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적글적샘 Sep 27. 2023

내 다정함에는 이유가 있어

7년 만에 오는 뉴욕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9월의 뉴욕은 아름답다. 바쁘게 살고 빠르게 걷는 사람들로 유명한 뉴욕. 누구 하나 서로를 신경 쓰지 않는 듯 무심해 보인다. 얼핏 차가워 보인다. 그런데 막상 보면 그렇지도 않다. 어딜 들어가든지 앞 사람이 항상 문을 잡아준다. 고맙다고 인사하면 웃음으로 답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늘 미소를 짓는다. 식당에 들어가거나 가게에서 주문을 할 때는 언제나 내 안부를 묻는다. 상대방의 호의에 멀뚱히 있을 수만은 없다. 나도 덩달아 미소를 짓고 상대방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어쩌면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 먼 이국의 여행자에게 보내는 따뜻한 인사는 무슨 마음에서 나오는 걸까.


  나는 그 답을 이유 없는 다정함에서 찾는다. 소설가 김연수는 ‘우리 삶의 플롯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타인을 다정하게 대할 때’라고 말한다. 소설가에게 다정함이란 낯선 타인을 향한 애정 어린 관심을 말하는 것일 테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혹은 겪지 않을 삶을 그려내는 소설가에게 존재를 향한 다정함은 창작을 위해 필요한 마음일지 모른다. 비단 소설가뿐일까. 누군가의 얼굴과 마음을 진심으로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발견한 아픔과 기쁨을 돌보는 일은 우리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 게 분명하다. 모두 소설가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내 다정함에는 이유가 있다. 나와 유사한 삶을 살았을 혹은 겪을 누군가에게 신경이 쓰인다. 차갑고 어두운 변두리에서 자라나는 슬픈 마음을 계속해서 들여다보게 된다. 교실 구석 엎드려 있는 학생의 등을 한참 동안 쳐다보기도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는 아이의 정수리를 가만히 응시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등과 정수리에서 보이지 않는 슬픔을, 무겁게 가라앉은 내 과거를 떠올린다. 항상 주눅 들고 움츠려 있던 내 지난 학창 시절을 다시 꺼내 읽어 본다. 나의 이유 있는 다정함은 지난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고 쓰다듬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기록된 이야기들이 어둠으로 읽혔을지 빛으로 읽혔을지 궁금하다. 따뜻한 시선으로 누군가가 내지른 고통의 곁에 서 있던 마음을 차분하게 기록하려고 했다. 그러다가도 누군가를 어둠으로 내모는 무엇을 향해 거센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진솔한 고백과 사과, 분노가 혼재된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묵직한 위로로 다가갔기를 희망해 본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한 편씩 꺼내 읽으면서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이야기였기를 소망해 본다.

  사소한 다정함은 세상을 구원한다. 내가 사랑하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얼 올 앳 원스>에서는 다정함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에 싫증을 느낀 악마가 이 세상을 파괴하려 할 때, 결국 악마를 이기는 방법은 악마에게 베푸는 주인공의 아주 작고 사소한 다정함이었다. 그 마음은 결국 이해 불가능한 존재를 끌어안으려고 노력하는 마음이다. (“The only thing I do know is that we have to be kind. Please, be kind. especially when we don’t know what’s going on.”) 그러니 모든 사람이 다정했으면 좋겠다. 나와 다른 낯선 존재를 향해 사소한 안부 인사를 건넸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한층 밝아질 테다.

학생을 소재로 하는 글을 쓸 때면 늘 조심스럽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니 같은 장소, 시간에 있던 누군가를 특정하기 쉬운 탓이다. 이를 막기 위해 장소와 시간을 뭉그러뜨리기도 했고, 성별과 연령을 변형하기도 했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이 글 속 이야기를 한 개인의 특별한 아픔으로 치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어디선가 자라고 있을 우리 모두의 아픔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글에 나와 함께 걸어온 학생들이 있음을 밝혀둔다. 부족하고 흠이 많은 선생에게 자신의 고통을 들려준 학생들이 있었다. 그 고통의 곁에 자리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 감사하다. 들어줄 수 있어서, 고개를 끄덕거려 줄 수 있어서 다행인 시간이었다. 혹여나 그 마음이 부족했다면 지금에서라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부족한 글을 봐주신 많은 선생님이 계신다. 부산 구포 도서관에서 한 학기 동안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제목, 문장 하나하나마다 섬세한 조언을 해주신 김나현 수필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부산의 독립서점 크레타에서도 글쓰기 강의를 들었다. 묵직하게 가라앉은 진솔한 마음을 꺼내는 방법을 알려주신 이정임 소설가님께 감사하다. 그 누구보다 무겁고 어두운 글을 애정이 어린 시선으로 보듬어 주신 박경희 소설가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뚫고 해주신 묵직한 조언들이 소중하다. 그 조언들이 가슴 속 웅덩이로 깊게 고여 남았다. 배우는 일은 늘 즐겁다. 그 배움에 누군가의 다정함이 깃들었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감사한 마음이다. 나도 그런 다정함을 베푸는 선생으로 살아가고 싶다.


  글을 쓰는 동안 늘 응원을 아끼지 않은 BS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같이 글을 쓰는 동료로서 많은 힘을 얻었다. 책과 글을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둔다는 것이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행운임을 알았다.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눈 대화의 조각들이 여전히 가슴 속에 선연하게 빛난다. 언젠가 그 다정함을 더 깊은 다정함으로 갚겠다고 다짐해 본다.


  이 책을 읽고 누군가의 세계가 단 1도라도 기울어졌기를 희망해 본다. 직선으로 뻗어나갈 우리의 세계도 언젠가는 교차할 수 있지 않을까. 무한한 시간 속에서 마주할 당신과의 만남을 기다린다. 충돌이 아닌 접점의 순간에 태어날 또 다른 세계가 우리가 살아갈 미래라고 굳게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동글동글한 질문으로 읽어 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