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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다방 Apr 22. 2023

떼어내지 못한 기침

쿨럭쿨럭

 밤새 기침을 하느라 제대로 된 잠을 못 잔 지 일주일째다. 마지못해 뒤척이며 몸을 일으킨다. 쿨럭쿨럭 기침이 멈추지 않고 또 새어 나온다. 얼마나 독한지 조금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는 이 녀석 때문에 가족들과 떨어져 독방 신세다. 녀석의 기세등등함을 꺾어보려 약을 미지근한 물과 함께 들이켠다. 내 인기척에 아이가 일어나 내가 있는 주방으로 나온다. 지난 일주일 몸도 아팠지만 회사 일이 바쁜 탓에 아이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반가운 마음에 아이를 와락 안아주었다. 아이는 귀찮은지 싫다며 나를 밀어낸다. 아이는 매일 사랑을 주지 않으면 금세 멀어진다. 떨어지라는 기침은 폐까지 점령해 있건만 아이는 점점 내 몸에서 떨어져 간다.


 그때 일어난 남편이 불쑥 나에게 갑작스레 화를 낸다. “나 지금 미혼부처럼 살고 있는 것 같아. 너는 너만 생각해. 집안일, 아이 그리고 나는 뒷전이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거야? 우리는 안중에도 없니?” 지난 일주일 동안 힘들었던 모양이다. 당혹스러웠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요즘 온전히 나에게만 정신이 팔려 있던 것을 들켜버린 것이다. 남편이 쏟아내는 소리를 멍하게 듣는다. 쿨럭쿨럭. 눈치 없이 기침이 새어 나왔다. “아프고 바빴잖아. 기침하는 거 안 들려?“ 나는 그렇게 혐오하던 기침을 핑계로 구차하게 변명했다. ”아프다고 하면서 회사 일은 열심히 하잖아. 우리한테 신경 좀 써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해 봐.” 남편의 말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남편은 14년 차 배테랑 직장인이다. 그는 퇴근하는 순간 회사일은 잊고, 집안일에만 집중한다. 마치 머릿속에 온/오프 버튼이 있는 것 같은 그는 회사일로 지쳐 귀가할 때, 가끔 술에 취한 채 올 때도 집안일,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체크할 정도이다. 그런 남편이 하루 종일 회사일에 허덕인 것도 모자라 집까지 끌고 와 끙끙대는 나를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때로는 남편처럼 해보려 노력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누군가 관성이 무섭다고 했던가. 이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그는 기침을 해대며 아프면서도 집안일은 내팽겨둔채로 회사일에 매진하는 나를 보며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떨어지지 않는 기침을 붙들고 있던 건 나 자신이었던 걸까. 기침을 핑계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 건 아닐까.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미혼부, 엄마 없는 아이로 만들고 나는 오롯이 회사 일에만 몰두한다. ’무엇이 나를 일에 몰두하게 만들까?‘ 나라는 사람을 그저 OO회사 책임이라는 타이틀에 가두어 놓고 그것을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 타이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겐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나는 살고 있다.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지 못하는 그것.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죽어라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을 이제라도 멈추게 하고 싶다. 멈출 용기를 간절히 달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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