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이른 아침에 깐얀꾸마리로 출발해야 해서 퐁디셰리에서의 시간은 그날 반나절이 전부였다. 그래서 머무는 동안에 최대한 많이 돌아다니기로 했다. 아쉬움이 남지 않게 퐁디셰리를 눈에 많이 담고 싶었고, 그래서 차는 두고 걷기를 택했다.
주택가 골목을 걷는 그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첸나이에서는 하기 힘든 일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키가 큰 열대 나무들 사이 원색의 페인트로 칠한 집 구경도, 집마다 다른 개성각각. 예쁜 문 구경도 좋았다. 무엇보다 사람들 사는 모습 구경이 좋았다.
첸나이와 많이 다른 퐁디셰리의 벽화 구경도 흥미로웠다. 골목을 걷다가 무심히 돌아본 얼룩진 벽에서 교복 입은 소녀와 눈이 마주치고, 개구쟁이 소년도 만나고, 종이비행기에 매달려서 하늘로 떠오르는 남자를 보며 함께 기분이 좋아지고, 창틀이 나뭇가지인 양 그 위에 앉은 파랑새가 경쾌하고. 컬러풀 글자와 글씨가 지워진 이정표가 강아지가 되어 웃고 있는 헌 집 벽이 정겹다. 우연히 보게 된 벽화는 퐁디셰리 골목을 걷는 재미를 한층 더했다.
걷다 보면 너무 관리가 안된 박물관도 지나고, 공원도 지나고, 시청도 지난다. 어느새 다다른 곳은 붉은 짙은색 외벽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닮은 프랑스풍 예쁜 성당 앞이었다. 성당 건물도 화려했고, 전통 옷을 입은 인도인들도 화려했다. 화려함 속의 엄숙함이 오히려 경건함을 더했다. 저마다의 기도를 올리는 인도 크리스천들의 모습은 그 나라가 인도이기 때문에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예수의 제자 도마가 순교한 나라의, 힌두교도가 대부분인 지역의 크리스천들이어서 그들이 특별해 보인 때문일 것이다.
바람을 가르며 훠이훠이 해변의 간디 동상까지 노란 오토릭샤(오토바이를 개조한 '툭툭'의 인도식 명칭)를 타고 달렸다. 해변 도로를 지나는데, 마침 영화 촬영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가 구경하느라 촬영장을 감싸며 반원형으로 모여 있었다. 우리 눈에는 그네 타는 여배우도 그 구경꾼들도 모두 배우처럼 보였고, 그 풍경 전체가 인도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엑스트라 마냥 우리도 영화 촬영장 옆을 바람을 가르며 유유히 지나갔다.
인도 영화 산업은 봄베이의 발리우드 다음으로 타밀나두 영화가 유명하다고 한다. 나도 동네에서 영화 촬영 장면을 자주 봤었다. 배우 한 명, 스텝 두세 명이 전부인 영화 촬영 방식이 신기해서 자주 구경하곤 했다.
인도 4대 도시인 첸나이(Chennai)가 포함된 인도 남동쪽이 타밀나두(Tamilnadu) 주이다. 인도 전통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고, 북인도와는 인종도 다른 지역이다. 사람들은 피부도 까맣고, 우리 기준으로 덜 예쁘고, 덜 잘생겼다. 그래서인지 배우들도 우리가 익히 인도 영화에서 보는 그런 미모는 아니었다. 그날 그 배우들도 구경하는 사람들과 내 눈에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오토릭샤에서 내려서 해변을 걸었다. '라이프 오브 파이' 영화에 등장하는 다리 밑에도 가보고, 검은 바위와 검은 모레가 특이한 바람 부는 '락 비치'도 걸었다. 다시는 못 올 것 같은 그곳을 터덜터덜 돌아다녔다. 이도시는 언제가 안 더울까 싶을 정도로 갈 때마다 너무 더워서 힘이 들었는데, 그 마지막 날은 무척이나 시원했다. 우리가 좋아한 폰티체리는 시원한 바람으로 굿바이 인사를 해 주었다.
호텔까지 걸어서 돌아왔다. 존슨이 근처 길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끼리 구경을 하라고 했다. 호텔 앞 골목이 이상하게 사람들로 붐빈다고 생각했는데 골목 안에 큰 힌두 템플이 있었다. 화이트 타운은 프랑스 문화가 많고, 성당도 많은 지역이지만 그곳도 인도이다. 힌두교인도 당연히 많은 곳이다.
템플 입구에 큰 코끼리가 있었는데, 굵은 쇠사슬에 다리가 묶여 있었다. 코로 돈을 받으면 뒤에 앉은 남자가 회초리로 마구 때렸다. 그러면 돈 준 사람의 머리를 코로 쓰다듬었다. 코끼리 신이라고 했지만, 우리 눈에는 그저 학대받는 불쌍한 코끼리였다. 마음이 안 좋아서 템플 구경은 그만두고 입구에서 나와버렸다. 우리의 마지막 인도 여행 첫날에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호텔에서 잠시 땀도 식히고, 다리도 쉬고, 다시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퐁디셰리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장소는 최대한 모두 가보자고 했었다. 폰티체리 맛집으로 유명한 호텔, 빌라 샨티(VILLA SHANTI)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날도 여전히 백인 손님으로 북적였다. 분위기 좋은 그곳에서의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맥주, 더할 나위 없었다. 여행 첫날, 퐁디셰리에서의 마지막 밤은 더없이 평온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깜깜한 골목은 시원했고, 고즈늑했다. 첸나이에서 10여 년을 살았지만 밤길을 걷는 일은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안되던 일, 걷고 있는 밤 골목이 너무 좋았다. 첸나이에 살면서 할 수 없었던 그 일이 순간 자유로움으로 다가왔다. 한국에 돌아가면 실컷 할 수 있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알 수 없는 가벼운 마음이 되었다.
그제야 너무 오래 살고 있는 답답한 첸나이를 떠나게 된 것이 잘된 일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마음의 짐이 모두 내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도 나도 말은 안 했지만 분명히 같은 생각이었다고 확신한다.
인도를 떠나면서 시작한 인도 여행의 첫날은 자유로웠고, 편했고, 가벼웠다. 앞으로 남은 여행을 기대하게 했다. 남편과 처음으로 둘이서만 하는 인도 장기 여행이 더 기대가 되었다. 갑작스러운 퇴직과 귀국 결정으로 마음이 무거웠던 남편이었다. 여행 첫날에 벌써 무척 가벼워 보였다. 여행이 그렇게 만들었다. 겨우 여행 1일 차에 우리는 이미 여행의 목적을 달성한 기분이었다.
마음 편히 책을 읽는 남편 옆에서 나는 바로 잠이 들었고, 그날 밤엔 모처럼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이삿짐 정리와 바빴던 첸나이에서의 마지막 일정 때문만은 분명히 아니었다. 뜨거운 물 샤워가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말로는 나는 괜찮다고, 오히려 잘 되었다고, 인도에서 고생한 남편이 한국에서 편하게 살게 되어서 좋다고 했지만, 무의식 속에서의 나는 남편만큼 섭섭했던 모양이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그 모든 무거운 감정들은 퐁디셰리에 남기고, 우리는 가볍게 인도의 남쪽 땅끝 '깐얀꾸마리'로 향했다. 10시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깐얀꾸마리에서 일몰을 보려면 7시경에는 출발을 해야 했다. 호텔에 부탁을 해놨더니 2인분 식사를 미리 준비해 주었다. 뜨거운 커피와 따뜻한 오믈렛도 있었다. 250년이나 되었다는 호텔은 친절하기도 했다.
차에 올랐다. 출근하는 남자들은 그들이 '바: bar'라고 부르는 식당 밖의 길에 서서 아침을 먹고 있었고, 교복 입은 여학생들은 등굣길이었다. 폰티체리의 마지막 모습은 활기찬 아침 풍경이었다. 출근 시간 교통체증 도로를 한참에 빠져나왔다. 좋은 기억의 퐁디셰리를 뒤로 하고 깐얀꾸마리로 향했다. 더 좋은 기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