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찾은 여유와 평화
여행을 떠나는 계기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여행 일정이 생기고 거기에 맞춰 여행지를 고르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가고 싶은 곳이 생기고 그에 따라 계획을 세우는 방식이다.
엑상프로방스는 묘하게도 두 방식 모두가 해당하는 곳이었다.
엑상프로방스 Aix-en-Provence, 흔히 엑스 Aix 라고 줄여서 표현하고는 하는 이 도시는 프랑스 남부에 위치해 있다.
이곳 엑스는 옛 로마 시대부터 온천이 유명한 곳이었다.
엑스란 라틴어로 치자면 아쿠아 Aqua, 즉 물이라는 뜻이다.
로마가 지중해 연안을 지배하던 시절, 이곳 엑스는 오늘날 프랑스에 해당하는 영역에서 로마가 확보한 첫 도시였고 그만큼 주요한 거점이었다.
로마의 흔적은 아직도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로마 사람들은 이곳을 라틴어로 아쿠아이 섹스티아이 Aquæ Sextiæ 라고 불렀다.
엑스의 이명으로, 도시 곳곳의 간판과 표지판에서 볼 수 있는 섹스티우스 Sextius 라는 명칭이 이 로마 시절의 지명으로부터 유래했다.
옛 온천이 있던 자리에는 호텔과 스파가 자리했고, 곳곳에 있는 분수의 수를 합하면 거의 천 개에 이른다.
어딜 가나 크고 작은 분수가 있다.
엑스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바로 화가 폴 세잔 Paul Cézanne 이다.
도심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세잔의 작업실을 찾을 수 있다.
그가 쓰던 물건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작업실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그가 여러 차례 그렸던 생 빅투아르 Sainte-Victoire 산도 실제로 보인다.
세잔이 아내 오르탕스 피케 Hortense Fiquet 와 결혼식을 올린 교회도 그대로 남아 있다.
레스토랑, 카페, 길거리, 교회, 기념품에 이르기까지 세잔은 이곳 엑스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엑스는 흐린 날이 거의 없다.
잠깐 소나기가 내리거나 먹구름이 오다가도 금세 날이 갠다.
엑스가 위치한 이곳 프로방스 지역은 가히 태양의 지방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태양빛은 따스하지만, 그렇다고 불쾌하지는 않다.
습하지 않은 까닭에 양지에 나오면 온기를 느끼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다.
누구도 싫어하지 않을 기후이다.
그 덕에 이곳 엑스는 거의 사시사철 야외 활동을 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햇빛 덕인지 과일과 채소도 다들 맛있다.
우리에게 만화영화로 익숙한 라따뚜이의 맛은, 남프랑스의 태양에 어머니의 사랑을 더했기에 그러할 것이다.
사실 엑스로 온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의 모든 면이 다 좋아진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면 웬만한 일은 다 즐겁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큰 사고가 아닌 나머지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여행도 그렇다.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는 그 일상의 사소함마저 소중해지는 일,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