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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Jan Mar 19. 2021

엔지니어에서 필라테스 강사로, 지난 8년의 기록

눈과 슈퍼컴퓨터

 밤사이 폭설이 내린다고 했다. 아침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고작 2주, 폭설을 핑계로 뛰지 않아도 되겠다는 얄팍한 마음을 안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깨어보니 폭설이라기엔 민망할 만큼 눈이 쌓여 있었다. 아침 내내 눈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기상청의 슈퍼컴퓨터가 고장이라도 난 것인가. 아니면 슈퍼컴퓨터가 계산한 값을 발표하기 전 누군가 바꾸는 것은 아닐까. 바보 같은 생각을 하다 꾸역꾸역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매트를 깔았다. 가볍게 운동을 했다. 확실히 몸이 무겁다. 밤잠을 설친 탓인지, 한 달 반 동안 쉬었던 일을 다시 하게 되어서인지 괜히 집 밖에 나가기가 싫었다.  


 작년 말 5년을 다니고 3년 가까이 육아휴직으로 쉬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육아휴직을 하러 가던 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머릿속에 슈퍼컴퓨터가 있었다면 ‘육아휴직 후 돌아올 확률은 30%’라고 예측했을 것이다. 나의 일은 전공에 맞춰 전자회로를 설계하는 일이었는데, 꽤나 재미있었다. 무언가를 내 손으로 만드는 일에 나는 흥미가 있는 듯했다. 열심히 했고 좋은 선배들을 만나 많이 배웠다. 그러면서 동시에 미숙했다. 실수가 잦았고 인간관계에 서툴렀다. 그즈음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지면서 휴직을 시작했다.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이기도 했고 아이가 태어난다니 마냥 기뻤다. 출산 후 하루 종일 아이를 안고 먹이고 씻기는 일과를 반복했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커져갈수록 나는 조금씩 작아지는 것 같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했고 이것저것 관심을 두었다. 나의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여 무언가 생산하는 삶, 나에게 일이란 돈을 버는 것 이상으로 어떤 기쁨을 주고 있었음을 깨달은 시점이 그때였던 것 같다.


 복직이 가까워 올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아이들이 깨지 않은 새벽에 일을 나갔다 잠들기 두세 시간 전에 돌아오는 생활이 눈앞에 그려졌다. 정신이 아득했다. 매일 커가는 아이들을 눈에 가득가득 담고 싶었다. 육아와 일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러려면 새로운 일을 찾아야 했다. 필요한 것들을 나열해보았다.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어야 했고, 어디서든 일할 수 있어야 했다. 동시에 나를 발전시키며 지속 가능한 일이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더 좋겠다. 그 접점에 ‘운동’이 있었다. 찾고 묻고 움직였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필라테스 지도자 자격증을 얻고 일을 시작하며 복직하려던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결론적으로 육아휴직을 하던 날의 내 예측은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으리란 것은 결코 예측할 수 없었다. 그리고 코로나로 한 달 반 동안 다시 일을 쉬게 되리라는 것도 결코. 이건 정말 결코!


 어제저녁만 해도 어린이집에 가서 친구들과 파티를 하겠다던 첫째가 아침이 되자 집에 있겠단다. 그래, 내 마음도 이렇게 무슨 년 널뛰기하듯 오락가락인데 고작 4살짜리 아이가 별수 있겠냐 싶어 몇 주 더 데리고 있기로 한다. 그때 아이가 소리친다. “와 눈이다!” 창밖에 눈이 내린다. 눈에도 마음이 있는 것인지 바람을 타고 오르락내리락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아이와 함께 길을 나섰다. 막상 나와보니 또 좋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조금 더 걸었다. 마시지도 못하는 커피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일을 마치고 출근해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우리가 보통의 하루를 보내는 사이 하루 종일 눈이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슈퍼컴퓨터의 예측은 맞기도 틀리기도 했다. 동시에 너무 많은 것들을 예측하지 못했다.  


Jan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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