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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Sep 26. 2023

이 세상에 어른은 없었다.

아이


서른이 되었다. 

서른이 된지 아홉 달이 지났다. 


영국에서 시험을 마치고 선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내일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런던은 좋다.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거리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바쁘게 돌아가는 듯 하지만 여유롭고, 북적이는 듯 하지만 시끄럽지 않다. 질문을 하면 농담으로 대답하는 영국 사람들은 꼭 어린아이를 놀리는 아저씨같다. 그래서 좋다. 


어릴 적 생각했던 서른은 어른의 숫자였다. 어디서 무엇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무슨 일이 있었어도 자연스러운 듯한 나이다. 아직 공부를 하고 있어도, 취업을 했어도, 어디에 전문가가 되었어도, 여행을 떠나 있어도, 결혼을 했어도, 아이가 있어도,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올만큼 유명해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나이다. 아마도 스무살 이후의 십 년 이라는 시간이 같는 의미가 그런게 아닐까 싶다. 


"어른이시네요. 멋있다."


이튿날 아침 Gails' Bakery에서 스콘을 먹고 있을 때였다. 뭐가요? 하고 물으니,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게 멋있다고 했다. 공부를 하는 것도, 독서를 하는 것도, 여행을 다니는 것도, 시험을 보러 연차를 내고 런던에 온 것도, 그렇게 런던에 와서 일요일까지 놀지 않고 토요일에 돌아가는 것도 멋있다. 언제 부터인가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누군가에게 멋있는 일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매일 학교에서 공부하고, 책을 읽고 (우리에게는 독서 감상문이라는 숙제가 있었다), 게임도 하고 (하지말라그래도 자발적으로), 여행도 다니고(우리는 학기마다 견학, 소풍, 수학여행을 갔다), 시험도 치며 (중간/기말 고사가 있었으므로) 살았다. 이 모든 것들은 해서 당연한 것이었다. 누구도 이런 나에게 멋있게 산다던가, 어른이네!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릴 때 하던 것들을 똑같이 하면 멋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어른들의 세계는 분명 어린이의 그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심지어 지금은 일하다 남는 시간에나 공부하고, 책도 고전 소설이나 추천 도서가 아닌 좋아하는 소설이나 읽고, 여행을 나오면 문화유산이나 역사 따위는 알아보지 않고 맛있는 스콘이나 먹으러 다니는데. 불량아 같은 나의 삶은 멋있는 어른의 삶으로 둥갑한다. 

그런 시선이 싫을 건 없지만 썩 달갑지만은 않다. 그 뒤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남는 시간에 공부하는 것만으로 공부에 진심이고, 아침에 커피마시며 책을 읽는게 행복하다는 이유로 독서에 진심인 사람이 되었다. 집에 닌텐도와 프로젝터가 있어서 게임에 진심인 사람이 되고, 한달에 두 세 번씩 해외 여행을 다녀서 여행에도 진심인 사람이 되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어느새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이 되어있다. 


그럼 당신은 무엇에 진심인가요? 공부도 안하고 책도 안읽고 게임도 안하고 커피도 안마시고 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가기에 내가 하는 모든일이 진심이 되는 걸까. 


"유튜브를 보거나, 산책을 가거나, 맛있는 걸 찾아다녀요. 먹는 데 진심이죠"


제가 책을 읽는 건 당신이 유튜브를 보는 것과 같아요. 진심이었다. 공부를 하는 건 산책을 하는 것과 같고, 커피와 스콘을 찾아 마시는건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니는 것 같다. 남는 시간에 심심해서 한 선택들에 불과했다. 딱히 학생 때처럼 그게 내가 해야할 일이라서, 그래야 훌룡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해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심심해서 재밌는 소설을 읽었고, 남는 시간이 지루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시험 기간이 되면 무슨 짓을 해도 재밌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대단하다, 멋있다, 어른이다. 그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뻣대거나 자랑하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칭찬을 받을 만한 일도 아니다. 무슨 말을 해도 이렇게 반응 하니, 말을 하기가 꺼려졌다. 나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딩가딩가 시간을 보내는 베짱이에 불과한데. 이 사람들은 내게 무언가 기대하는 듯 하다. 


서른이 되고 나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아갈 수 있을 정도의 여러가지 요령이 조금 생겼을 뿐이다. 여전히 언니한테 까불기를 좋아하고, 공부하는 것보다 농땡이 치는 걸 더 좋아하고, 게임하고 놀면서 침대에서 삐대고, 할말도 없으면서 친구한테 뭐하냐고 카톡을 보낸다. 어릴 때 놀던 그 시점에서 나는 한치도 자라나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떼를 써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고, 돈을 벌지 않으면 누워서 닌텐도를 할 수 있는 침대가 없는 것 뿐이다. 아무도 내게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지 않지만, 대신 아무도 내게 거저주지 않는다. 달라진 것은 그것 뿐이다. 


결국 어른이라는 건 어떤 대단한 내면의 성장이 아니라, 나를 대하는 세상이 바뀌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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