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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남재 May 12. 2020

여행이 삶에 일으킨 나비효과

물방울을 통과할 때 찢어지는 햇빛처럼 여러 갈래의 길은 존재한다.

그 누구도 미래를 내다보며 점을 연결할 순 없다. 과거를 보며 연결할 뿐이다. 그러니 점이 어떻게든 연결되리라 믿어야 한다. 이를테면 당신의 배짱, 운명, 인생 등을 믿어야 한다. 이 관점은 단 한 번도 날 실망시킨 적이 없다. -스티브 잡스 2005년 연설 중 일부 발췌-


뭇 대한민국 대부분 남학생이 그렇듯 나 또한 군대를 전역할 때가 다가오니 내 진로에 관한 고민이 깊어졌다. 전역 직전 유튜브에서 동기부여 영상을 찾던 중 우연히 보게 된 이 연설은 처음에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나 싶었다. ‘그러면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는 일들에 시간을 낭비하라는 말이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그럴 바에는 내 취업용 스펙을 쌓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 옳지 않나?’ 등 온갖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아무튼지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신학교 교장이 주인공 한스와 면담하던 중 건넨 말이다. 언뜻 보면 학생을 격려하는 말 같으나 사실은 다른 것에 관심 끄고 열심히 공부만 하라며 다그치는 장면이다.    


나 또한 한스와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꾹 참고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간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학점관리를 잘하고 영어성적을 맞춘 후 인턴을 거쳐 최종적으로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대학생의 목표이기도 하다. 자신이 누구인지에 관한 고민 없이, 타인이 규정한 성공이라는 길 위를 걷던 나는 스티브 잡스의 저 한마디에 엄청난 괴리감을 느꼈다. 위대한 천재의 연설은 삶에 대한 나의 관점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고민은 나의 확고했던 가치관에 균열을 만들었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모른 채 무작정 공부만 하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삶이라는 여정에서 이유도 모른 채 평범함을 추구할 것인가 혹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을지 탐구해볼 것인가라는 갈림길 위에 선 것이다. 여태 살아오면서 나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본 적도, 이런 중대한 결정을 내려본 적 없었던 덩치만 큰 어린아이는 누가 대신 답을 내려주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삶은 다른 누군가가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불안한 마음에 주변에 조언을 구하면 100이면 100 복학해서 공부하다 보면 그런 쓸데없는 고민할 틈도 없을 것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리고 나 또한 어떻게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할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기에 복학 후 생각하는 것이 맞나 싶었다. 그러나 모두가 잘 알듯이 인생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대학 생활을 위한 등록금 및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휴학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나에게 선택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 친구들이 그러하듯 부모님께 손을 벌리거나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 대학공부를 할 수 있었고 부모님도 내가 복학을 하길 바라셨다. 그러나 다 큰 성인으로서 내 인생은 손 안 벌리고 스스로 책임지고 싶었다. 

     

그렇게 휴학의 이유가 생존을 위한 발판 마련이 되었고 나를 탐구하는 방법은 여전히 미스터리였으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전역한 다음 날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사장에 출근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시간만 흐르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나 한 가지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지금 아니면 나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는 다음 기회는 없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엄청난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여행을 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믿으라는 고 스티브 잡스의 말에 인생을 건 베팅을 하게 된 셈이다.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 보니 잡스의 저 말은 인생의 지혜가 가득 담긴 말임을 깨달았다. 한 번도 해외를 가본 적 없었던 풋내기가 첫발을 내디딘 곳이 인도였다. 왜 하필 인도냐고 물어보면 나도 모르겠다. 그냥. 그냥 끌렸을 뿐이다. 그리고 2달간의 여행을 통해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취업을 향한 길은 인생에서 나아갈 수 있는 수많은 갈림길 중 하나일 뿐이며,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부가적으로, 아니 결정적으로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또 한 가지는 나의 영어 실력이 정말 형편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고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부족한 영어 실력 탓에 아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날이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각에 분통이 터져 잠을 못 이룰 때도 종종 있었다.     


 한국에 오자마자 뭔가에 홀린 듯이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공사장에서 돈을 버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과 병행하며 영어공부를 하는 것은 죽을 만큼 힘들었으나 다시 할 여행을 생각하며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1년을 공부했다. 복학 후 향상된 영어 실력 덕분에 전공과 관련 있는 업체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기회를 얻었고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등록금을 면제받고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인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었으며, 최근에 그 얘깃거리를 영어면접에서 잘 풀어낸 덕에 탄자니아에 공학 선생의 자격으로 파견되어 더없이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이야기 중 일부를 이 책을 통해 여러분들과 공유할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지 않은가? 당시에는 몰랐으나 작은 용기를 내서 하게 된 여행이 엄청난 선순환을 생성해 내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렇다. 스티브 잡스가 옳았던 것이다!’     


주변 사람 모두가 왜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쓸데없는 짓을 하냐며 나무랄 때, 그저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 것이 이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셈이다. 

    

인도에서의 한 달 살기는 지금까지의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꾸준히 연습한 나의 영어 실력을 제대로 시험해 볼 수 있는 시험장이자 내가 해외에서 사는 것을 해낼 수 있을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나의 능력을 시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겼으며, 실제로 그 목적에 부합하게끔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보낸 32일이라는 시간은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노력을 하는 것이 어떻게 나에게 돌아오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고, 허세가 아닌 근거를 바탕으로 한 자신감으로 충만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해 주었다. 다시는 하지 못할 새로운 경험도 할 수 있었고 말이다.     


이 시리즈는 감히 설교나 조언하고자 쓰는 것이 아니다. 본인은 누군가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만큼 뛰어난 사람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시중에 존재하는 여러 여행 지침서처럼 맛집과 같은 정보를 주는 책도 아니다. 내가 백날 이 집 맛있다고 써봤자 구글맵에 나와 있는 후기들이 훨씬 더 유용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저 평범한 대학생이 인도라는 나라에서 보낸 한 달 동안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기에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어설펐지만 다사다난했던 인도에서 한 달. 이제부터 여러분들 앞에 그 보따리를 차근차근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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