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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Jan Mar 22. 2021

그리운 우이동 클라이머들에게

밤과 이야기와 얼굴들

결혼 전 클라이밍을 배웠습니다. 회사생활 2년 차 여러 가지 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운동을 배워볼까, 초등학교 3학년 수영을 배워본 이후론 운동을  적이 없었고 그마저도 언니와 간식을 사 먹는 재미 간신히 1년을 버텼습니다. 이것저것 찾아보다 산을 좋아하니 클라이밍이나 배워볼까 하는 무모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평일엔 뒷동산 주말엔 전국 곳곳의 크고 작은 산을 부지런히 올랐었거든요.


인터넷 검색으로 규모가 꽤 큰 실내 암장을 찾아냈습니다. 우이동 버스 종점, 퇴근 후 회사 버스를 1시간 타고 서울에 내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3-40분 정도 들어가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도 늘 한 시간 가까이 렸습니다.
 상담을 받으러 간 날 강사님은 제게 몇 가지 동작을 시켜보시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운동은 가까운 데서 하는 게 제일이에요"

신규회원 유치에는 별 흥미가 없어 보이는 강사님을  보니 괜한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날 바로 6개월 치를 등록했습니다. 월 10만 원도 안 되는 파격적인 가격에 6개월 등록 시 추가 할인까지, 빙벽까지 갖춘 대규모 실내암장!


일주일에 한 번 많으면 두 번 운동을 하러 갔습니다. 클라이밍은 손과 발을 이용해 벽에 달린 홀드(hold)를 옮겨 다니는 운동입니다. 저에겐 그 단순한 운동이 참 어려웠습니다. 열심히 벽을 오르고서 다리가 후들거려 아래를 보면 2m쯤 올라와 있었습니다. 홀드의 모양이나 벽의 기울기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졌는데 다음 코스로 넘어가는데 몇 달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그다지 열심히 하지도 않았는데 계속 갔습니다. 프로젝트로 몇 주를 쉬더라도 다시 발을 들였습니다. 이상하게 그곳에 가면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규모에 비해 언제 가도 사람이 10명 이상 오지 않았는데  어떤 날은 저 혼자 있다 오기도 습니다. 은둔의 고수들이 조용히 벽을 타다 가던 서울의 끝자락 우이동 암장. 그곳에 있으면 자주 시간이 멈추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숲 속 깊은 곳에 홀로 있는 처럼  모든 것이 평온했습니다.


가끔 선배님들을 따라 산에 올라 자연 바위에서 암벽등반을 하기도 니다. 그럼에도 실력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자주 땡땡이를 치고 삼삼오오 모여 야식을 먹었고 번번이 막차시간을 넘겼습니다. 덕분에 운동실력보다 어휘력과 리액션이 늘었다는건 비밀.

까칠한 것 같으면서도 역시나 까칠한 강사님, 대여섯 살 많지만 한 번도 오빠라고 못 불러본 오빠들, 꿈과 사랑이 넘치던 5학년 꼬꼬마들, 중학생 아들을 둔 쿨하고 다정한 언니들, 끝내 제 이름이 아름인지 보람인지(둘 다 아닌 게 더 신기) 헷갈려하시던 수줍음 많던 아저씨.


결혼 준비를 하고 이사를 가게 되면서 2년을  못 채운채 암장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로 몇 년 뒤 암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로 뿔뿔이 흩어졌겠죠.

돌이켜보면 그때 그곳에서 저는 몸보다 마음을 채우고 돌아왔던 것 같습니다. 우이동의 차가운 공기와 짙푸른 하늘, 각자 다른 이유로 모였지만 산을 좋아하던 사람들의 이야기, 무슨 말을 해도 빙그레 웃어주던 다정한 얼굴들.

당신들이 나눠주셨던 따뜻한 온기 덕분에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결코 믿기 힘드시겠지만 운동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제가 받은 것들을 나누는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소중한 기억을 선물해준 그리운 우이동 클라이머들에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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