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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Apr 24. 2022

병가를 낼까.

이곳은 유럽인가 한국인가


콜록콜록.

정신이 멍-하다. 모처럼 쉬는 주말이거늘 어디도 나갈 기운이 없다.

식빵을 오븐에 넣고 돌린다. 버터와 야채 소스를 꺼내고, 우유를 한 컵 따라 준비한다.

식빵 두 조각과 우유 한 컵을 비운다.

다른 컵에 물을 따라 하얀 알약을 삼킨다. 어제 타 온 감기약이다.


유럽에 온 지 한 달.

나는 삼 주간 호텔에 살고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리고 또 이주가 흘렀다.



처음 일주일, 나는 주변을 살피며 야근하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일을 배워야 하는데 모두 너무 바빠 보였다. 다들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듯했다.

나는 하지 않았다. 할 줄 아는 일이 없어서, 할 이유가 없었다.


다음 일주일, 나는 그들과 함께 야근했다. 하루는 8시, 그다음은 10시, 그리고 12시, 다시 10시

금요일에 있던 중요한 행사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하나, 그다음 월요일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하나.


금요일 사내 전체 행사를 위해 일을 마치고 일찍 퇴근했다. 옷을 갈아입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색하지 않은 척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두 어시간 뒤, 음식이 나왔다.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다.

한 입, 두 입, 세 입, 도저히 못 먹겠다. 속이 불편하다.

저녁 8시, 행사의 공식 일정은 모두 끝났다. 나는 상사를 찾아 몸이 안 좋아 먼저 가겠노라 이야기 한 뒤, 자리를 빠져나왔다.

서둘러 호텔에 돌아와 화장실로 직진했다.

그날 먹은 음식은 모두 게워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아홉 시, 상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올 줄 알았다. 어제 출근해야 할 수 있다고 미리 언질을 주었으니까.

그로부터 한 시간 뒤, 나는 회사에 출근했다. 여덟 시에 퇴근했다.

일요일은 하루 종일 잤다.


다음 일주일, 상사들이 모두 출장을 갔다.

그 일주일, 나는 정시 퇴근했다.


다시 월요일, 공휴일이지만 출근했다.

화요일은 9시.

수요일은 12시.

목요일은 7시. 몽롱하다. 미열이 있다.

금요일은 9시. 기침이 잦아졌다.

토요일, 종합 감기에 걸린 기분이다.

그리고 오늘, 콧물과 기침을 반복하며 누워 있던 나는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이거라도 안 하면 내 주말이 너무 덫없어서.


오늘은 내가 유럽에 온 지 딱 한 달이 되는 날이다.

내 출근 시간은 9-6다.

나는 칼퇴 주의다.

한 달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야근을 했을까.

신청한 야근 수당은 서른 시간, 실제 근무한 야근 시간은 마흔 시간 정도 될까.


몇 년 동안 안 걸리던 감기에 걸린 건, 야근을 많이 한 탓인가.

환경이 바뀐 탓인가.

나라가 바뀌어 물갈이를 하는 탓인가.

복합적인가….



커피를 마시 곳 싶은데, 시내에 나갈 힘이 없다.

이 시국에 콜록대며 돌아다니는 것만큼 민폐가 없다.

동전 지갑을 들고 아파트 로비로 내려간다.

전에 여기서, 커피 자판기를 봤다.

있다. 얘네 말로 쓰여 있어 뭔지 모르지만 끝에 쓰여있는 ‘Latte’는 읽을 수 있다.

가격은 70센트.

싸다.

일부러 50센트짜리만 가져왔는데, 다음에는 더 작은 단위로 가져와야겠다.


한쪽에 사 온 라테를 놓고, 소파에 기대 않아 무릎에 쿠션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그 위에 아이패드를 켠다.



야근을 하며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이렇게 계속 일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쉬고 싶다는 생각.


병가를 낼까.

내가 병가 내기를 망설이는 건, 아직 일을 다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를 생각하면, 일찌감치 일을 배워두는 편이 좋을 테니까.

하지만 더 먼 미래를 생각하면, 쉬어야 하지 않을까.


병가를 낼까.

재택근무를 할까.

병가를 낼까.

병가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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