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삶에 일으킨 나비효과 Pt. 4
“Hey J, 우리 국경 폐쇄식 보러 가지 않을래?”
“오! 좋지. 나 그거 꼭 보고 싶었는데 잘 됐다.”
노르웨이 친구와 함께 와가의 국경 폐쇄식을 보러 간다. 암리차르 근교에는 인도-파키스탄 국경이 위치하며 매일 늦은 오후 국경 폐쇄식을 거행한다. 국경 폐쇄식은 인도-파키스탄 두 국가의 군인들이 하루에 한 번씩 서로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제식을 하는 의식이다. 역사적으로 한국-북한처럼 서로 적대관계를 유지해왔던 두 국가 간의 행사는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것이기에 꼭 한번은 보고 싶었다.
국경지대까지는 버스가 운행하지 않아서 택시를 타던지 지프를 빌려서 가야 한다. 오후 2시 30분쯤 사원 앞에 즐비한 지프 근처에 모여있는 사람들과 함께 출발한다. 국경지대이니만큼 철저한 여권 검사 후에 발 디딜 틈 없는 경기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면 폐쇄식이 시작된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장소에서 햇빛을 막아주는 그늘도 없는데 습하기까지 하니 기다리는 것이 정말 길게 느껴진다. 한여름 가뭄 속 뙤약볕에 시들어가는 식물들이 이런 기분일까. 입에서 침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바싹 타들어 가고 있다. 이 더위 속에서 약 1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국경 폐쇄식이 시작된다.
유명한 인도의 가이드북에는 ‘이 현장은 마치 축제와 같다.’라고 적혀 있다. 인도-파키스탄 두 나라의 적대적 관계를 고려해볼 때, 양국의 군인들이 이런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제식을 경쟁적으로 서로를 뽐내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맞는 말이다. 각국 군인들은 서로 질세라 다리를 높이 치켜세우고 아스팔트를 다 부숴버릴 기세로 쾅쾅 찍어댄다. 정말 보기만 해도 내 다리와 허리에 통증이 밀려온다. 이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군인들의 화려한 퍼포먼스에 너나 할 것 없이 함성을 지르고 흥겨운 노래에 몸을 맡기니 순식간에 축제로 변해버린다. 힌디어로 나오는 노랫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몸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멜로디에 우리도 덩달아 소릴 지르며 흥에 겨운 군중들과 하나가 된다.
만약 국경 폐쇄식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면 어떨까? 인도와 파키스탄은 오랜 영토 분쟁으로 사이가 좋지 않다.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반도와 더불어 가장 분쟁이 많은 두 나라 사이에 이렇게 축제와 같은 행사가 있다는 것이 분단국가에 사는 나에게는 정말로 의미 있는 행사로 보인다. 한반도로 치면 남한과 북한의 군인들이 판문점에서 각국의 관광객들 앞에서 서로의 위용을 과시하며 그날을 즐기는 것 아닌가. 독특하지만 상징성 있는 행사가 하나라도 있다면 서로의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축제와 같은 국경 폐쇄식을 즐기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말도 안 되는 교통지옥 속에 갇히게 된다. 콜카타, 뉴델리, 뭄바이 인도의 가장 큰 대도시들부터 여러 동남아시아 국가까지 혼잡하기로 유명한 곳들을 다 방문을 해보았으나 이곳 암리차르의 교차로들에 비하면 점잖은 양반이었다. 답이 없는 문제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 해야 할까.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건 툭툭이를 모는 기사건 도로 한가운데서 수레를 끄는 사람이든 그 누구도 양보하지 않아 도로가 완전 마비 상태로 치달아있다. 7개의 도로가 모이는 로터리에 신호등 하나 없을 정도로 교통 체계가 형편없는데 서로가 눈곱만큼도 기다려 주지 않으니 거미줄에 걸린 메뚜기처럼 옴짝달싹 못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서로에게 울려대는 경적에 이명이 올 때쯤 경찰이 교통정리를 해주어 비로소 빠져나오게 된다. 이런 것을 보면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태도는 본인에게도 악영향을 미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