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이름에 집착하게 된 걸까
동상이몽에 출연한 연예인 부부 이야기다. 부부의 뜻이 맞아 스무살이 넘는 성인을 입양하고, 그 딸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아끼고 사랑하며 알콩달콩 사는 부부. 무엇보다 이 부부는 입양한 딸의 성을 아내 성으로 선택했다. 그 성을 '준 게' 아니라 '함께 선택한' 남편은 성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그냥 딸이 아내를 똑닮았으면 하는 마음에"라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본인의 성을 딴 반려견이 있기에 괜찮다고 말한다. 단순하다.
2019년, 새로운 회사로 이직 준비를 할 때 이력서에 있는 이름 칸에 가지런히 적혀있는 내 이름 세글자가 어색하게 느껴지던 날이 있었다. 백, 그리고 지, 현까지. 자석같이 앞 뒤가 착착 달라붙던 내 이름이었다. 무려 27년간 불려왔는데도 거리감을 두게 되던, 그런 날이었다. 생각의 흐름은 아주 단순했다. "왜 난 아빠의 성으로 살게 되었을까?", "엄마의 성으로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때까지만 해도 이런 고민을 해 본적도 없고, 솔직히 말해 관심도 없었다. 그저 당연한 줄만 알았다. 그래서 덩달아 무지했다. 문제 의식이라기 보다는 과정이 마냥 궁금했던 나는 그 후로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알면 알 수록, 파면 팔 수록 더 궁금해졌다. 내가 '엄마를 더 사랑하고, 아빠를 더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페미니스트냐, 아니냐' 그런 문제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백씨보다 윤씨가 더 좋아보여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성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딱 한번 뿐이다. 사람이 태어나 출생신고를 할 때. 그 때 아빠 또는 엄마의 성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평생 그 성을 쉽게 바꿀 기회는 오지 않는다. 내가 태어났을 때에는 엄마의 성을 선택하거나 고려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고(이 시절 여성들은 하도 의아한 게 많아서, 도대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난 너무도 당연히 아빠의 성으로 27년을 살게 됐다. 결론적으로 아빠는 시대가 맞아 꽁으로 당첨됐다.
처음에는 27년을 아빠 성으로 살아봤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앞으로 몇 년은 윤지현으로 살아보자는 마인드였다. "그래야 한다"보다는 "그래도 된다"는 심보였다. 확신이 아니라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아닌가?"에 가까웠다. 그리고 내 마음 속 작은 주민센터에서 성을 바꾸고, 이력서 이름 칸에 백이 아닌 윤지현으로 이름을 써봤다. 마치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막상 어색한 내색을 감출 수가 없더라. 그래서 시작한 게, 백(윤)지현이었다.
쩝. 이름에 괄호라니. 내가 생각해도 찌질이같고 별로였다. 세글자도, 네글자도, 이도 저도 아닌 3.5짜리 내 이름이었지만, 백과 지 사이에 포근히 껴있는 윤을 보면서 '윤지현도 꽤 괜찮은 이름같다'고 생각한 나날이었다. 그렇게 애매한 내 이름을 나 혼자 고집부리며 메일, 연락처, 교육, 보도자료에 쓰기 시작한지 1년이 지났다. 그 누구도 알아봐주지 않았고, 심지어 그 이름은 엄마도 내가 평범했으면 좋겠다며 좀처럼 선호하지 않았다. 예민하고 생각도 많고 유별난 나는 여러 고민 끝에 3.5글자에서 네글자 이름으로 살기 시작했다. 그게 2021년 작년이다.
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간혹 내 이름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저 내 이름에 대한 생각을 설명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이름가지고 장난친다며 내 이름의 히스토리가 이해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냥 아무렇게나 부르라고 했다. 난 내 스스로 원해서 내 이름을 선택한 건데, 불필요하고 사소한 잡음으로 괜히 지치고 싶지 않았다.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동상이몽 덕분에 꼭 한번쯤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제야 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대단한 신념으로 시작한 게 아니어서, 글로 풀어내기가 참 어려웠다.
문득, 아빠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