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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Jul 09. 2022

그 어린 치과 의사는 말했다.



달싹달싹. 의자가 움직여 잘 수가 없다.

뒷자리에 어린아이가 앉았나보다.


"뒤에서 자꾸 발로 차대길래 나도 뒤로 가서 똑같이 해줬지."


엘레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피식. 재밌는 친구다.

하지만 너무 번거롭다. 손수 뒷자리까지 가서 차주기에 나는 너무 피곤하다.







오랜만에 세상 모르고 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제는 12시가 다 되어 일이 끝났고, 종일 알민했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잠이 들었다. 

오늘은 일찍 일어나야했지만, 괜찮다. 알람을 맞췄으니까.


...그런데, 알람이 울렸던가?


밝았다.

커튼 사이로 빛이 쏟아지는 빛이 쏟아지는걸 보아, 아침이 분명했다.

마음을 졸이며 핸드폰을 찾는다. 


'6시 23분'

....!?

오늘은 독일로 떠나는 날이다.

7시 5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여섯시에 공항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아침 다섯시 삼십분에 알람을 맞추고 잠이 들었다.

왜 알람이 울리지 않았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쨋든 중요한 건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비행기를 놓칠 거라는 거다.

눈에 보이는 대로 아무거나 주서입고 싸다만 짐가방을 본다.

생각할 겨를이 없다. 어차피 중요한 건 어제 대충 챙겼다.

널부러져 있던 것들을 아무렇게나 던져넣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여권, 지갑, 열쇠


이것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터였다.

차에 올라 숨을 돌리며 생각했다. 


아, 알람이 평일 설정으로 되어 있었구나.

그래서 오늘은 울리지 않은 거다.

여섯 시가 아니라 여덞 시에 일어났다면...

그럼 다음 비행기를 타고 가면 되지.

하지만 분명 비싼 값을 줘야 했을 것이다.


지난 번 뒤셀부르크 공항에서 비행기를 놓치고, 다음 비행기를 예약하며 나는 기존 운임비에 약 다섯 배에 달하는 값을 지불해야 했다.

그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다.


공항은 그리 붐비지 않았다.

다행이다.


지난 밤 발권해둔 온라인 티켓을 찍고 황급히 게이트를 찾았다.

일곱시. 

일곱시라니, 이정도면 순간이동 수준이다.

공항에 가까이 살아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언니에게 카톡을 남긴다.


'와, 비행기 놓칠뻔. 먼저 가 있을께, 이따봐!'


한국에서 오는 언니는 이미 몇시간 전에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언니보다 다섯 시간 정도 일찍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할 예정이다.

시간이 좀 뜨기는 하지만, 어차피 집에서 빈둥거리나 공항에서 빈둥거리나 큰 차이는 없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비행기에 오르고 나서야 안심이 된다.

아침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다섯 시간 정도밖에 못 잔 것 같다.

독일까지 두 시간 남짓, 잠깐 눈을 붙여야지 하는 순간이었다.


-들썩들썩


등판이 아예 움직이는 탓에 몸을 일으켰다. 


"Oh, I am sorry."


"It's okay"


뭐야, 애가 아니잖아?

습관적으로 대답해 버렸다. 안괜찮다 할껄. 

미안하면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그런 그가 내 옆으로 온다. 


"If you don't mind, can I seat here?"


뭐지. 왜지? 자리뽑기가 좋았는지 내 옆자리는 양쪽 모두 비워져 있었다. 앞줄도 뒷줄도 꽉 차 있는데, 내가 앉은 줄만 텅텅 비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자기 편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지, 옆으로 오면 더이상 내 의자가 들썩거릴 일은 없다. 어차피 내가 산 자리도 아니니, 내가 안된다 할 입장은 아니지만.


"Sure"


그는 고맙다고 말하고 그대로 자리를 잡았다. 

나는 반대로 고개를 살짝 돌리고 그대로 잠을 청했다.  


"Hey"


...왜, 또 뭐...


"I am sorry, but are you living in German? I need to take another fights there.. so I wonder.."


아니, 난 어딜봐도 한국인이잖아. 

어떻게 하면 내가 독일에 사는 사람처럼 보이는 걸까.


"No, I am living in Latvia. but you can transfer the flight in frankfurt. "


"Are you a student?"


이런, 자연스럽게 근황 토크로 넘어가 버렸다. 이제와 무시할 수도 없고.

그때부터 독일에 도착할 때 까지 그는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넷플릭스에서 봤던 한국 드라마, 가족이야기, 일에 대한 이야기, 결혼에 대한 생각까지.

그의 가족은 대대로 치과의사 하는 듯 했다.


막내였던 그는 레슬링을 조아했지만, 가족들의 의견을 따라 치과 의사가 됐다고.


"I thought you are a student. how old are you?"


"I am 25. doing 3rd residency"


역시, 어려보였다.

그는 extreme스포츠를 좋아한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면 번지점프를 할거라고.


"I am going to say your name when I am juming."


"No, don't do that!"


그런 얘기를 하다 비행기는 독일에 도착했고, 짐을 가지고 내리며 그가 말했다.


"Actually, my flight was supposed to be yesterday. But the flight canceled...and now I think it was lucky because I met you."


공항에서 헤어지며, 그는 내게 좋아하는 색을 물었다. 그리고는 로마에서 산 기념품을 선물로 주었다.

하얀색 곰돌이 키링이었다. 


그는 9월에나 10월에, 리가를 다시 방문 할 것 같다며, 괜찮다면 그 때 만나자고 했다. 


"I feel it is a destiny. Do you believe it?"


음... 아니, 운명이 어딨어 세상에.

하지만 나쁜 아이 같지는 않았다. 그냥 문화가 많이 달랐다. 


그는 두 명의 형과 한 명의 누나를 둔 막내였는데, 모두 나이가 비슷했다.

다만 그들은 모두 결혼해서 아이가 있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결혼을 빨리 하는 모양이지.

그에게도 결혼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는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의 생각을 묻는 그에게 말했다.

"혼자서도 괜찮을 때 결혼해야지 않을까? 나중에 남자가 바람을 피거나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적어도 먹고사는 게 걱정되서 어쩔 수 없이 사는 일은 없어야지."


그 때 그는 화들짝 놀라며,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며. 자기의 종교 (그는 무슬림 이었다)에서 아내를 배신하는 것은 커다란 죄악이라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모두가, 혹은 무슬람 모두가 바람을 안핀다는 것은 아니지만, 바람을 피는 건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며, 소중한 사람을 함께 하기 위해 소중한 사람들로부터 약속하고 데려와서 배신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사고가 가능하구나. 아니, 너무 당연하지만 이상적인 이야기라 생각했다. 다만 이 어린 치과의사가 하는 말은 너무 진심 같았다. 그가 사는 나라와 문화에서는 이상적으로 들리는 그 이야기가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듯 보였다. 


"if you really do the jump and send me video, then I will think about it."




공항으로 나와 맥모닝을 먹으며 아침겸 점심을 먹었다.

아침 아홉시. 졸립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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