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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May 04. 2022

읽을 수 있는 커피 자판기


라트비아 온 지 한 달 반, 이사를 나온 지 한 달이 되어 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쓸 줄 알지만, 대부분의 것들에 영어 표기가 없다.

이태리어나 스페인어라면 보고 추측이라도 하겠지만, 이곳의 언어는 너무 다르다.

같은 알파벳을 써도 단어는 아주 달라 읽을 수는 있지만 뜻을 알 수 없다.


처음 불편함을 느낀 건 코로나 자가 검사 키트였다. 회사에서 키트를 받아 출근 전에 검사를 해야 했다. 딱 봐도 자가 키트 같은 모양이었지만 뜯어보니 의외의 파츠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곳의 키트는 한국에서 쓰던 것과 전혀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우선 면봉이 없었다. 음? 어떻게 검사하는 거지?

설명서를 펼쳐 요기조기 훑어보았다. 작은 그림에 알 수 없는 언어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이 나라 말인가 보다. 뒷장에는 다른 언어로 적힌 설명서가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읽을 수 없었다. 러시아어 같았다. 결국 나는 구글 번역기로 사진을 찍어 읽었다. 이곳에서는 침을 받아 검사를 했다.


회사에서는 주로 영어를 썼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라트비아어를 썼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도 한국인이랑 이야기할 때는 한국어를 썼다.

물건을 사거나 주문을 할 때도 영어를 썼다. 간혹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직원도 있었지만 손짓 발짓으로 대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문제는 새로 이사 온 아파트에 있는 자판기였다. 커다란 사진으로 추측해보건대, 이건 커피 자판기였다.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 듯했다. 가격은 모두 동일하게 70센트.

유일하게 카푸치노 만은 읽을 수 있었다. 아마도 위에 있는 게 라테, 그리고 밑에 있는 게 에스프레소가 아닐까? 하지만 그러기엔 버튼이 너무 많았다. 결국 나는 유일하게 읽을 수 있었던 카푸치노를 뽑아 마셨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커피를 마시러 내려가니 자판기가 바뀌어 있었다. 브랜드가 바뀌었는지, 컵 디자인도 바뀌고 버튼마다 사진이 붙어 있어 무엇을 파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잠깐, 메뉴가 영어로 쓰여 있는 게 아닌가.

영어는 메뉴 위쪽에 조금 작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가격도 1 유로로 함께 인상되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문맹에서 탈출한 기분? 나는 찬찬히 그간 궁금했던 자판기 메뉴를 읽었다. 알고 보니 그동안 추측도 할 수 없어 손대지 않았던 부분은 코코아 섹션인 듯했다. 커피만 파는 줄 알았는데, 코코아도 팔고 있었다. 게다가 설탕 농도도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동안 자판기 커피가 달았던 건 이 때문이다. 그동안 손대지 못했던 코코아를 뽑아 리프트에 올랐다. 고작 자판기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읽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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