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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Jun 24. 2023

월급쟁이는 한 달에 얼마나 저금해야 할까?

나는 경제관념이 있는가

"월급의 몇 퍼센트를 저금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얼마 전 친구와 했던 대화가 시발점이 되었다. 그는 내게 '경제 관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웃으며 '없다는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거지' 하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얼마를 저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월급의 최소 50%를 저금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 후 부터는 '몇 퍼센트'를 생각하는지 물었다. 


근 1년동안 나는 내가 버는 금액의 약 30%정도를 저금했다. 다들 내가 너무 돈을 많이 쓴다며, 번 돈을 다 어디에 쓰냐고 했지만 나는 나름 나의 계획이 있었다. 호주에서 파트 타임을 하며 월에 이 백 만원으로 근근히 버틸 적에도 나는 딱 30% 정도를 저금했던 것 같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는 버는 돈의 50%가 방세로 나갔고, 10%는 공과금으로, 나머지 10%는 식비로 나갔다는 것이다. 그 때의 나는 커피를 사는 것 조차 마음이 불편할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학교를 졸업하고 풀 타임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 내 손에는 월에 350만원 가량이 들어왔고, 그 중 50%를 저금했다. 외곽으로 이사를 가 방세와 공과금을 합쳐 100만원이면 되었고, 먹고 싶은 걸 먹고 가끔 외식도 하고 놀러도 다니며 50%를 저금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지만 월급의 30%를 저금한다. 고정비는 전보다 더 줄었다. 월세와 공과금을 합쳐 80만원 정도가 들었고, 내가 월에 받는 월급의 15%가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워낙 식비가 들지 않는 체질인 덕에 식비를 합쳐도 버는 돈의 20%를 넘지 않는다. 남은 50%는 전부 쓰고 있다. 여행을 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공부도 하고, 여전히 게임도 하고, 쿠키도 굽는다. 


호주에서 파트 타임을 할 때, 나는 월에 700불을 저금하는 걸 목표로 했다. 방값과 공과금을 내고 나면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십만원 남짓이었다. 그래서 커피도 잘 안 사마시고, 외식도 거의 안하면서 지냈다. 목표 금액이 700불이었으니까. 

그러다 학교를 졸업하고 풀 타임을 시작했을때, 나는 목표 금액을 2,000 불로 늘렸다. 당시에 나는 2주마다 돈을 받았는데, 그 금액이 1750불이었다. 그래서 1,000 불을 떼 놓고 750불로 이 주를 살았다. 그래도 충분했다. 그 때 방값이 한 달에 700불이었으니, 방값과 공과금을 내고도 한달에 600불 정도가 남았다. 주에 한 두 번 외식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싶을 때마다 사마셨다. 

지금 나는 월에 2,000유로를 저금한다. 환율을 생각하면 딱 1.6배로, 월에 3200불을 저금하는 샘이다. 나의 경제관념은 예전부터 쭉 변하지 않았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나의 실수령액은 2700유로였고, 나는 월세와 생활비로 들 700유로를 제외하고 2,000유로 정도를 저금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만 이 곳은 생각보다 야근이 많았고, 야근 수당으로 들어오는 돈과, 반기에 들어오는 보너스, 그리고 해가 바뀌면서 월급이 오른 탓에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게 된 것이다. 나는 그 돈을 모두 쓰기로 마음 먹었다.


삼 개월 쯤 지났을 때, 나는 그렇게 번 추가 수당으로 AICPA강의를 끊었다. 그 후에는 한 달에 한 번씩 해외 여행을 가고 있다. 프랑스 파리, 로마, 런던, 이스탄불, 스페인, 루마니아, 돌로미티, 쏘렌토, 얼핏 들어봤던 곳, 가고 싶었던 곳은 죄다 간다. 한 달에 삼 개국을 여행할 때도 있다. 그리고 지난 달, 나는 CPA 한 과목을 패스했다. 런던이나 프랑크푸르트에서 봐야하는데다 응시료, 국제료, 호텔비 까지해서 한 번 시험을 볼 때마다 백 만원씩 나간다.  강의를 듣고 문제를 풀기 위해,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 맥북을 사기도 하고, 조만간 그간 방치했던 블로그를 편하게 쓰기 위해 아이폰을 살까 한다. 그렇게 나는 작년 12월부터 매 달 한 달에 오 백 만원 넘는 금액을 쓰고 있다. 


나는 경제 관념이 없는 걸까? 받는 돈에 최소 50%를 저금해야 경제관념이 있는 걸까? 나는 프랑스나 로마에서 늘 택시를 타고 다니고, 치안이 좋은 1-5구에 호텔을 잡아 하루 숙박에 30만원씩 쓴다. 여행지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한 끼에 10만원은 나간다. 가끔 좋은 브랜드의 제품을 사기도 한다. 나는 사치스러울까?

나는 평소에 택시를 타지만 차를 소유하고 있지 않고, 집에서 회사까지 택시비로 3유로가 든다. 한달에 외식은 많아야 한 번이고, 배달음식을 일 년 동안 시켜 먹은 적이 없다. 덕분에 여행을 제외한 식비는 100유로가 채 나오지 않는다. 보험과 핸드폰 비는 회사에서 부담한다. 그래서 나의 생활비를 포함한 고정비용은 여전히 700유로다. 그리고 여전히 2,000유로를 저금한다. 남은 돈은 전부 쓴다. 


경제 관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는게 사실 썩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남들이 보기에 펑펑 생각없이 돈을 쓰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싫지 않다. 현재를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가고 싶었던 곳을 가고, 감동을 느끼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데에 돈을 쓴다. 

그 돈을 모으고 모아, 구르고 굴려 훨씬 더 풍족해 졌을 때 부담없이 써도 되지 않냐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지금도 부담 없이 쓰고 있다. 내가 계획했던 만큼 저금하고, 생활비에 부담이 가지 않을 정도로 쓰고 있다. 지금도 나는 충분히 공부하고, 여행을 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데, 굳이 미루어야 할 이유가 없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서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중 하나는, 게임이 전만큼 재미있지 않다는 것 이었다. 이건 내게 꽤 큰 충격이었다. 나는 한 번 빠지면 식읍을 전폐하고 일주일동안 쪽잠을 자며 게임만 할 정도로 게임을 좋아했는데, 고등학생 때 잠깐 공부를 하기 위해 게임을 끊은 적이 있었다. 후에 사람들이 말했던 것처럼 나중에 성인이 되어 그간 하고 싶었던 게임기와 게임을 모조리 사서 플레이 했다. 근데 재미가 없다. 그 때 재밌게 했던 게임 조차 재미가 없다. 

모두 다 때가 있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게임이 재미있는 때는 지났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나는 여전히 간혹 게임을 하지만, 한 두 시간 하고 나면 또 한 두 달은 찾지 않을 만큼 흥미를 잃었다. 언제까지 브랜드가 가지고 싶고, 언제까지 여행을 다니고 싶을까. 체력이 빠르게 안좋아지고 있다 느끼는 지금도 뚜벅이 여행을 할 바에는 집에서 쉬겠다는 나는, 십 년이 더 지나고 나면 비행기 타고 택시 타는 것 조차 귀찮아 나돌지 않을 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하고 싶은 건 지금 해야 재밌고, 그래서 더 가치가 있다. 오늘 행복하지 않은 내가 어찌 내일은 행복하고, 미래가 밝다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 행복하고, 오늘 하루가 행복하다면, 그런 행복한 하루가 쌓이고 쌓여 돌아보면 행복한 삶이 거기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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