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땅끝, '깐얀꾸마리'에 가다.(1)

인도 최남단이라는 감격

by 노랑코끼리 이정아

오전 7시경, 퐁디셰리를 뒤로하고 차를 달렸다. 세계 7위 면적의 거대한 나라 인도 남쪽 끝을 향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해서는 길이 너무 좋고 차들도 거의 없어서 시속 130킬로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인도에서도 그렇게 달리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산이라고는 안 보이는 평지를 지겹게 몇 시간이고 달렸다. 존슨이 '코끼리 바위'라며 가리키는데 큰 바위산이 길게 뻗은 모습이 코끼리를 닮은 듯도 했다. 그 바위가 끝없는 평지 풍경의 지겨움을 잠시 달래 주었다.


우기 끝자락인 타밀나두주의 남쪽은 흐리다가 해가 났다가 날씨가 변덕을 부렸지만, 인도의 땅끝, 아라비아해와 인도양과 벵갈해, 세 곳의 바닷물이 만나는 특별한 곳에서 일몰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5시간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다. 워낙 넓은 땅 인도, 대여섯 시간은 쉬지 않고 운전하는 인도인 기사이다.



배도 고팠고, 화장실도 가야겠다고 생각할 즈음에 마침 휴게실 겸 식당이 보였다. 12시쯤이었다. 우연히 들어간 그곳은 인도가 맞나 싶을 정도로 화장실도 깨끗했고, 식당도 그랬다. 친절했고, 싸고 맛있었다. 인도 사람인 존슨도 같은 말을 했다. 치킨 65(65년도에 나온 메뉴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난(Nann)과 소스, 볶음밥, 생과일주스를 주문했다.



남편은 한국의 딸들에게, 존슨은 첸나이의 딸에게 여행 상황도 알리고 밥 사진도 공유했다. 맛있는 음식, 좋은 풍경을 딸들과 공유하고 싶은 한국 아빠와 인도 아빠였다. 로컬 식당에서의 흡족한 식사는 여행의 만족도를 한껏 높여주었다.


기분 좋게 남쪽으로 다시 달렸다. 풍력발전기가 하얀 바람개비처럼 우리를 따라오는, 하늘 가득 예쁜 차창 밖의 풍경을 넋을 놓고 감상하면서 달렸다.



퐁디셰리 호텔을 출발 한 지 8시간 만에 우리는 인도의 최남단 깐얀꾸마리(kanyakumari) 바닷가에 도착을 했다.

예약해 둔 호텔에 짐을 풀었다. 인도를 떠나기 전 마지막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총 8개 도시에 호텔 예약을 했었다. 주요 도시 두 곳은 좋은 호텔을 예약했는데 그중의 한 곳이 '깐얀꾸마리'였다. 남쪽 끝 '깐얀꾸마리'와 북쪽 끝 '히말라야'는 좋은 곳에서 묵으며, 인도의 다양성도 경험해 보자는 나름의 의미를 두고 계획을 세웠고, 그래서 선택한 호텔은 로비는 소박해 보였지만 뒤쪽 가든과 풀장, 룸 컨디션은 그곳이 시골이라는 생각을 잊게 했다. 빈부격차가 심한 인도의 보편적인 풍경과 마찬가지로 그 호텔의 안과 밖은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경계 지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도의 최남단, 힌두교 성지라 불리는 땅, 작은 그 도시에도 성당이 여럿 있다며, 성당에 가보자는 존슨의 제안에 1시간 정도 쉬다가 근처의 성당 구경을 하려고 나섰다. 마침 12월 초,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느라 분주한 사람들과 조용히 무릎 꿇고 기도 하는 사람들과 우리처럼 구경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인, 대부분의 인도 성당들과 마찬가지로 외관이 새하얀 예쁜 성당이었다.


존슨이 느닷없이 그곳에 데리고 와줘서 고맙다며 감동의 눈빛을 보였다. 크리스천인 존슨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힌두교 성지로 알려진 도시이지만 인도 최남단에 세워진 성당은 크리스천에게도 의미 있는 장소였다. 첸나이에서 너무 먼 그곳에는 쉽게 가게는 안 되는 곳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7년 동안 함께한 그 아이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능숙한 언어가 아닌 영어였어도, 다 알 것 같았다. 그 먼 곳까지 운전을 해줘서 내가 더 고맙다고 대답을 했다. 기사와 같은 종교인 이유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감정을 나눌 수 있어서 여행 동반자로 너무나 다행이었다. 교회가 아닌 성당이었지만 우리가 믿는 그분을 그곳에서도 예배드릴 것이니까.



날씨가 계속 흐렸다. 쉬엄쉬엄 걸으며 바닷가 시장 구경을 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남편이 첸나이에서도 안 먹던 노점 사탕수수 주스를 마시자고 했다. 시원하고 달콤하고 맛있었다. 그런데 그다음 광경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까맣게 때가 낀 물통의 뿌연 물에 우리가 마신 유리컵을 한번 휘리릭 헹구고 다시 소쿠리에 엎는 모습을 봐 버렸다. 갑자기 속이 안 좋다고 느꼈지만, 인도 생활 십여 년,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이 인도화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후로 두 사람의 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닷가 시장은 걷기가 불편할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외국인은 우리가 유일했고, 어린이를 제외하면 여자도 나 이외에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다양한 복장과 개성 넘치는 외모의 인도 남자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을 받으며 시장통을 빠져나왔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목의 상대적으로 한적한 노점 구경이 오히려 더 재미있었다.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식기들과 랑골리를 찍어내는 핑크 틀과 조개 장식품들과 간식거리 등, 없는 게 없는 노점들은 물건도 예쁘게 진열을 해 놓았다. 인도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인 인도인들의 미적 감각은 어디에서나 돋보였다.



바다 위에 바다색 페인트칠이 된 건물이 눈에 띄었다. 덕지덕지 칠이 벗겨진 허름한 전망대였다. 나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입장료도 있는 낡은 전망대에 남편이 올라가 보고 싶어 했다. 막상 올라가 보니까 바람도 시원했고, 바다 풍경도 좋았다. 세계적인 힌두교 종교지도자라는 '비베카난다'의 메모리얼이 있는 섬과 그곳의 거대한 동상도 보였다.

잘 왔다는 생각을 하며 둘이서 바다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너무 깜짝 놀랐다. 배낭여행 중인 한국 청년이었다. 외국인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그곳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반갑다며 인사를 나누고 좋은 여행 하라며 서로 덕담을 나누고 헤어졌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는 생각을 했다.



호텔 직원이 추천해 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많은 힌두교인이 방문하는 도시이지만 대도시 첸나이에 비해서 음식값이 싸서 별생각 없이 음식을 너무 많이 주문해 버렸고, 많이 남겨버렸다.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는 늘 주부 마인드가 된다.



호텔로 돌아왔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고, 왼쪽으로는 일출, 오른쪽으로는 일몰을 볼 수 있다는 호텔 바(bar)에 가봤지만, 먹구름 가득한 희뿌연 하늘만 보일 뿐이었다. 차를 오래 타서 피곤했던 나는 일찍 잠이 들었고, 마침 비가 내려서 남편 혼자서 빗소리 들으며 바에서 인도 맥주 킹피셔를 마셨다고 했다. '빗소리'라는 얘기에 그 운치가 상상이 되면서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남편의 혼자만의 시간이, 인도 땅 끝에서 비 내리는 바다를 보며 보냈을 그 시간이 충분히 가치가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여행의 목적이 퇴직한 남편의 마음 정리였다는 사실을 깨우치며, 아쉬운 마음을 접었다.


그렇게 인도 땅끝, 깐얀꾸마리에서의 첫날을 보냈다. 일몰은 못 봤지만 전혀 아쉽거나 실망스럽지도 않았다. 그저 인도를 떠나기 전에 인도의 최남단에 우리가 와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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