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프랑스 마을 '퐁디셰리', 그 마지막 기억(1)

by 노랑코끼리 이정아

귀국 이삿짐은 모두 항구로 보냈다. 짐은 한국으로 향했고, 우리는 계획대로 인도 여행길에 올랐다. 우리 짐은 배에 실려서 한 달 동안 바다 위를 떠 갈 예정이었고, 우리는 삼 주 동안 자동차와 비행기로 인도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다닐 계획이었다.


우리의 첫 여행지는 인도의 땅끝마을 깐야꾸마리(kanyakumari)였다.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고 해서 힌두교 유명 성지로도 알려진 곳이다. 매일 수천 명의 인도인들이 찾는 도시라고 한다.

7년간 우리 집 차를 운전했던 존슨과 동행했다. 같이 여행 다니기 좋아하는 그 아이와의 인도 마지막 여행길에 올랐다.


우리가 살았던 첸나이에서 깐얀꾸마리까지는 차로 10시간 이상 걸리는 곳이다. 그래서 가는 길에는 퐁디셰리(pontichery, 폰티체리)에서 1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마두라이(madurai)에서 1박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많이 가 봐서 좋아진 프랑스 문화의 폰디체리였고, 한 번도 안 가봐서 궁금한 힌두 템플의 도시 마두라이였다.


몇 년 째 공사가 중단된 상태로 방치된 우리동네 또라이바깜(Thoraibakkam) 상가 건물 앞을 지났다. 비가 제법 내렸지만 다행히 곧 그쳤다.


2019년 12월 4일 이른 아침, 3주 동안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남편도 나도 설렘이나 기대보다 인도를 정리한다는 마음이 먼저여서 차분함이 들뜸을 거뜬히 누르고 있었다.

우기 끝자락,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언제나처럼 출발 전 기도를 하는 존슨이었다.


인도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그 종교만큼 다양한 문화 속에서 살게 되는 나라이다. 힌두교만 있을 것 같지만 이슬람교, 기독교, 천주교, 시크교, 불교, 자이나교 등등 많은 종교가 있다. 각 종교마다 기념일도 모두 달라서 휴일도 많은 나라이다. 크리스천 존슨은 늘 그렇게 장거리 운전 전에 안전을 위한 기도를 했다. 그 기도 덕분인 듯이 차를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비는 그쳤다.


뱅갈만 ECR의 흔한 풍경


뱅갈 해를 따라 길게 뻗은 ECR(East Coast Road)을 달렸다. 인도 첸나이에 산 10여 년 동안 참 많이도 다녔던 도로였다. 인도 생활 처음이던 2009년 무렵은 도로 상태가 상상초월이었다. 통행료도 내는 분명 고속도로인데, 중앙분리선을 넘어서 마주 달리는 차들을 피해서 게임을 하듯이 차를 달려야 했다. 소도 다니고, 염소도 다니고, 오토바이도 다니고, 무단횡단도 서슴지 않는, 패인 도로 위를 덜컹거리며 달려야 하는 위험천만 고속도로였다. 손잡이를 세게 움켜쥔 팔이 항상 욱신거리곤 했다.


정확한 년도는 기억에 없지만 몇 년 후에 도로도 확장되었고, 중앙분리대도 생겼고, 아스팔트도 새로 깔렸다. 퐁디셰리까지는 5시간도 더 걸리던 거리였는데 이후로는 2~3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인도를 떠나는 마지막에 우리는 잘 닦인 ECR 도로를 달려서 우리가 좋아하는 도시, 퐁디셰리로 향했다.


쉐라톤 그랜드 조식


첸나이 한인 중에서 우연히 내가 가장 먼저 알게 된 이후로 그 당시 핫한 장소가 되었던 바닷가의 쉐라톤 그랜드에서 아침을 먹었다. 인도에 사는 동안 우리가 누린 호사라면 호텔 음식을 쉽게 자주 먹은 일이었다. 우리가 좋아한 그곳에서의 마지막 조식을 즐겼다.


가로수 터널과 염전이 보이면 곧 퐁디셰리라는 것을 알 수있다.


다시 달렸다. 눈에 익은 가로수 터널을 지나고, 흰 소금이 쌓인 염전도 지났다. 이내 퐁디셰리 시내로 들어섰다. 14~15세기 프랑스 식민지였던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인들도 제법 살고 프랑스 관광객들도 많이 보인다. 하나의 시(city)가 하나의 주(state)이다. 영국 식민지였던 인근 도시와는 문화도, 법도 다른 도시이다.


술 구하기가 까다로웠고 비쌌던 첸나이와는 달리 주세가 싸고 술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포도주나 맥주를 마시러 그 먼 길을 다녔었다. 첸나이에는 잘 없던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으러 다녔었다. 첸나이에 술집도 제법 생기고 소고기 스테이크가 맛있는 집도 생겼지만 바람도 쐴 겸 간간이 다니던 도시였다. 그래서 익숙해졌고, 익숙해서 정이 든 퐁디셰리였다.


오르빌의 황금사원


공동체 마을, 오르빌(Auroville)이 있는 도시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프랑스인들이 심심찮게 보이는 곳이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같은 사상을 가지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특별한 동네인 오르빌 마을 구경도 재미있었다. 황금사원도 특이했고, 마을에서 생산되는 수공예 도자기나 핸드메이드 패브릭 제품 쇼핑도 재미있었다.


첸나이에 비해 작은 도시, 자유로운 분위기의 그곳은 편하게 밤길도 걸어 다녔다. 힌두 문화가 보편적인 뭔가 갑갑하고 보수적인 첸나이를 벗어나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을 때면 찾던 곳이었다. 신 도심, 프랑스 령일 때 백인들이 모여 살았다는 '화이트 타운'은 그런 곳이었다.


폰티체리 도시 초입의 풍경. 학교 교문과 정통복장의 주민들


이제 퐁디셰리도 마지막이다 싶어서 도시 초입에서부터 이미 반가웠다. 예약해 둔 호텔에 짐을 풀었다. 오래되고 낡은 곳이었지만 바닷가 도시 퐁디셰리는 고급 호텔도 습하기는 매한가지여서 그 정도면 충분히 괜찮았다. 알고 보니 250년 전 건물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내 눈에 그 호텔은 금세 낡음이 앤티크로 보였다.

오래된 집이 주는 편암함이 있었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책도 읽고, 낮잠도 잤다. 그제야 여행을 온 듯했고, 11년 묵은 이삿짐을 정리하느라 체력적으로 힘에 부쳤던 몸이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250년 된 호텔 'duparc'


배가 고파서 점심을 먹으려고 밖으로 나왔다. 퐁디셰리에 가면 자주 가는 식당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의 한 곳, 'LB2 라운지'에 들렀다. 동네 맛집을 우연히 알게 되어서 퐁디셰리에 갈 때마다 가던 곳이었다. 늘 먹던 비프스테이크, 치킨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역시 맛있게 먹었다.


동네 맛집 'LB2 lounge'


커피 마시러 찾아간 곳은 코로만델 카페(COROMANDEL CAFE)이다. 퐁디셰리에 당시에 새로 생긴 고급 카페였다. 외국인들과 부유해 보이는 세련된 인도인들이 가득했다. 그즈음의 첸나이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노출이 심한 차림의 여성들이 꽤 많았다. 같은 인도, 바로 옆 도시, 그렇게 달랐다.


커피를 마시고 카페 옆의 서점에서 책도 한 권 샀다. 여행을 다니면서 가끔 그 나라 글씨가 적힌 그림 동화책을 사곤 하는데, 그곳에서는 인도 전통 민화가 그려진 색칠 공책을 샀다.

그림체가 인도 여자들이 손에 그리는 헤나 염색, 멘디(mehndi)를 연상하게 한다. 지금도 내 책꽂이에 잘 꽂혀있어서 인도 생각이 나면 가끔씩 꺼내보곤 하는데, 그 책을 볼 때마다 그때 그 퐁디셰리가 생각난다. 그 카페의 앤틱 한 분위기와 그 작은 서점이.


코로만델 카페(COROMANDEL CAFE)와 서점


서점을 나와서 골목을 걸었다. 대도시 첸나이와는 다른 감성을 간직한, 이제 마지막일 그 도시를 발바닥으로 각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구석구석.



*2편에 계속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행 같았던 인도살이, 그 끝은 진짜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