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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Apr 17. 2022

거품 없는 카푸치노 주세요.

유럽에서 커피 찾기


유럽에 온지도 삼 주가 지났다. 연일 업데이트되는 전쟁 이야기와, 일주일에 스무 시간을 넘는 오버타임. 사월에도 눈이 내리는 북유럽의 날씨에 적응할 때쯤, 이스터 연휴를 맞이했다. Easter Holiday는 사월 말쯤 사 일을 연달아 쉴 수 있는 부활절이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파리, 이태리, 영국 같은 가까운 이웃나라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나는 집에 남았다. 온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나는 놀 기운도, 놀 돈도 없다.


연휴 첫날은 이삿짐을 풀었다.

그간 머물던 호텔에서 나와 한국에서 바리바리 들고 온 짐을 풀고, 대형 마트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했다. 그마저도 다는 구할 수 없었다. 화장대로 쓸 작은 거울이나 마음에 드는 쓰레기통은 구하지 못했다.

둘째 날은 나와 같이 어디로도 떠나지 않은 사람들과 받고 종일 뒹굴거렸다. 푹 쉬고 싶고, 잘 놀고 싶은데, 방법을 잊었다. 너무 오랜만에 갖는 긴 휴일이다.


셋째 날, 알람이 울렸다. 나름 규칙적인 수면 생활을 위해 설정해 둔 알람이다. 끄고 다시 잤다. 주말에 알람은 무용지물이다. 열두 시간을 자고 나서야 미적미적 몸을 일으켰다. 호텔에 있을 때보다 훨씬 잘 잤다. 이불 때문인가.

어디선가 그랬다. 무거운 이불을 써야 잠이 잘 온다고. 확실히 그랬다. 그래서 이불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이 집에서 제일 비싼 걸 고르자면, 첫 번째가 베개, 두 번째가 이불이다. Full furnished 조건으로 들어온 집을 꾸미며 이케아에서 300유로가량의 살림을 구입했는데, 그중 30%의 지분이 이불에 있다. 베개는 한국에서 들고 왔다.


이제 뭐하지. 좀 있으면 배가 고플 것이다. 요리는 하고 싶지 않다. 카페에 가자.


집 바로 앞에는 커다란 공원이 있다. 벌써 칠 년째 혼자 살다 보니 집을 고르는 기준이 생겼다.

첫 번째, 시티에서 떨어져 있을 것.

- 시티 한복판에 살면 어딜 가든 시끄럽다. 조용한 저녁을 맞이하고 싶다면 시티 한복판은 피해야 한다. 게다가 집세는 또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작고 시끄러운 시티에 사느니, 넓고 조용한 외곽에 살겠다는 주의다.


두 번째, 회사 통근 30분 이내.

- 직장인이라면 꼭꼭 생각해야 할 조건이다. 호주에서는 트램을 타고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살았는데, 덕분에 통근으로 버린 시간이 꽤 길다. 이왕이면 갈아타지 않고, 혹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면 좋다. 이번 집은 걸어서 17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다.


세 번째, 3층 이상, 이중 보안

 - 아무래도 여자 혼자 살다 보니, 일 층은 좀 무섭다. 같은 이유로 애초에 건물 입구에서 한번 보안이 되는 편이 안심이다. 이층에 살자니 벌레가 올라올 것 같다. 그래서 3층 이상이다. 같은 이유로 주변에 식당이 많은 곳은 피한다. 바퀴벌레와 자리싸움을 하면 결과는 뻔하다. 애초에 없을 만한 곳을 골라야 한다.


그 외에도 가구 톤이 파스텔이나 원목일 것, 주방이 넓을 것(외식을 줄이기 위함), 화장실이 깨끗할 것, 식탁과 소파가 있을 것, 거실과 분리된 방이 있을 것, 침대가 더블 이상일 것, 그리고 무엇보다, 예산 안의 금액일 것.

유럽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집을 찾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일주일 만에 집을 계약했다. 까다롭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정말 거짓말처럼 조건에 딱 맞는 집을 발견한 것이다. 신축 아파트 사층에 위치한 집은 40제곱미터 정도로 작았지만 거실과 방, 부엌, 화장실, 현관 모두 내가 생각했던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인스펙션을 한 그 자리에서 계약했다. 이보다 더 잘 맞는 집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게 살게 된 집 앞에는 커다란 공원이 있었는데, 백 년도 더 된 공동묘지였다. 커다란 공원과 잔디밭에 서부영화에서 보던 커다란 묘비와 석상, 삽자가 등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었다. 지도로 봤을 때는 ‘묘지’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지만, 와서 보니 괜한 걱정이었다. 초록 초록한 잔디밭에는 색색에 들꽃이 피어있고, 높게 솓은 나무들 사이로 산책로가 나 있었다. 사람들은 강아지를 산책시키거나 쉬기 위해 머물렀다. 시야를 가리는 건물도 없어 빛이 잘 들었다. 평화로운 공원이었다.


그리고 이 공원을 가로질러 오분쯤 걸어가면 시내로 이어졌다. 어젯밤 잠들기 전, 찾아두었던 별점 4.8점짜리 와플 카페에 갈 생각이다. 한국에도 한참 와플 가게가 많이 생겼지만, 사실 나는 와플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와플보다는 식사를 곁들인 커피가 목적이다.


이 나라는 스타벅스가 없다. 유럽을 처음 겪는 나로서는 꽤 큰 충격이었다.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어느 나라에서나 아는 맛을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스타벅스였는데. 알고 보니 꽤 많은 유럽에 스타벅스가 없었다. 대신 이곳에는 코스타라는 체인점이 있는데….

커피의 본 고장인 유럽에서 굳이 스타벅스를 찾을 이유는 없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텔 커피도, 사내 커피도 맛없었다. 호주에서도 한국에서도 거의 매일 같이 커피를 마시던 사람으로서, 커피는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즐거운 사치였다. 그리고 이 주 만에, 직장 동료가 데려가 준 한 유명한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 안심했다. 그냥 회사 커피가, 호텔 커피가 맛이 없었던 거다. 다행이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거품이 적은 Flat white에 샷을 반만 넣어서 먹었다. 커피 향도 나면서 우유 맛으로 고소함도 느낄 수 있어 좋아하는 레시피였다. 나는 평소처럼 주문했다.

‘Can I get a weak flat-white?’

그러자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설명을 덧붙였다.

‘Could you make it weak? like a half shot of espresso?’

그러자 그들은 다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럼 카푸치노를 마셔!’라는 게 아닌가. 그들이 말하길, 플랫 와이트는 같은 양에 적은 우유를 넣은 커피, 카푸치노는 같은 양에 에스프레소에 가장 많은 우유가 들어가는 커피라는 것이다.


‘어? 내가 아는 카푸치노가 아닌가?’


사실 나라에 따라 우유나 거품이나 커피 양의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호주에 갔을 때 마끼아또가 그냥 에스프레소에 거품을 올린 거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그 기준이 많이 상이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줘.’


그리고 곧 커다란 머그잔에 카푸치노가 나왔다. 이 잔을 뭐라고 해야 할까. 한국에서 마시는 카푸치노 잔과 똑같이 생겼는데 크기가 더 크다. 확실히 우유가 많이 들어갈 것 같다. 그리고, 거품도.


카푸치노는 카푸치노답게, 거품이 일 센티가 넘게 올라가 있었다.

‘나는 거품이 적은 게 좋은데….’


얼마 후 다른 카페에서, 이번에는 라테를 주문했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랐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커피잔에 나온 라테는, 마찬가지로 거품이 1.5센티는 올라가 있었다.

…..?


여기는 혹시 모든 커피가 큰 카푸치노 작은 카푸치노 더 작은 카푸치노인 걸까?


그래서 이번에는 더욱 평판이 좋은 카페를 찾아가 와플과 함께 커피를 주문하며 물었다.

‘저기, 내가 이 나라 커피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많은 우유에 적은 에스프레소를 넣은 커피를 마시려면 무얼 시켜야 하니?’

그러자 그들은 ‘카푸치노?’라고 대답했다.

‘아니, 그런데 나는 거품은 적었으면 좋겠어.’

그러자 그들은 이 나라의 커피를 설명해 주었다. 카푸치노는 가장 많은 양의 우유가 들어가는 거품도 많은 커피, 라테는 중간 컵에 들어가는 거품도 적당한 커피, 플랫 와이트는 작은 컵에 들어가는 거품도 별로 없는 커피라고 했다.

‘그럼, 우유도 많이 들어가고 거품은 적은 커피를 마시려면 무얼 주문해야 하니?’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다.


“Then.., Cappuchino with less foam”


그러자 내가 원하는 커피가 나왔다. 샷은 그대로인데 우유가 많이 들어가 커피맛이 연하고, 거품은 적은 커피다.

드디어 유럽에서 원하던 커피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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