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남재 May 18. 2020

더위를 피해 간 인도 속의 티베트

여행이 삶에 일으킨 나비효과 pt.5

인도의 로컬 버스 가격은 남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저렴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을 확실히 실감할 수 있다. 40도에 육박하는 펀자브 지역에서는 그 정도가 특히나 심하다. 내부에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고 차체도 완전 쇳덩어리인 버스는 뜨거운 태양열을 그대로 머금은 채로 달리고 있다. 안 그래도 더위에 약한데 그냥 돈 좀 더 내고 에어컨 버스 탈걸 그랬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열기 속에서 버스 기사님은 어떻게 운전을 하시는지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지, 중간에 휴식을 취할 때 승객들에게 달콤한 설탕물을 나눠준다. 인도에서 남이 주는 걸 함부로 받아먹는 행위는 사기꾼들에게 빌미를 만드는 것인 만큼 늘 의심을 해야 하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뜨거움에 ‘아오, 돈 좀 뜯기면 어때?'라는 생각에 단숨에 들이켜니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가뭄에 쩍쩍 갈라진 땅에 단비가 스며들 듯 설탕물에 목이 적셔지니 순식간에 기운이 회복된다.     


앞뒤가 맞지 않지만 잘 마셔놓고 이걸 왜 주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더운 날에는 정부에서 한 잔씩 나눠주라는 지시가 내려온단다. 여행자들 주머니를 털어먹는 인도 경찰들을 숱하게 봐왔던 터라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9시간은 달리는 버스에서 물속의 해파리처럼 축 늘어지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옆에 계신 인도 아저씨께 말을 걸어 대화를 나누는데 아저씨께서 2년 전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셨단다.


 ‘세상에나! 나도 마침 해외 노동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런 우연이 있다니!’ 


당장 계획은 없긴 해도 언제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니, 아저씨는 매우 신이 나셔서 호주에 농장에 있던 시절의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신다. 

    

“호주의 뭐가 그렇게 좋았어요?”


“음... 그냥 모든 것이 좋았어.”


“농장에서 힘들었지 않아요?”


“힘들었지! 그래도 좋은 친구들 덕분에 정말 행복했어.” 

    

사진 속의 사람들은 일본, 인도, 호주 등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온갖 종류의 도저히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있음에도 위화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가족 모임을 하듯 끈끈한 정이 사진 속에 담겨있다. 농장에서 일만 한 것이 아니라 같이 소풍도 다니거나 요리도 하는 등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며 하얀 이가 드러나도록 웃는 모습에서 아저씨가 호주에서의 삶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한눈에 보인다. 농장에서의 고된 기억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진 아저씨를 보니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은 내 열망이 불꽃처럼 타오른다. 

    

환승 지점에 도착한 후 아저씨와는 헤어지고 홀로 버스를 갈아탄다.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가야 하나 싶다. 현재 목적지는 ‘맥그로드 간즈’라는 곳이다. 이 작은 마을은 인도로 망명해온 티베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티베트 불교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 사람들은 여느 인도인들과는 다르게 동북아시아 사람들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으며, 문화나 음식 또한 다른 나라에 온 듯 완전히 구분된다.  

 

그뿐만 아니라 인도의 마날리와 더불어 산간 휴양지의 대표적인 장소로 불리는 만큼 저렴한 숙소 및 맛집이 즐비해 대부분 여행자가 마날리에서 암리차르로 혹은 그 반대로 갈 때 한 번씩 방문하는 곳이다. 나 또한 히말라야 지역에서 장기간 지내기 전 티베트 문화를 접함과 동시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인도의 북서부 산간지역이라 그런지 불지옥 같았던 암리차르와는 완전 딴판이다. 더위는커녕 약간 서늘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곳의 밤은 산책하기에도 딱 좋다. 한 나라 안에서 기온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인도가 정말 크긴 하구나. 


걷기에 안성맞춤인 규모의 작은 마을에는 인도식, 일본식, 중국식 등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어 혹독한 더위와 진드기에 지친 날 위한 곳이라는 느낌이 팍팍 온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걸어 도착한 게스트하우스. 딱 한 명이 누우면 꽉 차는 공간에 공용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수용소 같은 곳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침대에 진드기만 없으면 여기나 LA의 5성급 호텔이나 나 같은 촌놈에게는 별 차이가 없다. 


델리에서는 쉬지도 못했고, 황금 사원에서는 진드기에 시달리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으며 오늘은 종일 더운 버스로 이동한 탓에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다. 진짜 인도로 입국한 이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달려왔구나. 그 어느 때보다도 휴식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작가의 이전글 국경 폐쇄식, 앙숙인 두 국가가 축제라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