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가야 했던 것 같다. 오늘은 평범한 연애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책장을 뒤적이다, 읽을 만한게 없네. 도서관에서 빌려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집을 나와 차에 올랐다. 네비게이션을 따라 운전을 하며 줄곧 딴 생각을 했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 대한 생각인지, 그 책을 읽으며 나누었던 대화인지, 그도 아니며 오늘 할 일이나 어제 했어야했던 일인지,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그대로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새 궤도를 벗어났다. 어 뭐지? 언제 벗어났지? 바로 앞에서 유턴을 하고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도착하면 학교는 끝났을 것이다. 이대로 쨀까? 그러다 깨닫는다. 어, 나 오늘 교복도 안입었네.
깨고나서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운전하는 시점에 고등학생은 아닌거잖아. 대학생이었나? 꿈에서는 이런 모순에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꿈속에 나는 어지간히 멍청하던가, 혹은 꿈속에 내가 사는 세계는 처음부터 그런 설계인 모양이다.
밖이 깜깜하다.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새벽인가? 핸드폰을 켜니 아직 오전 5시다.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잘 없었는데, 이곳에 오고 부터 간혹 이럴 때가 있다. 꿈을 꿨는데도 잠을 잔 것 같지 않을 때, 너무 일찍 깨서 다시 잠들 수 없을 때, 오늘도 일을하고, 어쩌면 야근을 해야하는데.. 하는 생각에 다시 잠들어보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내 한몸 자고 일어나는 것 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다. 깨어 있을 때는 주변이 나를 가만 두지 않고, 자고 있을 때는 내가 나를 가만 두지 않는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깨어 있을 때가 더 자유롭다. 생각보다 세상은 내 말을 잘 들어준다.
다섯시에 일어나 씻고 머리를 말고보니 6시다. 화장은 나가기 전에나 해야지. 일찍 일어난 김에 노트북을 켠다.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쓰겠는가. 때 아닌 학생 시절의 (?) 꿈을 꾼 것은 전날 들은 노래 탓인가, 혹은 한참 공부하다 대학생 시절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최근 다시 Business를 공부하며 그 시절 무지 싫어하던 방정식을 다시 만났다. coefficient beta가 들어가는 공식. 나는 지금도 저 공식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름도 마음에 안든다. coefficient라니. 단어만 봐도 이해될 것 같이 생겼는데,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 더 약이 오른다. 정의를 보면 이해가 되어도 구하는 방식은 이해가 안된다. 이해가 안되니 잘 까먹고, 잘 까먹으니 문제에 도입하기도 어렵다. 나는 어릴때부터 통계를 싫어했다.
트라우마라고 했던가. 어릴 적에 꾸지 않던 꿈을 꾸는 건, 그 때는 아직 트라우마라 부를 만한 걸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일에 늦거나, 중요한 시험을 망치거나 하는 그런 트라우마. 뇌리에 남아 잘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이다. 평소에 잊고 살다가 이렇게 한번씩 이상한 꿈을 꿀 때면, 그 때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어딘가에 남아 있구나. 싶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내 정신은 그곳에 머물러 있나? 하는 생각에 잠깐 안쓰러워진다. 사실 나는 지금의 삶에 그렇게 만족하지 못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지나친 생각이다.
스타벅스캡슐을 내린다. 얼마 전 캡슐을 잘못 샀다며 상사에게 받았다. 커피가 나오는 갈색 캡슐과, 달달한 우유가 나오는 하얀 캡슐이 있다. 이 두가지 캡슐을 차례차례 내리면 우유가 없어도 카라멜 마끼아또가 만들어진다. 하얀 우유가 나올 때면 언젠가 들었던 우유가루 이야기가 생각난다.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적에는 학교에서 우유 가루를 나누어주었다고 했다. 물에 가루를 타면 우유가 되는 것이다. 이 캡슐도 같은 원리일까?
"いやhave a day offだよ"
아 오늘 쉬는 모양이다. 본래 새벽이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지만, 유럽의 새벽은 아시아에있는 친구들와 연결되는 시간이다. coefficient는 저녁에나 다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