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사적인 용도로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깔지 않으면 절대 글을 쓰지 않을 것 같아 깔았다.
나이를 먹으면 부지런해 진다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게을러지는 기분이다.
집에 갈까 열백번 고민하다 온 런던은 좋았다. 축제같은 도시다. 전통과 현대가 아름답게 조화된, 자본주의의 행복한 면만을 담아놓은 곳 같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여유롭다. 인종이 워낙 다양해서 온갖 사람들을 다 볼수 있다. 광장에서는 술을 마시며 노래하고 춤을 춘다. 저쪽에는 파스텔 빛에 예쁜 런던 브릿지가 보인다.
여기가 런던에서 제일 예쁜 곳이라고 했다.
런던은 건물도 예쁘다. 유럽처럼 너무나 전통적인 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한대 섞여있다. 위화감이 없다. 조화롭다. 색도 잘 써서 촌스러운 느낌이 없다. 높은 건물이 많은데, 똑같은 건물은 없다. 완곡한 곡선을 많이 사용한 현대식 건물이 많다. 정말 열심히 지었다.
둘쨋 날, 친구가 부탁한 티를 사러 해러즈 백화점으로 향했다. 해러즈의 프라이빗 브랜드가 그렇게 맛있다는 극찬이었다. 다즐링을 사다달라고 했다. 내 것도 같이 샀다.
이제 백화점을 둘러본다. 아직 뮤지컬 시간까지 여유가 있다. 이 백화점 곳곳에는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걸려있는데, 진품이다. 원하면 살 수도 있다. 나는 아직 그림의 가치를 모른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어떠 유명한 화가의 전시를 보아도 감흥이 없었다. 그림은 그리는 게 재밌다. 보는 건 그냥.. 보는 거다. 그림 보다는 조각이 좋고, 조각 보다는 실물이 좋다. 언젠가 그림을 이해할 날이 올까..?
이곳은 명품관이 따로 필요없을 만큼 많은 명품이 그냥 비치되어 있다. 디올 샤넬 할 것 없이 그냥 지나다니면서 보고, 살 수 있다. 한국처럼 줄을 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 돈만 있으면 여기는 천국이다.
초콜렛 룸에 가면 마카롱이 있다. 6개에 15파운드. 마카롱은 원래 비싸지만 물가 때문인지 쪼금 더 비싸다. 두개 씩 세 가지 다른 맛의 마카롱을 산다. 같이 온 동료들이 마카롱에 영 뚱한 반응이었던 걸 보면 필시 맛있는 마카롱을 먹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찐덕찐덕한 마카롱은 진짜 마카롱이 아니라는걸 알려주고 싶다. 나는 과자에 진심이다.
밥 보다도 후식에 돈을 더 쓰는 타입이다. 마카롱, 초콜렛, 홍차, 커피, 와인 같은 후식에 진심이다. 몇백불을 써도 아깝지 않다. 소비하는 순간 만큼은 그 누구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니까. 다만 먹을 수록 까다로워지는 건 어쩔수가 없다. 초콜렛도 마카롱도 커피도 까탈스럽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기대치가 높아진다.
결국 쇼핑백을 가득 들고 백화점을 나온다. 이제부터 뮤지컬을 보러 가야하는데 짐이 너무 많다.
여왕 폐하의 극장에 도착했다.
아직 한시간이 남았다. 애매하다. 옆에 카페가 보인다. 카페라도 쓰고 바라고 읽는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없다. 주말이라 그런가보다.
바에 앉아 칵테일을 주문한다. 많이 보던 메뉴다. 뭔가 다른 걸 먹고 싶다.
칵테일이 먹고 싶은데, 추천해 줘.
시그니처 칵테일 메뉴가 따로 있었다. 칵테일이 나왔다. 일본 풍의 컵에 예쁜 장식이 올라가 있다. 진토닉 베이스의 칵테일. 마실때 상큼한 향이 난다.
제미나이(GEMINI) 라고 했다.
칵테일을 마시며 휴대폰을 마지막 거린다. 이제 뭐하지. 웹툰을 보려다 닫는다. 이제 볼 웹툰도 없다. 브런치를 다운 받는다. 뮤지컬까지 글이나 써야겠다.
뮤지컬은 당일 00시가 되면 남은 자리의 티켓을 싼 값에 구매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앞자리를 50파운드 정도 가격에 볼 수 있다. 이번이 그랬다.
오페라의 유령이 얼마만이지. 십오년은 된 것 같다. 세계투어를 하던 때에,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예술에 전당에서 봤다.
사랑도 상황도 이해되지 않을 법 한데,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 그때 들었던 노래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