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적글적샘 Mar 10. 2024

고교 학점제 망해라

교무기획을 2년 했다. 그전까지 학년 기획만 주야장천 하면서 정말 너무 힘들었는데, 2021년부터 한 교무기획은 사실 정말 꿀이었다. 정확한 일정, 명확한 규정에 따라서 착실하게 만들고 제출만 잘하면 됐다. 복잡한 문서 작업들이 많기도 하고, 수능 시험장 운영이라는 정말 큰 업무가 있기도 하며, 10월부터 2월까지 모든 업무가 몰려 있어 스트레스가 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정말 할 만했다. 평생 교무기획만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정도.


그러다 올해 처음으로 교육과정 업무를 하게 되었다. 시작부터 만만치가 않다. 교무기획은 선생님들과 얽혀 있는 업무라면, 교육과정은 모든 교사와 학생이 다 얽혀 있는 일이다. 교육과정 편제표도 읽지 못하던 내가 이제야 겨우 업무를 해 나가고 있는데 ‘교육과정 편제표도 못 읽던 나’와 비슷한 수준에 있는 선생님들의 기초적인 질문, 학기 초에 자기 마음대로 과목을 바꾸려는 학생들을 마주하며 이번 1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정말 나를 힘들게 하는 건 고교학점제를 엉망으로 운영하는 교육부와 교육청이다. 내가 생각했던 고교학점제의 모습은 2020년도에 방문했던 핀란드의 고등학교였다. 정말 대학생들처럼 알아서 수강신청하고 알아서 수업 듣는, 공강 생기면 알아서 시간 보내다가 알아서 교실 오는 그런 시스템! 그런데 한국은? 학생의 학업 부담을 줄이겠다며 3년 동안 들어야 할 학점 수를 줄이면 뭐 하나.. 그렇게 해서 생긴 ‘공강’ 시간에 애들 하교시키지 말라 하고… 꾸역꾸역 애매한 시간에 공강 다 잡아 놓고 어떤 프로그램 돌릴지 구상하기 바쁘다.


공강 시간에 다른 과목 신청해서 들어라, 문해력 향상 프로그램 해라, 뭐 해라 저거 해라! 이럴 거면 학점 감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거기다 학교마다 공강 시간을 얼마나 특색 있게 운영하는지를 자랑하려고 온갖 전시성 프로그램 만들기 바쁘다. 정말 한심한 수준이다.


고 3에 아무리 그럴싸한 진로 선택 과목 깔아 놓고 선택하라고 한들 다들 수능특강 수업하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일부 교사가 3학년 진로 선택 과목의 취지에 맞게 그럴싸하게 수업하는 거 몇 개 들고 와서 모범 사례인 양 일반 학교에 배포하는 것도 문제다. 이런 표현 쓰면 안 되지만 위선적이고 가식적이다. 그런 식으로 시스템에 대한 아무런 비판 없이 이것저것 해서 갖다 바치는 연구학교들도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본다.


학교의 행정 업무가 갈수록 많아진다. 줄인다 줄인다 하지만 전혀 줄어들고 있는 느낌이 아니다. 최근 10년 사이 과도해지는 행정 업무의 정점에 고교 학점제가 있다. 한국의 고교 학점제는 OECD 선진국 교육 따라 하겠다고 온갖 외양만 다 갖춰 놓고 실제 운영은 정말 교육 후진국스럽게 운영하는 최악의 제도로 평가받을 게 분명하다. 학생의 진로와 적성을 생각한다면서 어떻게 하면 결국 상위권 대학 구미에 맞는 매력적인 교육과정을 꾸릴까 고민하는 아이러니, 아니 패러독스라니.


에피소드 몇 가지


1. 학생 선택권 보장하면서 개설 과목 늘어나니 자연스레 확대 학급이 발생한다. 늘어난 확대 학급의 시수를 ‘강사 채용’을 통해 해소하겠단다. 올해 우리 학교에 채용된 강사는 시간표 마음에 안 든다고 하루 수업 하고 계약 파기해 버렸다. 새로운 강사를 채용할 동안 아이들은 멍하니 자습만 한다.


한국 교육의 성과는 수치와 지표로 증명된다. 그런데 그게 꼭 진실은 아니다. 과목 개설 많이 해 주면 뭐 하나. 곳곳에서 가르칠 사람 못 구해서 난리고, 가르치라고 뽑은 사람이 별로여서, 도망가서 난리고, 그 와 중에 온갖 뒤처리와 책임은 학교에 있는 교사들이 다 지는데… 교육부 없애버리고 싶다 정말;;


2. 서울대 과목 이수 기준에 따르면 과학 교과의 과목을 일반 선택 과목 2개 + 진로 선택 과목 1개로 이수하는 것보다 일반 선택 과목 3개를 이수하는 걸 더 높이 평가한다고 한다. 이 흐름에 맞게 일부 학교에서는 과학 과목의 시수를 4 단위에서 3 단위로 낮추고, 다른 기초 과목의 시수도 낮춰서 일반 선택 과목을 3개 들을 수 있도록 짠다고 한다.


학습은 양과 범위가 아니라 깊이 아닌가? 과학 과목 3개 들으면, 그것도 단위, 학점 수 줄여서 4시간 아니고 3시간씩 하는 수업 들으면, 그 아이는 뛰어난 아이인가?? 정말 한심하다 한심해…


3. 고교 학점제 되면 교사 다과목 지도가 흔해진단다. 3-4과목 가르칠 준비 하란다. 수업 준비하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나? 수업 준비 그렇게 시킬 거면 행정 업무 다 없애야 한다. 지금 일주일에 수업 4시간 준비하는 것도 시간 부족해 허덕이고 있구만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열받는 한국 교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