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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Jul 04. 2022

가끔 고양이를 바라보며

칠월이다.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투덜대는 사이 칠월이 오고, 나의 이십대는 반년밖에 남지 않았다.


요즈음은 퍽 심심한 일상이다. 여행과 출장이 잦아 유럽 여기저기를 떠돌지만 뭔가 텅 비어있는 느낌이 든다.

어릴 때는 뭔가 더 두근거리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이십대 초만 해도 상처받고 다독이고 다시 도전하는게 익숙했다.


강해졌다기보다 초연해졌다.

살다보면 그리 상처받을 것도 놀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딘가 멍 하다. 어릴때 밤을 새서 하던 게임도 재미 없고, 넷플릭스를 아무리 뒤져도 볼 만한 영상이 없다.


하얀 지점토를 꺼내 코스타를 만든다. 두 달 전 사놓고 방치해 두었던 찰흙이다. 밀대가 없어 와인병으로 민다 겉을 다듬어 모양을 만든다. 남은 찰흙을 치대어 다시 민다.


하나 둘 셋. 네 개 째는 좀 얇다. 남은 건 둥글게 말아 연필 꽃이와 거치대를 만든다.

어제는 비가 왔는데 오늘은 화창하다. 그래서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쉽다.

조물조물 무언가를 만들고 있노라면 이 순간이 참 평화롭게 느껴진다: 평화롭다.


오랜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Hi brother, how are you? I went to London last week and got some present for you………there is a minor problem. I have nothing to inspire me……..miss you so much.


내 시간이 이리 천천히 흐르는 이유는 내게 영감을 주는 것들이 없기 때문이다.

아주 느리고 아주 덫없는 시간들이 흐른다. 올해 초 이십대를 얼마 남기지 않고 마주했던 위기감은 어느새 사라졌다.



파리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돌아올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좀 편해지고 싶다. 아무 부담도 없이 생각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살고 싶다.

카톡을 끄적이다 지웠다. 딱히 죽고싶다거나 그런건 아니다. 그냥 언제부터인가 나와 늘 함께하는 이 무거운 감정을, 불안함인지 책임감인지 모를 이 망령을 지워버리고 싶다.


아주아주 홀가분한 그런 상태가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끔 친구와 담소나 나누며, 가끔 고양이를 바라보며, 가끔 파전에 술이나 한잔씩 기울이며 살고 싶다.



아직도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 아직도 많은 것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이 망령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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