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맹오프 Jan 24. 2022

'직업병'으로 '공간' 즐기기

BTL 기획자의 오프라인 공간 즐기는 방법


누구나 한 번쯤은 직업병을 마주할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느 주말이었습니다. 모처럼 놀러 나갈 계획을 했고, 만날 지인과 중간 어디쯤 되는 동네를 정한 후 SNS와 유튜브, 각종 블로그를 찾아봅니다.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고, 바로 그곳으로 향하죠. 방문할 곳의 후기들을 보고 나면 기대감이 생깁니다. 게다가 생각보다 더 엉뚱한 곳에 있기라도 하면 얼마나 괜찮은 곳이길래 여기까지 사람들이 찾아오는 걸까? 하며 흥미마저 느껴질 때도 있죠. 드디어 도착한 그곳에선 후기 사진만으로 알 수 없었던 주변 환경까지 더해져 첫인상이 만들어집니다. 이미 지나쳐왔던 길마저도 첫인상의 한 부분을 담당하죠. 기대감을 가지고 간 곳의 첫인상이 좋았다면 자연스럽게 내부의 모습도 어떨지 궁금해합니다. 


다른 분들의 후기를 보고 갔음에도 실제로 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은 약간 남아있습니다. 덕분에 살짝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 봅니다. (아주 가끔 우리 예상 밖으로 '문'부터 색다른 형태로 연출한 곳이 있습니다. 이 부분도 첫인상으로 넣어 두기로 하죠.) 역시 시각으로만 보는 사진보다 청각, 후각, 촉감을 함께 느끼는 것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미술작품을 왜 미술관까지 가서 보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현장감에서 얻을 수 있는 감각은 인터넷이 대체할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공간 안으로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벽을 만져도 보고 두드려 봅니다. 노출 콘크리트 공간을 제외하곤 대부분 목재로 만든 가벽을 세워 놓기 마련인데, 가는 곳마다 질감과 소리가 달라 종종 만져보고 두들겨보는 편입니다. (소리가 다른 이유는 일반적으로 두께감 다르거나, 목재의 종류가 다른 경우입니다. 혹시 하고 말씀드리는 거지만 아주 살짝 노크하듯이 합니다.) 가끔 같은 가벽이라도 질감이나 디자인을 달리하여 새로운 비주얼을 만드는 곳이 있습니다. 반대로 목재를 활용한 가벽이 아니라 실버 강판으로 만드는 곳도 있고, 빨간 벽돌, 유리블록 등, 질감이 잘 표현되는 소재들로 구현하는 곳도 있구요. 그 외에도 만질 수 있는 선에서 다양한 가구와 오브제들을 만져봅니다. 만질 수 없는 건 눈과 사진으로 최대한 담아오죠. 확인할 수 있다면 브랜드까지 확인해옵니다. 


일하면서 몸에 베여있는 습관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런 건 다 어디서 구해오는 건지, 사장님이 어떤 생각으로 이 공간을 이렇게 꾸미셨는지가 무척 궁금합니다.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가 사장님의 언어라고 생각하면서 보게 되죠. 다분히 의도된 연출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디테일의 합으로 이 공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지 유추해보는 것이죠.


이런 모습을 보고 있는 지인들은 "너 그거 직업병이야"라는 소리를 꼭 한 번씩은 합니다. 왜 쉬는 날까지 일하는 것처럼 생각하냐는 걱정 어린 핀잔일 겁니다. 본인들도 경험해보았을 테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 왜 이러나 싶었던 적이 있었을 테니까요. 일반적으로 직업병이라는 말과 행동이 좋은 의미로 쓰이진 않으니까요.


저도 처음에는 이런 행동들이 직업병인 것 같아 자제했었습니다. 마치 일에 찌든(?) 모습처럼 비치고 있는 것만 같았고, 주변 지인들의 시간을 내가 망치고 있나? 하고 걱정도 했습니다. 일과 일상을 구분 짓지 못하는 것이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죠. 그래서 직업병이라고 불리는 행동들을 나쁜 습관이라 생각하고 고치려 했었습니다. 


그런데 유튜버나 책, 아티클을 들을 찾아볼 때 공간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려주는 콘텐츠에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는 건축가 유현준 교수님, 인테리어 디자이너 조조 랜드, 아티클에선 폴인의 네오벨류 (도시문화 디벨로퍼), 타니가와 준지(츠타야 서점 CCC 대표) 등이 있었죠. (이 부분에 대해선 다음에 더 자세히 다뤄 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좋은 공간을 가면 그 안에 콘텐츠(음식, 커피, 옷, 소품, 화장품 등) 보다 공간을 즐기는 일에 조금 더 흥미를 느꼈습니다. 왜 이 공간이 좋다고 느껴지는지, 제가 알고 있는 지식 내에서 최대한 해석을 해보는 거죠. 오히려 재밌게 즐긴다는 쪽이 맞아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직업병이라고 불리던 제 행동이 반대로 공간을 더 즐길 수 있는 시선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셈이었던 거죠. 덤으로 일상의 취미가, 일할 때 도움이 되는 케이스가 된 겁니다.


제가 오프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실내와 야외를 가리지 않습니다. 별다른 약속이 없더라도 집 근처나 동네에서 주목받고 있는 공간을 찾아 나섭니다. 이 정도면 공간을 누리기 위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대단한 건 없지만 제가 마음에 드는 공간에 가면 습관처럼 확인해보는 6가지를 소개드립니다. 조금이나마 공간을 즐기시는데 보탬이 되길 바라봅니다.





1. 장소

장소를 통해 고객층(타깃)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장소를 선정하는 데는 동네 특징, 상권(경쟁업체, 놀거리, 오피스, 학교 등), 연령층, 시간대별 유동인구, 평일/주말 간 유동인구 등 수많은 조건이 고려됩니다. 적은 비용이 투자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적의 조건에 맞추는데 신중을 가하게 되죠. 그럼에도 원하는 조건의 100%를 맞추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흔히 메인 상권이라고 불리는 장소는 권리금과 월세 비용이 만만치 않아 망설이게 되는데 이마저도 거대 기업들이 선점하죠.


지금 제가 있는 이 공간도 사장님의 최선의 선택이었을 겁니다. 사장님은 이곳의 상권을 어떻게 보고 오픈하셨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유추해보게 됩니다. 여기까지 오면서 주변엔 어떤 상권이었는지, 방문하시는 고객분들의 연령층과 성비도 보게 되고 이미 오신 분들이 어떤 걸 소비하고 있는지 자잘한 정보로 해석해보는 거죠. 


간혹 본인의 매장(공간)에 방문하는 고객층을 간파하시고 메뉴와 가격, 포장까지 맞춤형으로 구성해둔 곳들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곳을 보면 괜히 유명해지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보다는 망할 수가 없겠구나 생각이 먼저 듭니다. 장소에서 아쉬운 점을 다른 요소로 후킹 하기 위해 끊임없는 개선하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2. 컨셉 

공간의 70%는 벽과 조명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더불어 무형의 음악이 그 공간에서 소리를 채우죠. 때문에 바닥과 벽, 조명과 음악으로 공간의 컨셉을 빠르게 파악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벽과 바닥의 색상과 재질, 조명의 색상과 밝기 정도가 공간의 첫인상에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더불어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음악이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주인공이 된 듯한 시퀀스를 완성시켜줍니다.

 

아주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이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은 노출 콘크리트 공간이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회색 벽에 백열등(화이트) 조명을 쓰고 최신 가요가 흘러나오는 곳 vs 벽에 흰색 페인트 작업을 하고 바닥에는 네이비색 카펫으로 색감을 더한 후 전구색(노란) 조명에 그루브 한 팝송이 흘러나오는 곳의 차이.


물론 어느 곳이 더 좋다는 정답은 없습니다. 사무 공간이라면 전자에 맞추는 게 좀 더 옳은 방법이 될 것이고 카페와 같은 공간이라면 후자가 좀 더 옳은 방법이 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목적성이라는 조건에 따라 변수가 있겠지만 그 역시 바닥과 벽, 조명과 음악이 컨셉의 기본 뼈대가 되기 때문에 이런 포인트를 집중해서 둘러보는 편입니다.



3. 가구 및 배치

어떤 가구를 어떻게 배치를 해두었냐에 따라 고객들의 편의에 중점을 두었는지 매출에 중점을 두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흔히 맛집이라고 불리는 일반적인 가게들은 맛에 집중합니다. 기다리시는 분들이 다 드셔 볼 수 있도록 회전율이 중요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인원을 받을 수 있는 촘촘한 배치가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가구들도 인테리어보다 기능성에 방점이 찍혀있는 경우가 많죠. 


그치만 요즘 맛집이라고 불리는 곳에는 멋진 가구와 인테리어가 되어있는걸 쉽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음악까지 그 음식과 어울린다면, 괜스레 맛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하게 되죠. 어쩌면 매출을 위해 회전율을 높이기 위한 배치는 옛날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객분들의 입소문과 재방문을 위해, 맛은 기본되고 공간적인 경험이 함께 중요해진 거라 생각합니다. 상향평준화 된 맛집들이 즐비한 곳에 공간적인 경험이 차별화를 줄 수 있는 것이지요.


반대로 테이블을 더 놓을 수 있음에도 과감히 덜어낸 곳들도 있습니다. 다이닝 바 혹은 레스토랑과 카페 같은 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배치입니다. 공간의 특성상 음식(음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보니, 체류하는 시간 동안 안락함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일부 사장님들이 테이블과 의자의 편의성에 대해 간과하는 부분이 있어 아쉽습니다. 인테리어에 집중하다 보면 가구 디자인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멋지게 공간을 만드는 것은 좋으나 그 가구를 이용하게 되는 주체를 잊어버리게 되는 거죠. 간혹 이런 곳을 만나면 다음번에 잘 방문하지 않게 됩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한 장소를 찾게 되는데, 머무는 자리가 불편했으니 시간을 보내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게다가 요즘은 멋지고 편한 곳의 대안이 많아져 버렸으니요.  



4. 벽

앞서 말한 대로 벽은 공간의 테두리 역할을 맡기 때문에 분위기의 기준 같은 역할을 담당합니다. 보통 기존 공간에 페인트칠만으로는 변화하기 어렵거나, 원하는 컨셉을 표현하기 위해 가벽을 세우게 되는데요. 공간 분위기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장님들이 최소 비용으로 해결하기 위해 신경 안 쓰는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사장님이 디테일에 얼마나 진심인지 눈과 손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런 부분을 놓치지 않는 곳이라면 다른 디테일마저 기대하게 만듭니다.  



5. 화장실

화장실은 고객분들에게 암묵적인 배려를 느끼게 해주는 공간입니다. 사장님이 고객분들을 위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죠. 더불어 화장실의 청결도는 매장에 대한 신뢰를 줍니다. 화장실과 주방은 꾸준히 관리해주지 않으면 금방 더러워지기 마련이죠. 불쾌한 냄새까지 풍길 수 있습니다. 이런 공간이 고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줄 일이 없겠죠. 그래서 저희가 알고 있는 좋은 매장들은 대부분 화장실에 대한 인상이 좋았을 겁니다. 그래서 흔히 매장을 볼 때 화장실을 봐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죠.


화장실의 구조, 따뜻한 물, 세정제, 티슈 or핸드 드라이, 티슈 휴지통과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확인합니다. 꼭 비싼 제품이 좋은 건 아니기 때문에 브랜드는 따지지 않는 편입니다.



6. 콘텐츠

재방문 결정 시 매우 중요합니다. 이 공간에서 시간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콘텐츠가 평균 이상이 여야 합니다. 당연하고도 간단한 이유이지만 공간이 아무리 좋았어도, 맛이 없다던지, 상품 수가 적거나 퀄리티가 별로라면 재방문하기 어렵습니다. 사진에 속았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죠. (저도 몇 번이나 속아보았구요.)




조금 늦게 깨달았지만, 일을 하면서 얻은 경험을 일에서만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점만 바꿔 생각해보면 오히려 더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경험이 되기도 하니까요. 저도 느지막이 알게 되었지만 꾸준히 즐겨보고 기록해보려 합니다.


여러분들도 직업병이라 생각했던 습관이 재미를 더하는 경험으로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작가의 이전글 저평가된 '보람'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