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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다방 May 01. 2023

폴라로이드 사진

아이의 시선

 얼마 전 아이에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선물해 주었다. 스마트폰 카메라 사진은 좀처럼 다시 보는 일이 없지만 아날로그 사진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인화된 사진을 보고 싶기도 했다. 아이는 카메라를 받은 순간부터 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진 찍을 준비도 되지 않은 날 것들을 찍었다. 나를 찍기도 하고, 식탁에 올려둔 그릇을 찍기도 하고, 의미 없는 사진들을 찍어댔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한치의 망설임이 없이 셔터를 눌렀다.


 필름 한 팩에 10장이고, 만원 정도이니 장당 약 천 원이다. 사진 한 장에 천 원이니 매우 비싼 편이다.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아무 사진이나‘ 찍어대는 셔터를 멈추라 말했다. 아이에게 아무거나 찍지 말고 의미 있는 사진을 찍으라며 훈수를 뒀다. 그러자 아이는 의미 있는 사진이 뭐냐며 되물었다.


  왜 나는 준비가 잘 되어 있고, 남들이 보기에 예뻐 보이고 정형화된 그런 피사체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의미 있는 사진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아이의 시선에서 그저 찍고 싶은 대로 찍었을 뿐일 텐데 나의 고정관념을 투영하여 정답이 아니라며 선을 그은 것이다. 언제부턴가 어떤 행동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는 결과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렇게 배웠다. 그렇기에 나는 아이가 찍은 사진 한 장에도 폴라로이드의 찍으면 되돌릴 수 없음을 강조하며 더 의미 있는 사진을 강요했는지 모른다. 모든 행동에 의미 있는 결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이제야 돌이켜보면 아마도 모든 행동은 모두 숨겨진 의미가 있음을 잘 못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찍은 사진들을 모아두니 제법 그럴싸해 보인다. 감성 돋는다고 해야 하나. 불규칙한 피사체들 사이로 아이가 좋아하는 구도가 엿보였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내가 말한 ‘아무 사진’들이 모여 아이의 시선으로만 담을 수 있는 세상의 모습이 보인다. 오늘도 아이는 내가 정한 기준으로 좁은 구석만 비추는 나의 시선을 아무 기준 없는 넓은 세상으로 돌려놓는다. 그 시선에 조금 머무르는 것만으로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법을 이제야 조금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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