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29 / 왓챠
살다 보면 이름이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아서 얼버무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누구나에게 한 번쯤은 그런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내겐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아.. 아, 그거 뭐였더라? 페피? 페우 페우? 뭐였지?"
"뭐? 페페?"
"페..페? 그거 맞아? 왜 이렇게 아닌 것 같지?"
기억도 못하는 주제에 의심은 또 많다.
결국 내 손으로 찾아본 결과 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던 그 이름은 '페페'가 맞았다.
사실 페페는 한국에서 그렇게까지 유명한 이름은 아니다. 이름보다는 그 캐릭터의 생김새가 더 알려져 있다. 인터넷 좀 한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며 가며 최소 한 번은 봤을 개구리 캐릭터.
소위 말하는 '밈'이라는 것의 상징적인 개구리 페페.
오늘은 이 캐릭터의 삶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한다.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인터넷 세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살아온 지가 어언 10년이 넘어간다. 이 세계는 워낙 빠르게 흘러가는 탓에 순식간에 무언가 지나가고 또 새로운 것이 찾아오는데, 이 개구리 페페가 나에겐 그런 존재다.
사실 요즘은 보이지 않아서 인지하고 있지 못했지만 스치듯 본 기억이 언뜻 떠오르면서 그 존재감을 느끼곤 했다.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을 만큼 이 개구리는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름은 몰라도 그 생김새만큼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우연하게도 주변에 이 캐릭터와 닮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이따금씩 보여서 캐릭터의 이름까지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이 캐릭터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궁금하지도 않았다.
어렴풋하게 '개구리 페페가 죽었다!'라는 소식을 본 기억만 남아있다. 이 개구리를 죽인 사람이 아이러니하게도 개구리를 만든 작가라는 이야기까지 말이다.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일이었다.
이 캐릭터가 사용되는 방식이 작가의 입장에서는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도대체 어느 정도였길래. 당시의 나는 '아무렴 그래도 작가가 자기 캐릭터를 죽여도 되나.'라고 생각했었다.
한국에서도 상당히 폭력적이고 우울한 모습의 페페를 많이 보았지만 이 정도는 '유머'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애초에 그렇게 쓰이기 위해 태어난 캐릭터라고 은연중에 확신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페페'라는 이름보다 '슬픈 개구리'로 더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캐릭터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작가와 그 주변 친구들의 모습을 반영한 '보이스 클럽'이라는 만화 속에 등장하는 괴짜이자 생각보다 밝은 성격의 캐릭터였다.
그런 캐릭터가 자신의 고향인 미국에서는 극우세력들에게 상징적인 존재로서, 작가의 의도와 달리 너무나도 가학적인 캐릭터로 쓰이게 된 것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나였어도 캐릭터에 대한 많은 고민이 들었을 것 같았다. 종국에는 캐릭터를 죽게 만들 정도로 힘들어했던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같아도 애초에 어떤 캐릭터를 만들었을 때, 절대 그런 식으로 쓰이길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개구리를 좋아하고, 나와 닮은 모습의 캐릭터를 만들어내었을 뿐인데, 그 캐릭터가 행복하길 바라고, 그 세계 안에서의 모습으로만 남아서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원하는데 정작 현실은 극단적이고 사회 부적응자들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알려져 있다면 창작자로서 스스로에게 엄청난 수치스러움과 세상에 얼굴을 들이밀고 살아갈 자신도 없어질 것 같다.
개구리 페페의 창시자인 작가 '맷 퓨리'는 처음에 4챈이라는 미국의 아싸들의 유머사이트에서 이 개구리가 '밈'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눈감아 주었다. 이는 굉장히 대인배스러운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사람들 사이에서 유머로서 활용되고 인터넷 상에서 익명으로 새롭게 그려지는 페페의 다양한 모습들을 창작자로서 그냥 넘어가 준 것이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페페의 '진짜 모습' 은 본 기억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유머 짤에서의 페페는 그림판에서 그린 듯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항상 우울해하거나 누군가를 때리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영화 속에서 작가가 그리는 페페는 대부분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디즈니'가 떠올랐다. 그 유난스럽고 유별난 저작권 관리가 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 한번 더 깨닫게 되었달까. 이는 정말로 필요한 일이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이다 보니 더더욱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를 관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캐릭터가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이에 대한 관리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맷은 쿨하게 페페를 밈으로 사용하게 해 준 결과로 강제 백인 우월주의자가 되었다.
kkk의 상징적인 캐릭터로 페페가 쓰였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이 개구리는 밈으로서의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데...
바로 자신과 이 개구리를 동일시키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는 방법이었다.
상당히 영리하면서도, 약아빠지고 운이 좋은 전략이었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그 동시간대를 살아가고 있었음에도 페페와 트럼프가 함께 묶여서 kkk 집단에게 영향력을 과시했다는 사실은 몰랐다.
간과하고 있었던 '밈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 형상이었다.
나의 캐릭터 페페가 그렇게 변질된 의미로 살아가는 모습을 더 이상은 볼 수 없었던 맷은 결국 페페는 죽었다고 발표하게 되었다. 하지만 극우세력에게 그 사실은 오히려 페페를 더 자신들의 상징으로 만들게 해 줄 뿐이었다.
페페의 죽음은 '맷의 페페' 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밈 속 페페' 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인터넷은 엄청나게도 깊고 넓은 세계였고, 한번 그 세계에서 어떠한 상징으로 자리를 잡게 되어버리면 다시 되돌리기까지 수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만큼 강력한 힘이 있는 것이 아닐까.
맷은 결국 페페를 위한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그 싸움의 끝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페페의 이미지 회복과 원래의 삶을 돌려주기 위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상당히 많은 인터넷 자료들이 나오고,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들이 나왔다. 뉴스 화면을 비롯해서 인스타그램, 여러 짤들..
그런 모든 것들에 대한 저작권은 어떻게 허락받은 걸까? 이 영화를 보면서 큰 주제는 캐릭터의 사용보다 '저작권' 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자신의 저작권을 창작자가 철저하게 관리해야 누군가는 이런 일을 겪지 않게 되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철저하게 내 개인적인 해석이다.
이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사용된 다양한 자료들의 저작권은 어떻게 해결한 것인지 궁금하다.
대체로 사람들의 저작권 인식은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 사실이 이해되지 않고 정말 별로라는 생각이 드는 반면에,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도움 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나 또한 어떤 자료를 찾을 때, 그 무분별하고 무작위 한 저작권 인식 덕을 보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영화라던가 음악 등을 손쉽게 검색만으로 찾을 수 있으면 얼마나 편한가! 하지만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결과물 하나를 만들기 위해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선뜻 그 무료로 뿌려진 자료를 다운 받을 마음까지는 들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에는 내 돈을 내고 정당한 방법으로 자료를 취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인식을 가질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렇게 저작권이 사용되는 일에 대해서 묵인해주는 게 더 좋은 결과로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판단은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것.
맷도 분명 좋은 의미로서 해준 묵인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본인을 힘들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과연 나는 저작물에 대해서 얼마나 청렴한 사람인가.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