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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그냥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시간도 많고, 할 일도 별로 없고,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뭐라도 해두자는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마침, 집 근처에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에서 학원 간판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간호사 자격증 소지자는 강의를 적게 들어도 되고, 실습도 하루만 하면 되고, 무엇보다 대부분 쉽게 합격을 한다고 했다. 국가자격증이니까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쓰일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안 써여도 상관은 없다는 마음이었다.

여름이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정이 적을 것도 같았고, 수강생도 상대적으로 적을 것 같아서 부러 7월에 학원 등록을 했다. 덥다고 집에만 있기보다 학원에라도 다니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예년보다 무더웠던 7~8월 한 달, 나는 걸어서 학원에 다녔고, 요양원 실습 하루를 마쳤고, 시험에 응시, 합격을 했다.


주변에 간혹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는 이들이 있었다. 그냥 그런가 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에 담긴 그들의 노고를, 많은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 특별한 커리어가 없는 중년 여성들이 쉽게 취업문을 열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합격률이 높다고 들어서 그 과정도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강의 출석만 잘하고, 어렵지 않을 시험만 보면 쉽게 가지게 되는 자격증이라고 오해했다.


간호사 자격증이 있는 나는 고작 40시간 강의와 하루, 8시간의 요양원 실습만 하면 되었지만, 그 시간을 채우는 일도 보통 고단하지 않았다. 그런데 도시락을 싸 다니면서 매일 8교시 수업을 6주간 하고, 2주, 80시간 이상 요양시설 등에서 실습을 하는, 특히, 6~70대분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아직은 50대인, 간호사라는 경력을 가진 나도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불편한 책상의자에 앉아서, 결코 쉽지 않은 의료 관련 수업을 듣는 일이 녹록지 않았는데, 허리를 펴가면서, 겉옷을 입었다 벗었다, 돋보기를 꼈다 벗었다 하면서, 두꺼운 교재의 어려운 단어와 내용을 듣는 어르신들이 대단해 보였다.


'요양보호사'는 일거리 없는 중년 여성들이 쉽게 자격증을 따서, 쉽게 취업을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결코 아니었다.


6주 동안 5일 내내 9시부터 5시 반까지,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견뎌야 하는 그 시간만으로도 요양보호사 자격이 충분하다고 느꼈다. 그 인내의 시간만으로도 그 일을 하기에 넘치고도 남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고비를 넘기면 2주 동안의 요양원 실습이 기다리고 있다. 실습이라는 것이 그렇다. 직접 맡아서 일을 하는 것이 쉽지, 뭘 해야 할지 눈치를 보며 8시간을 보내는 것이 보통 불편한 일이 아니다. 그 불편함을 2주 동안 해야 하니 그 시간을 채우는 것 또한 인내가 필요하다.


치매, 뇌졸중, 파킨슨병 같은 노인성 질환으로 혼자서 생활이 안 되는 어르신들을 종일 돌보는 요양보호사들의 일과를 지켜보며, 그들의 대단함이 보였다.

젊은 시절에 내과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일을 한 경험이 있는 내 눈에, 예순이 훌쩍 넘은 분들이 여든 이상의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되어서 가족도 하기 힘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의 케어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요양보호사', 그들의 일이 결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시험은 또 어떤가? 합격률이 높다고 해서 공부를 안 해서도 안된다. 두꺼운 교재와 요약집과 예상문제집, 기출문제집 까지, 최소 한번 이상은 보고 시험을 볼 수밖에 없다. 시험인데 공부를 안 할 수는 없다. 젊었을 때와는 집중력 자체가 다르고, 돋보기 없이는 글을 읽을 수도 없는데, 어려운 의료 관련 내용을 읽고, 외우는 일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세상 어떤 일도 귀하지 않은 일은 없지만, 직접 경험한 요양보호사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도, 실습도, 시험도 결코 쉽게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노인 인구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귀하고 귀한 일이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서 쉽게 단정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요양보호사'라는 이름이 가진 인내와 숭고함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운전 면허증, 간호사 면허증과 함께 내가 가진 세 번째 국가 면허증이다. 3가지 모두 각각의 가치가 있지만, 예순이 다 되어서 도전한 결과물인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꽤나 큰 가치와 무게를 가진다. 쉽게 생각했다가 결코 쉬운 취득 과정이 아닌 것을 경험한 때문이다.


세상에 쉽게 되는 것은 없다. 쉬운 일도 없다. 내가 모른다고 해서 쉽게 평가할 일도 아니다.

'요양보호사'라는 이름 속에 담긴 인내와 그 일을 하는 분들의 숭고함에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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