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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남재 May 14. 2020

시크교 성지, 황금사원 템플스테이

여행이 삶에 미친 나비효과 Pt. 2

시크교의 상징황금 사원 템플스테이     


암리차르는 인도를 대표하는 황금 사원이 존재하기에 히말라야로 가기 전 꼭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다. 황금 사원은 그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겉면은 모두 금으로 덧대어져 있고 꼭대기의 돔형 지붕은 약 750kg의 황금으로 제작되었다. ‘금 750kg로 된 지붕이라니!’ 그 어디서도 이런 비슷한 것조차 있다는 걸 들어본 적 없다. 1577년 시크교의 4대 구루인 ‘람 다스’에 의해 건설된 황금 사원은 아그라의 타지마할과 함께 인도 최고의 건축물로써 평가를 받는 반드시 보존되어야 할 문화유산으로 손꼽힌다. 건축미도 유심히 살펴야겠지만 황금 사원에는 다른 곳에는 없는 특별한 점이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순례자나 여행자와 같이 어떤 목적으로 방문하던지 황금 사원 내의 식사, 숙박 모든 것이 무료라는 것이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인 나에게는 참으로 매력적인 곳이 아닌가?   

  

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시크교’라는 종교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옛날 아주 먼 옛날 한 스님이 있었다. 그 스님은 각지를 떠돌며 오직 시주받은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사람들이 재워주는 장소에서 자며 평생 수행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받은 은혜를 보답하고자 만든 종교가 시크교이고 이와 같은 이유로 평등을 가장 잘 행하는 종교로 알려져 있다. 그 시크교를 상징하는 가장 신성시되는 성지가 바로 암리차르의 황금 사원이며 교리에 맞게 방문객들에게 그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나눔의 미덕을 조금이나마 알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예쁜 황금 사원을 구경하면서 여행 경비를 아낄 수 있다는 마음에 이곳에 머무는 것이다. 너무 자기 생각만 하는 것 같아 좀 부끄럽긴 하다.   

  

암리차르는 꽤 큰 도시라서 기차역에서 사원까지 걸어가지는 못한다. 그래서 정부가 운영하는 미니버스를 이용하는데 버스 안으로 사람이 짜부라질 때까지 집어넣는다. 이렇게 더운 날 사람들과 옹기종기 서 있으니 찜통 속 만두가 된 것 같다. 나도 옆 사람의 숨결이 기분 나쁜데, 2일간 씻지도 못한 내 옆의 사람은 얼마나 짜증 날까? 이 덥고 습한 곳에서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아주 사람을 미치게 하는 버스다.      


황금 사원 근처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건물 구석에 ‘Foreigner only’라고 적힌 문이 보인다. 날 쓱 보더니 이름과 국적을 물어보고는 자리를 배정해준다. ‘아무리 그래도 비자는 발급 및 여권 소지 여부 정도는 검사해야지 않나?’ 내가 테러라도 일으키려면 어쩌려고 이렇게 쉽게 통과시키는지 원. 지극히 형식적인 절차를 끝내고 들어선 방은 청소 따위는 하지 않았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얼룩덜룩한 이불과 원래는 하얬을 새까맣게 변해버린 베개에서 퀴퀴한 냄새가 올라온다. 내가 지금 깨끗한 한국에 있다가 인도를 와서 그런지 모든 것이 비위생적으로 보이는데 적응할 때까지 더러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듯하다.      


방이 더러운 것은 둘째치고 밥 먹는 것도 역시 문제다. 밥 먹으려고 받은 식판에는 무언가가 딱딱하게 굳어 있고 3일 동안 신은 양말 냄새가 은은하게 올라온다. 이것까지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무료 식사하려고 몰려든 엄청난 인파는 정말 감당하기 벅차다. 한 줄 서기는 상상조차 하지 말라는 듯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서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며칠 굶은 사람들처럼 서로 먼저 들어갈 거라고 밀어댄다. 내 몸이 살짝 들린 상태로 식당에 딸려 들어가는데, 넘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순례자들의 굳을 살 잔뜩 박힌 발에 밟혀 죽는 개미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정말 밥 한번 먹기 힘들다.

figure 2. 근사한 한 끼

    

바닥에 깔린 멍석 위에 앉아 있으면 봉사자들이 돌아다니며 배식을 한다. 바닥에 앉는 것은 ‘지위고하 막론하고 같이 식사를 한다.’는 의미로 시크교의 교리인 평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사소한 행위 하나하나에도 이런 깊은 의미가 있다니, 역시 종교는 심오하다.


탈리는 우리나라로 치면 된장찌개에 쌀밥 한 그릇 그리고 김치와 같은 매우 흔한 음식이다. 휙휙 던지다시피 주는 모양새도 그렇고 공짜 음식이니만큼 별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굉장히 맛있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단순히 배가 고팠던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묽은 커리에 밥을 스윽 비벼 퍼 올린 한 숟갈은 살짝 매콤한 맛과 감칠맛이 잘 베여있다. 체면이고 뭐고 막 퍼먹고 있으니 봉사자들이 말없이 배식을 더 해줘서 세 그릇이나 먹은 후에야 배를 두드리며 식당을 나온다.   

  

배도 부르겠다. 샤워도 했겠다. 침대에 눕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진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웬 노랑머리 엘프가 잠에서 덜 깬 나를 툭툭 치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걸어온다.  

‘어? 뭐지? 얘가 왜 한국어를? 아, 아니다. 옆에 한 명이 더 있구나.’ 인사를 건넨 한국인 누나 한 명과 잘생긴 노랑머리 외국인이 눈앞에 서 있다. 노르웨이에서 왔다는 이 친구는 영화 반지의 제왕의 캐릭터인 레골라스와 정말 판박이다. ‘엘프는 현실 속에서도 존재하는 거였다니... 역시 세상은 불공평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생길 수 있는지, 저 친구의 얼굴 반만 닮아도 소원이 없겠다.


조금 이따 사원 내에서 진행하는 봉사활동하려고 한다면서 나보고 같이 가는 것이 어떠냐고 한다. 마침 심심하기도 하고 며칠간 공짜로 묵을 예정이니 나눔의 미덕을 실천하는 행위로 봉사활동이 가장 좋을 듯하다. 흔쾌히 승낙한 후 당장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난다. 방문자가 사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려면 정문에 있는 안내소에 말을 해야 한다. 그러면 인솔자가 자리를 배정해주는데 그곳에서 일정 시간 동안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셋 모두 급식소 입구에서 식판을 나눠주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다른 자리에는 뭐가 있냐고 물어봤어야 했다. 사람들 틈에서 압사당하지 않고 밥을 먹었었던 것이 기적일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에서 식판을 나눠주다니. 물론 다른 봉사활동도 힘들긴 매한가지겠지만 숨 돌릴 틈 없이 식판을 나눠주니 문득 작년에 뼈 빠지게 일했었던 공장이 아른거린다. 그때도 어깨가 부서질 듯이 아팠는데... 

또 멍청하게도 반바지를 입고 와서 상처가 난 부위에 계속 파리들이 들러붙어 피를 쪽쪽 빨아댄다. 끝없이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파리를 쫓아내지도 못해 상처 부위가 계속 가렵고 따갑다. 역시 사람은 행동에 옮기기 전에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자신의 시간과 체력을 쏟아붓는 행위라고 할지라도, 봉사활동이 보람차다는 것은 한 번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절대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특히 살면서 봉사라곤 한 번도 한 적 없는 사람이 여행 중 우연찮은 기회로 하게 된 상황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순례자들은 외국인들이 식판을 나눠 주는 것이 신기한지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같이 사진을 찍는다. 식사하러 오신 분들과 찍은 사진만 해도 조금의 과장도 없이 백 장은 넘지 싶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주름진 미소와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날 안아주시기까지 하신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선한 관심을 많이 받은 적이 있었나 싶다. 그 덕에 몸은 고단해도 가슴은 뿌듯함으로 가득 차올라 지치는 줄도 모르고 몇 시간이고 식판을 나눠 준다.      


“꾸준히 봉사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감사 인사를 받을 때 뿌듯함이에요.” 

     

작년에 인도에 오는 비행기에서 만난 한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그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머리로 이해만 됐을 뿐이지 공감은 못 했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저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고생했다며 이제 들어가 쉬라는 직원에게 우리가 더 고맙다며 필요하면 언제든 더 부르라고 큰소리를 땅땅 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수고했어! 봉사를 더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안내소로 와.”

“알았어! 꼭 다시 가도록 할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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