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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Mar 21. 2022

고양이는 밀당의 귀재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한국에 온지 벌써 이년이 되어가지만 집에 붙어있던 날은 백 일도 채 되지 않는다.


이 집 고양이는 내가 주워온 길냥이다.

학생 시절, 학교 뜰에서 낑낑대는 아이를 주워왔다.

처음에는 힘이 없고 아파보여 병원만 데려가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십년째 집에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해외에 있던 나를 기억 할까? 길냥이는 주워온지 일 년이 됐을 때 쯤 가출 했다. 그리고 어디서 새끼를 품고 돌아왔다. 태어난지 일 년 정도 지났을 때 이미 엄마가 된 것이다. 새끼들은 태어난지 몇개월이 더 지났을 때 쯤 한마리를 남기고 분양보냈다. 남은 한 마리는 엄마 품을 벗어날 때 쯤 가출해 버렸다.


길냥이는 집이 답답한지 마당에 주로 머물렀다.

그러다 가끔 궁금한지 집에 들어와 어슬렁어슬렁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는 다시 문앞에 서서 냐옹냐옹 울었다.


문을 열어주면 쪼르르 나가 마당에 자리잡았다.



또 한동안 한국을 벗어날 거라 생각하니 길냥이에게 무언가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질꼬질한 손발을 씻겨주고 싶지만 물 소리가 들리면 파바박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 버렸다.

빗질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집에 들어오려 하지를 않는다.

뭘 해주고 싶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녀석이다.


결국 포기하고 집에서 부모님과 둘러앉아 드라마를 보며 하루를 보냈다.

그때였다.


냐아-, 냐아-.


문앞에서 길냥이가 울고 있었다. 왠일이지? 문을 열어주니 집으로 들어와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아까는 오래도 싫다더니. 알 수 없는 녀석이다.


고양이 빗으로 녀석을 쓸어주었다.

녀석은 그릉그릉 소리를 내며 졸린 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몸을 요기 조기 뒤짚으며 구석구석을 빗게 했다.

그렇게 삼십 분쯤 쓸자, 다시 어슬렁 거리며 집안을 둘러보더니 문앞으로 다가가 울었다.


나는 문을 열어주었다.

녀석은 다시 밖으로 쪼르르 나가버렸다.



내가 가는 걸 알기라도 한 걸까?

길냥이를 쓸어주며 말했다.


다음에도 꼭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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