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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mycanada Aug 28. 2020

03. 저기압일 땐, 고기 앞 아니고 떡볶이 앞으로

기분 나쁜데?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가 와있다. 원고를 투고한 상태라, 모르는 전화에도 온갖 신경이 곤두선다. 전화번호를 검색해본 결과, XXXX출판사. 여행에세이를 많이 출간하는 출판사답게, 가장 먼저 연락이 왔다. 이메일을 확인하니, 원고에 대해 문의할 내용이 있으니 전화를 달라는 회신 이메일이 와있다. 느낌으로 출간제의는 아닐 것 같았다. 정말 욕심나는 원고였거나 출간제의를 하고 싶었으면, 문자를 주거나 이메일로 출간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텐데 '문의'라고만 되어 있어 출간기획서나 원고에 대해서 정말 '문의'가 있는 것일까? 하고 잠깐 고민하다 결국 전화를 해보았다. 

 

 "저희랑 일하려면, 반기획으로 하셔야 할 것 같아요."


  해당 출판사는 놀랍도록 정확한 금액과 함께, 반기획 출판을 제의했다. 반 기획출판은 옵션에 없는 일이었지만, 애초에 출판사에서의 연락을 기대조차 하지 않은 상태라 반 기획출판제의도 감사했다. 어쨌든 원고를 검토는 했다는 거니까. 그리고 그 답으로 손수 전화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 뒤에 말만 아니었어도 나는 그 출판사를 참 괜찮은 기억으로 남길 뻔했다. 


"뭐, 글 제대로 배운 적 없는데 이 정도 쓰시는 거면 재능은 있는 것 같은데. 이 원고 그대로 책 내주겠다는 곳 있으면, 그 출판사 의심부터 해봐야 해요(웃음). 제대로 된 출판사인지."


비웃음과 귀찮음이 느껴지는 담당자의 목소리에 적잖게 당황해 딱히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몇 초간 침묵했더니, 그가 하는 말. 


"아, 기분 나쁘게는 듣지 마시고요." 








 전화를 끊고 나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원고에 대한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았으면 마음은 쓰리겠지만 달게 받아들이고 고치기라도 할 텐데, 그냥 막연히 '네 글을 결함 그 자체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재능은 있다? 원고를 출간할 것인지의 여부를 '네, 아니요.' 로 답을 달라고 했지, 남의 재능을 함부로 평가하라고 한 적은 없다. 수개월을 아침에, 낮에, 틈틈이 써 내려간 글에 대해 처음 듣는 피드백이 저렇게 저렴한 비웃음이라니. 조롱당한 기분이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말라고? 엄청 나쁘거든!'


씩씩거리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글을 몇 개 더 써야 원고가 완성되는데, 이 기분으로는 도저히 쓸 수가 없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다가 문득, 배고픔을 느꼈다. 이 와중에 위는 눈치가 없다. 결국,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줄 배달 앱을 켰다.


 응급실 떡볶이


칼로리 폭탄인 데다가, 영양가라고는 없어서 평소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만 떡볶이를 먹는다. 예를 들면 좋은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우울한 데는 매운 게 최고니까. 오늘은 우울하니, 맘껏 떡볶이를 음미하기로 한다. 주문하기 버튼을 눌렀다. 물론 치즈와 당면을 추가해서.


  



 혀가 얼얼한 매운맛이 텅 빈 위로 들어가니, 속이 타들어 갈 것 같은 느낌이다. 얼얼한 입과 동시에 머리끝까지 퍼져가는 매운기가 엔돌핀을 생성한다. 이상하게도 이 기분에 스트레스가 좀 풀린다. 이 맛에 저기압일 땐 고기 앞보다는 떡볶이 앞으로 가게 된다. 눈물 콧물을 다 빼면서 다 먹고 나니 배가 부르다. 

 내 책을 내는 것이 영화처럼 매끄러운 길이 될 것이라고는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분명, 산 넘어 산일 것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값싼 태클에 흔들리지 않기로 한다. 그러니 그 저렴했던 비웃음에 나는 딱 떡볶이를 먹었을 때 흘렸던 눈물 콧물만큼만 반응하겠다. 이제야 컴퓨터를 켜고, 원고를 다시 열어볼 용기가 생겼다. 찬찬히 읽어보니,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틀린 것이 눈에 들어오고 조금 어색한 문장도 있다. 전문가가 아니니 완벽하고 매끄럽게 다듬어 줄 순 없겠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기로 한다. 앞으로 받을 출판사들의 숱한 거절 메일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완벽한 원고가 아니라,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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