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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적글적샘 Oct 06. 2023

고인 마음을 내보내기

몇 개월 만에 참석한 글쓰기 수업에서 다른 사람의 글을 읽다가 울었다. 수업 시간에 들어가니 교탁 근처에 앉은 중년 여성분이 꼬박꼬박 졸고 계신다. 졸릴 시간이니 그럴 만도 했다.


수강생들의 글을 같이 읽고 첨삭을 하는 시간. 이분도 A4 한 페이지 분량의 글을 내셨다. 타자를 치지 못해 수첩에 빼곡히 적은 글을 선생님께 부탁해 옮겼다고 한다.


수강생 분이 글을 읽는데 살짝 놀랐다. 어눌한 발음, 더듬거리는 말투를 보니 약간의 장애가 있어 보였다. 다양성, 다양성 하면서도 다양성을 마주할 때마다 흠칫거리는 내가 늘 부끄럽다.


글은 서툴지만 진솔했다. 기후 위기로 더워지는 날씨, 무더운 더위에도 땀을 흘리며 현장에서 일하는 남편, 그런 남편을 위해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려주고 싶은 마음, 월세를 내며 가난하게 살지만 그 누구한테 피해 끼치지 않으며 살아온 인생, 좋은 말만 하며 행복한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냥 읽었으면 지나쳤을 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입혀지니 전혀 다른 글이 되었다. 글을 다 읽으니 다른 수강생들의 탄성이 곳곳에서 나왔다. ‘너무 예쁜 글이에요, 눈물이 나요, 좋은 글이에요.’라는 칭찬이 뒤따른다.


이 글을 목소리로 접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알량한 마음으로 주제가 뭐냐며, 글이 왜 이리 허술하냐며, 지금 이 시대에 맞지 않다며 내팽개치지 않았을까. 글에 담긴 마음을, 인생을 모르는 체하며 지나갔을 게 뻔하다.


‘수돗물을 틀었을 때 고여 있는 물이 다 빠져나와야 새 물이 나오는 법입니다. 본인 안에 고여 있는 마음을 다 털어내야 새로운 이야기가 나와요. 그 이야기야말로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어요.’


수업에서 하신 선생님의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부끄럽다고, 식상하다고 감춘 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고여있는 마음을 언제쯤 다 내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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