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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남재 May 20. 2020

산간휴양지, 맥그로드 간즈에서

여행이 삶에 일으킨 나비효과 pt. 6

아침 일찍부터 기름에 푹 절은 난과 혀가 얼얼하게 짠 통조림 피클로 뱃속을 맞이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배가 쿡쿡 쑤시며 꾸르륵거린다. 한 시간째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속에 있는 것을 비워내도 도무지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인다. 온갖 길거리 음식을 먹어도 괜찮았던 내가 배탈이 나다니, 난을 만들 때 사용한 기름이 사실은 폐유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마을을 쭉 한 바퀴 돌며 구경할 계획이었는데 그럴 상태가 아니라 근처의 절로 향한다. 마을 어귀에 있는 이 조그마한 곳에 볼거리가 있다기보다는 숲속의 공기를 마시며 아픈 배나 달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의 여느 산처럼 푸르른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바람은 시큰한 냄새를 한껏 머금고 있다. 복통도 사라지게 만드는 이 신선한 공기를 음미하며 걷던 중 한 커플이 길 한가운데서 키스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한층 진정되었던 복통이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으로 바뀌어 파도처럼 밀려온다. ‘저 자식들이 감히 신성한 절 근처에서 저런 애정행각을 하다니, 너무 부럽구만.’ 언젠간 반드시 커플 배낭여행을 하고야 말테다.     


맥그로드 간즈에는 여러 사원과 더불어 마을을 대표하는 가장 큰 절이 하나 있는데 티베트 불교의 스님들이 생활하고 수행을 하는 곳이다. 규모가 제법 큰 편으로 1층의 넓은 마당과 2층의 수행하는 공간이 따로 되어있다. 1층은 스님들과 방문객들이 서로 어우러져 대화를 나누는 공원 같은 곳으로, 스님들과 대화를 통해 티베트 불교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다. 1층과 다르게 2층은 오로지 수행을 하는 공간이다. 가운데 큰 불상이 있는 사당을 중심으로 스님들이 사각형으로 둘러싸고 각자 자리를 잡고 수행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수행하는 승려

불교가 성행하는 국가 중 하나인 우리나라의 절에 가도 관광객들이 모이는 시간에 다 같이 모여서 수행을 하는 광경은 굉장히 보기 힘들다. 그것도 이런 대규모로 말이다. 하지만 이곳의 스님들은 수행 이외의 것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스님들 사이에 현지인과 관광객이 끼어서 같이 기도도 드리고 절도하고 있다. 비록 불자는 아니지만, 슬쩍 스님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해본다. 주변의 알아듣지 못하지만 깊은 의미가 담겨있을 불경 외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앉아 있으니 신기하게도 잡생각이 싹 사라진다.  

   

‘어라? 진짜 신기하네? 살면서 명상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게 뭐지?’      


눈을 뜨고서도 2초 정도 지속이 되는 붕 뜬 느낌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이 짧은 명상으로 내 손에 책이 있으면 이 자리에서 완독할 수 있을 것 같은 집중력이 생겼다. 덕을 쌓는 수행을 하기에 앞서 명상을 통해 번뇌를 떨쳐내고자 할 수 있다는 말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나 같은 무지렁이도 이렇게 무언가를 느낄 정도라면 스님들은 분명 어마어마한 진리를 속으로 생각하고 있으리라. 쓸데없는 걱정과 생각을 떨쳐내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명상은 일상생활에도 큰 도움이 될듯하다.     


하지만 역시 수행에 오롯이 정진하기에는 나는 한참 부족한 중생이다. 명상하면서 모든 고민을 잊을 순 있어도 배고픔은 잊지 못하겠다. 스님들은 어떻게 몇 시간을 앉아계시는지, 그에 비하면 15분 정도 앉아 있었다고 다리랑 허리가 아프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도 들려오는 내가 참 한심해 보인다. 경건했던 나의 마음은 절에서의 좋은 추억으로 남겨두고 일본 음식을 기가 막히게 한다는 맛집이 있다고 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일본식 채식요리

맥그로드 간즈의 최고 장점을 꼽자면 역시 온갖 나라의 음식을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국적 레스토랑들이 즐비해 있어 자기 입맛에 맞게 선택을 하면 된다. 그리고 많은 레스토랑 중에서도 이 일식당은 매일매일 변하는 세트메뉴를 선보이기로 유명한 곳이다. 한껏 기대한 채 오늘의 메뉴를 주문하니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것 같은 소박한 한 상이 나온다. 정체불명의 샐러드와 감자로 된 돈가스, 겉은 바삭하고 튀김 내부는 촉촉한 튀김은 입에 넣는 순간 반해버렸다. 게다가 소스는 어떻고? 잘 익은 살구 잼을 발라놓은 듯 새콤달콤해 감자와 잘 맞아 내 입맛을 정확히 저격한다. 


“이 메뉴 내일은 안 팔아? 또 먹고 싶은데”

“미안. 내일은 다른 메뉴가 나와. 그거도 맛있을 거야”     


맛은 있는데 여전히 배가 고프다. 고기를 먹고 싶어도 불교가 성행하는 곳이라 그런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때마침 눈에 띄는 인도식 만두 모모, 혹시나 물어보지만 역시 야채 모모다. 맥이 탁 풀린다. 난 도저히 토끼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풀만 먹고도 그렇게 총총 뛰어다닐 수 있을까? 이곳에 지내는 동안 육식은 꿈에서나 해야지 싶다. 


아쉬운 대로 한 봉지를 사서 터덜터덜 걸으며 모모 하나를 입에 넣자마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남은 것들을 하수구에 집어 던진다. 악마의 불타는 손가락으로 입속을 휘젓고 배를 어루만져 복통이 다시금 밀려오는 맛이다. 얼얼하게 쓴맛까지 나는 이런 끔찍한 음식을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는 거지?, 상한 채소가 주재료인가?, 길거리 음식들은 웬만하면 맛있는데 이 모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 별의별 이유가 다 떠오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모모가 여행 중 처음으로 남긴 음식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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