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 여고, 거의 여대와 같은 대학교, 직장도 여성 성비 90%를 자랑하는 곳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삶에 익숙한 내가 아들 둘을 키우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남자와 여자는 아예 다른 생명체구나.
정말 다르다고 느낀 포인트는
#1. 소통
나는 누군가와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엄마든 언니든 누군가가 이야기하면 듣고 반응을 하는데.. 우리 아들들과 소통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이리 와서 무언가를 하라고 하면 절대 한 번에 듣지 않는다.
" oo아, 이리 와서 밥 먹자."
...................
"OO아, 이리 와서 밥 먹어."
..................
"OO아, 다섯 센다. 1,2,3,4,5"
이러면 그제서야 달려오는 우리 아들래미.
대체, 왜? 한 번 부르면 오지 않는걸까? 왜? 부르면 대답을 안 하는 걸까?
실제로 남자아이들은 청력이 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아이를 불러서 무언가를 시켜야 할 경우가 있을 때에는 직접 가서 눈을 보고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정말 핵심적으로 내가 전달해야 할 내용들만 짧게 이야기 한다. (어차피 길게 이야기하면 다 듣질 않으니)
그리고 사실 제일 많이 쓰는 방법이 다섯 카운트다운인데 이게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고 하여 최대한 자제하려 노력중이다ㅠ
예전에 우리 아들 어렸을 때, 같은 나이 또래의 여자 아이와 친하게 함께 어울렸던 적이 있다. 그 때 두 아이에게 블럭을 줬는데, 우리 아들은 그 블럭으로 쌓기 놀이를 하고 다른 여자아이는 그 블럭으로 엄마와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편견일 수 있지만, 여자아이들은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 하기를 좋아하고, 감정을 나누길 좋아한다. 나도 늘 누군가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해서 실컷 이야기하고는 "나중에 만나서 더 이야기하자" 라고 할 정도니까.
그에 비해 아들은 남과 소통하기보다는 무언가를 만들고 내가 할 것에 집중하는 걸 더 좋아한다.
나도 친구처럼 아들과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고 싶지만.. 그건 아직까지 시기상조인 것 같다.
#2. 몰입
아들을 키우면서 놀랐던 건, 아이가 한 분야에 호기심이 생기면 정말 그것만 무섭게 집중하는 성향을 보였던 점이다. 처음에 아들이 좋아했던 건 자동차. 특히나 구급차와 소방차처럼 특수차량을 참 좋아해서, 매일 소방서 주변을 기웃거리며 구급차와 소방차를 관찰했고 집의 책들은 각종 자동차 책으로 도배되었었다.
그렇게 평생 자동차만 좋아할 것처럼 집중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는 갑자기 공룡에 꽂히더니 공룡책만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전 처음 들은 공룡 이야기에만 집중하다보니 덕분에 온 가족 모두 공룡 박사가 되어가는 중이다.
신기한 것이, 엄마 눈에는 공룡이 다 똑같아 보이는데, 아들 눈에는 비슷해 보이는 공룡들도 다 구분이 된다는 점이었다. 각 공룡별로 무엇이 다르고, 얘는 어떤 특징이 있고.. 참 잘 캐치하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있는 경남 고성 여행
"엄마, 얘는 몸 길이 12m에 백악기 시대에 살았대요."
"엄마, 타르보사우르스랑 티라노사우르스랑 같아 보여도 티라노는 앞발가락이 2개잖아요. 자세히 보면 다르다구요."
그렇게 5살 후반부터 시작된 공룡 사랑이 지금은 약간 시들해졌지만, 아직도 진행중이다. 지금은 로봇과 종이접기가 다음 몰입 대상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아들의 몰입은 사실 나로써는 신기할 뿐이다. 내가 그렇게 하나에 흠뻑 빠져 좋아해본 기억어 없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쩜 하루종일 공룡 생각만 하는걸까? 눈 떠서부터 눈 감을 때까지 공룡 피규어, 공룡 책들에 파묻히고, 노래도 꼭 공룡 노래만 듣고.. 정말 본인이 질릴 때까지 빠져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아들이지만 참 놀랍다. 덕후 기질이 농후하다. (엄빠는 그런 기질이 1도 없는데 ㅋ)
그런데 이런 몰입이 아이의 지식 확장 및 인지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동차에 빠져 있을 때에는 비슷한 차종이지만 회사별로 다른 차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다양한 특수 자동차들에 관심을 가지면서 각 차량들이 하는 역할을 알게 되면서 사회를 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룡에 빠져 있을 때에는 공룡의 탄생과 번성 및 멸종의 역사를 책으로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중생대 시대를 알게 되고, 공룡의 멸종 원인인 화산 폭발과 운석 충돌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지구과학 쪽으로도 호기심이 확장되었었다.
또, 공룡을 좋아할 때가 한창 아이가 한글을 익힐 때라, 공룡을 좋아하면서 공룡 책에 푹 빠지게 되었고, 공룡 책을 많이 읽다보니 읽기독립이 자연스럽게 되는 효과도 누렸다.
#3. 에너지
아들들과 함께 딸만 둘인 동네 엄마네 집에 갔다. 그 집에 피아노가 있었고,우리 둘째 아들이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해서 피아노 뚜껑을 열어주고 의자에 앉혔다. 그나마 첫째보다 얌전한 둘쨰가 피아노를 치는데,
"쿵쾅쿵쾅~~~"
아들이 피아노 건반을 손가락이 아닌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는 것에 딸만 둘인 그 집 엄마가 흠칫 놀라며 말한다.
"언니, 정말 우리 XX이 피아노 세게 친다~~ 호호호"
사실 내가 봤을 땐 그리 놀랍지 않았는데...
이 모습을 보던 우리 첫째도 피아노 자리에 앉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힘껏 피아노를 치다가 제 흥에 못 이겨 발로 피아노 건반을 쾅쾅쾅!
다행히 그 엄마는 웃으며
"남자아이들은 확실히 다르긴 한가 봐 언니."
라고 말했지만 나는 사색이 되어 아이에게 달려가 피아노 뚜껑을 덮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다 같이 놀이터에 갔는데, 아들만 둘인 또 다른 또래의 엄마와 아이들을 만났다. 2월 말, 추운 겨울이었음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놀던 다른 집 그 아들래미 둘. 아파트 단지 내의 작은 물길을 점프하며 건너는 아슬아슬한 놀이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종종 엄마가 하지말라고 했지만.. 신나게 노는 아이들 귀에는 절대 들릴 리 없겠지.. 그러다 결국 한 아이가 빠져서 젖고, 또 다른 아이도 같이 빠져서 신발이 다 젖고..지켜보는 사람들은 아슬아슬했지만 그 엄마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신발이 다 젖었음에도 신나게 놀다가 감기가 걱정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집에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딸 둘 엄마가 나에게
"언니, 그래도 언니네 아들들이 아들 지수는 낮은 편인 것 같아. 호호호."
라고 말하고, 나는 아들 키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며 웃어 넘긴다.
그 엄마가 말했던 아들 지수. 이건 넘치는 에너지, 개구짐, 장난끼, 호기심을 통틀어 한 단어로 표현한 말일거다. 사실 나도 우리 아들들을 보면, 대체 왜 가만히 앉아서 놀지 않고 꼭 점프를 하는 걸까. 왜 집 안에서 자꾸 뛰어다니며 노는 걸까. 항상 의문이다. 아들들은 가만히 있기에는 몸이 근질거려서 안 되는 모양이다. 그냥 걸어다녀도 될 거 같은데 뛰는 걸 보면 일단 생각보다 몸이 먼저 앞서는 모양이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에너지가 많으니 어쩔 수 없나보다.. 받아들이는 수 밖에
이 외에도 내가 봤을 때 아들과 딸은 구조적으로 참 다른 점이 많은 것 같다. 조금은 버겁지만, 나도 아들을 낳고 키우면서 참 많이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