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 꿀벌 Nov 26. 2022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보고 있다. 보지 말아야지 내려놓았다가  깜빡 잊은 사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가끔 주말에 마트에 나갈 때면, 갈림길에서 나도 모르게 회사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발견하곤 한다. 그러면 화들짝 놀라 발길을 돌리며

습관이 무섭다니까..’

하고 중얼거렸다.


아침에 눈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습관으로 하루를 보낸다. 눈을 뜨면 스트레칭을 하고 세안을 한다. 꼭 화장을 하고 머리를 다 말고 나서야 옷을 갈아입는다. 침대에 조금이라도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이 이런 습관을 만들었다.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으면 화장품이 옷에 묻기도 하고, 또 잘 지워지지 않아 불편하다. 그래도 한번 들인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작년 한 해, 한국에서 너무 바쁘게 생활하던 나는 올해는 꼭 푹 쉬면서 여유롭게 보내야겠다 다짐했었다.


바쁘게 지내던 것도 습관이 되어버렸던 탓인지, 처음에는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일이 끝나면 집안일을 했다. 밤늦게 야근을 하고 돌아와도 꼭 청소기를 돌리고, 책을 읽었다. 어떤 날은 마땅히 할 게 떠오르지 않아 멸치를 다듬기 시작했는데, 결국 그 자리에서 세 시간 동안 멸치를 다듬었다. 커다란 봉지가 모두 비워질 때까지 작은 멸치의 머리를 따고 똥을 떼어내기를 반복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간단한 노동을 좋아한다. 그럼 적어도  일을 하는 동안,  머리에 떠다니는 생각만 응시하면  일이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내게는  어렵다. 생각을 안 한다는  어떻게 하는지 잊어버렸다.

어느 날 회사에서 저녁을 먹으며 멍하게 밥을 먹는 상사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 하세요?”


아무 생각 안 합니다.  상사는 대답했다. 특히 무언가를 먹을  그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유의 멍한 표정은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같았다.

밥을 먹으면서 아무 생각을 안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생각을 멈추는 법을 몰랐다. 어떻게 하면 아무 생각을 안 할 수 있냐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아무 생각 안 하면 돼요.”


이건 누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결국 그렇게 삼 개월 보내다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무겁고 비싼 교재들이 비행기를 타고 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도 내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 공부할 게 있으니 심심하지 않겠다고 기뻐했지만, 어느새 나는 시험과 공부를 기간별로 계획하고 있었다.


정말 쉬어가는 한 해를 보내려고 했는데… 습관이란 게 이렇게 무섭다.


그러다 이런 나를 게으르게 만들어준 사건이 있었다. 바로 어마어마한 야근이다.

여러 가지 일이 한 번에 터지고 몰리며 나는 근 서너 달 동안 인생에서 가장 많은 야근을 했다. 매달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며 일했다.

이틀 동안 서른여섯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기도 했다. 당연히 공부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니 수면 패턴도 생활도 모두 엉망이 되었다.

쉬는 날은 오전 아홉 시쯤 전화가 왔다. 전날 보낸 자료를 설명하고 그대로 식탁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바쁜 일이 끝나고 정말   있는 주말이 찾아오면 정말 기뻤다. 사람들이 주말을 기다리는 이유가 이런 걸까? 그냥 마음 편히   있다는  좋았다. 새벽에 자고 새벽에 일어나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원하는 만큼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나는 슬슬 쉬는  즐기기 시작했다. 잠도 실컷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 반죽을 만들고, 장을 보고 돌아와 소파에 누워 이것저것 찾아보다 보면 오후  세시쯤 배가 고팠다. 그럼 아침에  반죽으로 수제비를 만들었다.


수제비를 따듯하고 맛있다. 요즘같이 눈이 내리는 날에는 더욱 그렇다. 일부러 창을 열고 찬 공기를 마시며 수제비를 먹는다. 몸에는 담요를 둘렀다. 그럼 왜인지  맛있게 느껴진다.

그렇게 빈둥거리다 몸을 움직이고 싶으면 청소를 했다. 냉장고 뒤나 선반 위, 소파 밑처럼 평소에 청소하기 힘든 곳을 골라서 했다. 그런 곳에는 평일에 닦아내지 못한 먼지가 남아있었고, 깨끗하게 사라지는 먼지를 보며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서너 달이 지났다.



그리고  오랜만에   있는 주말이 찾아왔다. 이제는 너무 뭐를 많이 보는  같아, 아무것도 보지 는 습관을 들이려 시도하는 중이다.


그래도 아직은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잡고 웹툰을 보거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들어가거나, 기사를 클릭하는  발견한다.

그럼 핸드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본다. 최근에는 해가 빨리 지난 탓에 보이는 게 별로 없다. 그 탓인지 또 금방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시간을 보고 너무 늦어 내일을 위해 다시 잠들 때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보고, 읽고, 듣는 걸까.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온 날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녀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그냥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한   때문이다. 공부는 신기하게도 머릿속을 떠다니지 않는다. 밤에 공부하면 잠도 잘 온다. 


다만 한 번 들인 게으른 습관은 들이기 어려웠던 만큼 빼기도 어렵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눈을 뜰 때부터 다시 잠들 때까지 무의식 속에 습관대로 행동하며 살아가는 만큼, 유익한 습관을 만들어 두면 훨씬 간단하게 유익한 삶을 꾸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만 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어린 치과 의사는 말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