신의 목숨을 맡기지 않고 생존을 위해 싸우는 여성들의 모습은 이전에 다뤄졌던 뻔한 여성 캐릭터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배우 이시영은 한 인터뷰를 통해 “‘여전사’같은 느낌을 주거나 ‘주체적인 여성캐릭터’를 강조하기보다는, 재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그런 상황에서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르신이든, 어린아이든, 여성이든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스위트홈’은 여성 캐릭터를 보다 넓은 스펙트럼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생존을 욕망하는 이들은 모두 ‘인간’ 그 자체라는 것. 이는 성별의 한계를 풀고 보다 자유로운 숨결을 캐릭터에 불어넣는다.


인간의 욕망과 무관하지 않은 괴물들, 그리고 한순간 잿빛으로 뒤덮인 세상. 그 진실의 자물쇠를 풀어내기엔 아직 공개되지 않은 것들이 남아있다.


이제 두 번째 시즌을 향해 달려가는 ‘스위트홈’,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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