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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남재 May 13. 2020

오자마자 도망친 혼돈의 땅, 뉴델리

여행이 삶에 일으킨 나비효과 pt. 1


1년 전 함피에서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오는 사람은 없다. 정말 인도를 두고 생긴 명언 아닌가? 1년 전 이미 여행을 했었던 나라라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 가슴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한 번 와봤다고 첫 방문과 달리 마냥 두렵지만은 않아도 쉴 새 없이 울리는 경적과 거리 곳곳에 넘쳐나는 쓰레기 그리고 관광객들에게 끊임없이 호객행위를 하는 삐끼들 때문에 지옥이 따로 없을 만큼 정신없는 것은 사실이다.  

 

아.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인도를 혼돈의 도가니로만 묘사한 것 같지만 그런 면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인도를 찾았다는 것은 그것 이상으로 좋으니까 온 것이다. 전 세계 수많은 나라를 두고 인도를 재방문한 이유는 작년에 여행 때 폭설로 인해 가보지 못했던 북부지역을 문하기 위해서다. 인도 북부는 중부 및 남부와 다르게 히말라야의 중턱에 존재하는 고도가 높고 매우 척박한 땅이다. 겨울에는 무섭도록 차갑고 폭설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린다. 그래서 6월에서 8월 사이 즉, 여름방학 기간이 아니라면 도저히 갈 엄두를 못 내는 곳이다.  대학생인 나에겐 한 달 살기를 해보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도 없다.


북부의 히말라야는 다채로운 볼거리로 넘쳐난다. 영화 ‘세 얼간이’의 배경으로 나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판공초, 순박한 사람들의 정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인도 최고의 오지마을 투르툭, 모험가의 기질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로까지 오토바이 타고 가는 짜릿한 모험부터 대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는 히말라야 트레킹까지.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여행지임이 분명하다. 한 달이라는 기간 중 이 모든 것을 해보며 겪은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차분하게 풀어보고자 한다.     


옛말에 방심이 화를 부른다는 말이 있다.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이어폰은 어디에 뒀는지 이미 내 수중에서 사라졌고, 셈도 해보지 않고 유심 카드를 덜컥 샀다가 작년보다 4000원씩이나 더 주고 샀다. ‘에이, 4000원 가지고 쩨쩨하게 군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는 대단히 뼈아픈 손실이다. 인도의 물가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대단히 낮은 편이다. 문제는 나의 하루 예산도 인도의 생활에 맞게 책정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잡은 생활비는 하루에 18000원 남짓이다. 이 가격이 무리가 아닌 것이 한 끼 식사에 2000원, 숙박비 5000원 이하로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인도다. 이렇게 계산해보면 2끼에 해당하는 밥값을 더 주고 유심을 산 것이다.     

혼돈의 길거리

인도의 대도시는 방문자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굳이 비유하자면 서울 출근 시간 지옥철 속에 24시간 내내 던져져 있다고 보면 되겠다. 첫 인도 여행 당시 제대한 직후라 웬만한 것은 넘어가는 나도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 맞긴 한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환경이 이런 만큼 빨리 지치게 되고 이성적인 판단능력이 흐려져 자기도 모르게 방심하게 된다. 그 점을 알고 여행자들을 털어먹으려는 사기꾼과 슬쩍 짐을 가져가려는 도둑들이 득실대는 곳이니 특히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걸 다 떠나서 난 도시 체질이 아니다. 조용히 책 읽고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이곳은 생지옥이나 다름없다. 한시라도 빨리 델리를 벗어나기 위해서 기차역의 외국인 전용 창구로 가서 암리차르행 표를 구매한다. 입국하자마자 가는 거라 시간표를 알아보지 못한 탓에 탑승 전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지만, 들숨조차 끈끈하게 만드는 높은 습도와 40도에 육박하는 곳의 길거리를 배회할 순 없는 노릇이다. 염치없지만 와이파이가 작동하는 식당에 죽치고 앉아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하다 보니 기차역으로 갈 시간이 성큼 다가왔다.


뉴델리역에는 진짜 경찰과 여행자들의 돈을 뜯기 위해 경찰 행세하는 사기꾼들이 있다. 오직 경찰만이 표를 검사할 권한이 있지만 사실상 이들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미 한 번 당해본 수법이기에 당당히 표를 보여주며 들어가려는데 출발역이 다르다고 한다. ‘응?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다시 한번 출발역을 체크해보니 뉴델리역이 아닌 듣도 보도 못한 NZD 역으로 되어있다. 경찰인지 사기꾼인지 모를 사람은 거리가 꽤 된다며 툭툭이를 타라고 한다. 돈을 아끼기 위해 숙소도 무조건 저렴한 곳에서 묵는데 오자마자 툭툭이라니, 그런 사치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차도 위의 굴러다니는 시내버스에 일단 올라탄 후 역 이름을 앵무새처럼 외친다.


“나잠무딘? 나잠무딘?”

“No.”


잔뜩 찌푸린 얼굴로 노를 연발하는 기사님들을 그냥 보내길 수차례, 한 버스의 기사님이 “OK”를 외치며 고개를 까딱거린다. 기쁨이 넘치는 표정으로 연신 땡큐를 외치며 버스에 올라탄다. 역시 인도든 한국이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인도의 기차는 연착이 자주 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인도에서 기차가 제시간에 출발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정시에 기차가 온다. ‘1년 새 정말 많이 발전했구나!’라고 내심 감탄하며 올라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기분 좋은 놀라움은 악취로 인해 금세 사라진다. 3일 동안 햇빛 아래 방치된 썩은 우유를 곳곳에 뿌린 듯 지독한 냄새가 코끝을 때린다. 아니다. 코안의 세포를 톡 쏘는 것으로 보아 푹 삭힌 홍어를 오물오물 씹을 때 나는 냄새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작년 건기 때는 더럽긴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병에 걸릴 듯한 불결함이 느껴진다. '1년 동안 변한 것 하나 없구나.’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한 것이다. 어차피 씻지도 못해 땀에 푹 절어 쉰 냄새가 나는 나나 청소가 안 된 기차나 더러운 것은 피차일반이라 생각하니 또 괜찮아진다. 입국한 이래로 덥고 정신없는 시내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터라 눕자마자 꿈나라로 떠난다. 첫날부터 이렇게 힘든 걸 보아하니 내가 인도에 온 것이 새삼 실감이 난다.     


맑은 눈망울


얼마나 잤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느덧 밝아진 하늘에 눈을 떠보니 선로 중간에 기차가 멈춰있다. 어째 정시에 출발해서 제때 도착하나 싶었는데 연착이라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인도 기차다.


멈춰버린 실내는 금방 텁텁해지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악취 탓에 코가 비명을 질러댄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선로로 뛰쳐나와 걷는데 중학생 혹은 발육이 빠른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뒤를 따라오며 매우 당찬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한 손을 앞으로 뻗으며 힙합 제스처를 취하는데 그 모습이 워낙 어설프기에 마치 나치 독일군의 경례처럼 보인다. 귀여운 햄스터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이 연신 “Photo!”를 외쳐대며 다가오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목석이 아닌 이상 외국인을 신기해하며 선뜻 다가오는 해맑은 영혼을 보고 어떻게 미소 짓지 않을 수 있을까?


선로 한복판에서 아이들과 함께 내 카메라를 가지고 놀던 중 열차가 김 빠진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역시 출발한다는 방송을 기대한 내가 바보지. 선로 한복판에 버려질까 얼른 뛰어올라 자리에 앉아 달리길 1시간,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암리차르에 도착한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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