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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mycanada Apr 21. 2024

이사



이사가 결정된 것은 생각보다 순식간이었다. 평소와 다름없던 어느 날 우리는 침대에 누워 덤덤히 이야기했다.

-       우리 그러면, 이사를 가자.

생각해 보면 인생의 모든 결정이 길고 긴 심사숙고 끝에만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여행길에서 만나게 된 카페에 무심코 들어가는 것처럼 오로지 끌림으로 인한 결정이 있고,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는 것 같은 위험한 결정도 있다. 그리고 이번처럼, 딱히 선택권이 없는 결정이 있다. 

나날이 오르는 이 도시의 집 값에 비례하게 물가 역시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외식을 할 때마다, 장을 볼 때마다, 버스를 탈 때마다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 일할 수 있는 비자도 없어 생산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직장에서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을 남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밤낮이 없이 남편을 찾는 고객들의 전화가 울릴 때마다 미안함은 더 해졌다. 그렇다고 그 모든 활동을 멈출 순 없었다. 나는 여전히 장을 보았고, 이따금 외식을 즐겼고, 친구를 만났고, 버스를 탔다. 다만 조금 더 현명한 소비로 누가 되지 않게끔 노력했다. 그렇다고 죄책감이 줄어들진 않았다. 오히려 노력하면 할수록 이 도시가 갑갑하고 환멸 났으며 고작 종이 한 장짜리 비자가 없어 아무것도 어쩌지 나의 무능함에 끝없이 좌절했다. ‘아무것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은 문자가 가지는 뜻, 그 이상으로 파괴력이 있었다. 이사를 결정했던 것은 어쩌면 이 분열을 멈추고 싶었던, 오로지 나를 위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나 곧 이사해. 

이사소식을 알리기 위해 오랜 친구에게 문자를 했다. 뜬금없는 이사소식에 놀란 친구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하다 보니 덤덤한 척 꾹꾹 눌러 담았던 본심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       늦어도 4개월이면 나온다던 영주권은 6개월째 깜깜무소식에, 이자는 갑자기 올랐지. 근데 나는 워크 퍼밋 없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 알바도 못하고, 면허 신청도 못 해. 그러니 어떡해 매달 나가는 고정비용이라도 줄여야지. 캐나다가 아니라 개나다야. 개 같아.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나는 전혀 덤덤하지 못했다. 작은 울림에도 동요할 만큼 내내 참고 있었다. 지금의 이 상황이 캐나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내 잘못인 것 같았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등록금, 더 불리한 위치, 더 많은 제약을 받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곳에 남기로 결정한 것은 나였으니까. 그래도 여전히 납득은 가지 않았다. 매 순간에 최선을 다했던 결과가 죄책감, 무력감, 겨우 이런 보잘것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이. 


 이사가 결정된 후로는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2주 만에 새로 들어갈 집을 구했고, 3주째에는 계약을 완료했다. 계약이 성사된 뒤에는 살림세간을 옮기는 가장 큰일이 남아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몇 년간 집에 맞춰 불어난 짐을 형편에 맞춰 다시금 줄이는 일이었다. 우선 처리가 쉬운 각자의 짐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낡은 건 아니지만 유행이 꽤나 지나 더 이상은 입지 않은 블라우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덕을 자주 보았던 롱 울 스커트, 구멍이 났지만 꿰매지도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고 있었던 낡은 티셔츠. 평소라면 언젠가는 입겠지 하고 묵혀 놓았을 테지만 이번엔 과감히 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안방에 가장 많은 짐을 차지하고 있던 옷들 중에 버릴 것들을 한데 모아보니 큰 봉지가 꽉 차고도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굶더라고 멋진 옷을 사면 배가 부르던, 불과 몇 년 전의 자아는 그렇게 검은 쓰레기봉투에 담겨 종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즐겨하던 베이킹도 당분간은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호호 불며 먹던 뜨끈한 스콘이나, 양껏 초콜릿을 넣고 간식으로 먹었던 바나나빵을 먹지 못한다고 큰일 나는 것은 아니니까. 욕심부려 크기별로 사두었던 케이크틀도 나란히 상자에 넣고 봉인했다. 유통기한이 훌쩍 지나버린 영양제는 휴지통에 후드득 덜어내고, 너무 오래 묵은 반찬은 싹싹 비워 빈통으로 만들었다. 무언가를 정신없이 상자에 넣고, 창고로 나르다 보니 어느새 집은 약간 홀가분해 보이기까지 했다. 있으면 편하겠지만, 없다고 ‘큰일 나는 것’은 아닌 물건들은 지하에 있는 단 몇 평짜리 창고를 가득 채웠다. 상자에 ‘베이킹 도구’라던지 ‘책’ 같은 표시가 없었다면 나는 저것들이 몽땅 불태워져 세상에서 사라져도 결코 무엇이 사라졌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창고가 언젠가는 블랙홀이 되어 시커먼 구멍 저편으로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다시는 마주하지 않고, 나와 함께 숨 쉬고 잠들었던 필요가 아닌 욕심을 차라리 누가 훔쳐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홀가분할 것만 같다. 




새로운 우리의 보금자리는 다운타운 한가운데 있었다. 그다지 도시적이지 못한 우리가 다운타운으로 집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룸메이트를 구하기 쉽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반짝이는 높은 건물 사이로 물이 조금, 날이 좋으면 산이 조금 보이는 새 집의 창문을 넋 놓고 보며 문득 내가 한 번도 도시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내가 ‘그다지 도시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은 타당한 근거 없는 착각이었다.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광고를 올리자 우려와는 달리 문의가 몰려왔다. 생각보다 시간과 편리함을 돈으로 사려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같은 가격에 ‘더 넓고’ ‘더 독립된’ 공간을 추구했던 나와는 다른 사람들. ‘더 넓고’ ‘더 독립된’ 무언가와 등가가치를 지닌 ‘편리함’이 나는 조금씩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창문을 보는 일이 많아졌다. 침구를 정리하다 한 번, 옷을 개키다 한 번, 화장대를 정리하다 한 번, 글을 쓰며 커피를 홀짝이는 고귀한 기분마저 들었다. 창밖 너머에는 빼곡하게 들어선 높은 아파트가 반짝거렸고, 그 뒤로는 신호에 맞춰 다리를 건너는 차들이, 구름 한 점 없는 운 좋은 날에는 밴쿠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엘리자베스 공원이 보였다. 저 멀리 비행기가 보이는 순간에는 하던 일을 멈추고 비행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는 습관도 생겼다. 어디로 가고 있을까, 저기 비행기 속 사람들도 내가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하등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밤과 낮의 모습이 다르니, 이 풍경은 분명 계절을 탈 거야. 바뀌는 계절마다 잊지 않고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몽글한 구름다리를 그리며 지나가는 작은 헬기 사진을 SNS에 업로드했다. ‘우리 집 풍경’이라는 문장을 밑에 달고 애인에게 처음 애교를 부리는 것 같은 낯 간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토록 오래 헤매어 찾던 감정을, 우연히 마주한 창문 너머에서 찾을 줄 누가 알았을까. 이를 꽉 물고 살던 탓에 잠시 있고 있었다. 아무것도 어쩔 수 없을 때는 어깨를 내리고 힘을 조금 풀면 된다. 느슨해진 긴장 사이로 연하고 달큰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늘 그랬듯이. 기분 좋은 기시감에 취해 나는 해가 저물어 깜깜해질 때까지 침대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몹시 오랜만에 느껴보는 내일을 향한 기대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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