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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Nov 14. 2024

라트비아? 거기 위험하지 않아?

전쟁 국가들 사이에 있잖아?

라트비아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삼 년이 다 되어간다. 한참 러-우 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이곳에 왔다. 코로나의 끝 무렵, 아직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예방 접종을 3차까지 맞지 않으면 해외를 갈 수 없었을 때였다. 이 시대에 전쟁이라니. 발발하기 전까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설마, 진짜 하겠어? 겁만 주는 거겠지! 그런데 진짜 터졌다. 이 문명화된 시대에 전쟁이란 것이.


처음 라트비아를 찾아보고 깜짝 놀랐다. 일하러 오라고 하기에는 옆에 러시아가 있고, 밑에는 벨라루스가 있었다. (물론 사이에 리투아니아가 있었지만) 그래서 혹여 괜히 갔다가 전쟁에 휘말리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워 여기저기 물어보고 열심히 검색도 해봤지만 정보가 없었다. 아니, 이런 문명화 시대에 이렇게까지, 정말 이렇게까지 정보가 없다고? 

물론 정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어로 검색하면 많이 나왔다. 하지만 결국 내가 보고 싶은 건 '한국인이 겪었을 때, 한국인이 생각하는 라트비아'였다. 한국인이 쓰면 신빙성이 생기는 것처럼 괜히 한국인이 직접 쓴 글을 봐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찾고 찾다가 한 번, 아마도 몇 년 전쯤 (지금으로부터 한 7-8년 전쯤) 라트비아에서 대학원을 (지금 생각해 보면 교환학생이었지 싶다) 다니던 사람의 글을 봤다. 대체로 좋은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안전하고, 치안이 좋고, 여자가 많고, 여자 성비가 높고.. 대략 성인 여자 혼자 지내기에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약속한 삼 년이 지나 라트비아를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혹여 나처럼 아직은 생소할 이 작은 나라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짧은 감상을 적어두기로 했다.


우선 그때의 내가 가장 궁금했던 치안.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살았던 어떤 나라보다도 치안이 좋았다. 물론 아주 외곽까지 나가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지냈던 리가(구/신시가지 포함 리가라고 칭하는 주변까지도)는 새벽 두 시에 혼자 걸어다녀도 아무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치안이 좋았다. 


성비는 실제로 여자가 더 많고, 인구는 나라 전체에 백팔십 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무려 서울의 오 분의 일), 그중에 삼, 사십 명 정도가 리가에 살고 있다. 수도라고는 하나 서울(이 아니라 수원이라도)에 비하면 아주 한산하고, 인구밀도가 낮으며 굉장히 평화롭다. 사람들은 비교적 아주 느긋하고 (사실 한국보다 바쁜 나라는 손에 꼽겠지만), 실제로 GDP가 꽤 높은 편이라고 한다. 겨울이 긴 탓인지 노숙자도 거의 없다. 뚜벅이인 내가 삼 년을 살면서 한 번 본 정도이니 호주, 한국보다도 훨씬 적은 편이다. 게다가 밤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편이라(10시 넘으면 갈 곳 없음)  밤 늦게 술주정을 부리거나 취해 돌아다니는 사람도 보기 힘들다. 유럽에서 그 흔하다는 캣콜링(Catcalling)이나 소매치기조차 없다. 작정하고 위험한 곳을 찾아다니지 않는다면 굳이 안전한 구역을 찾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안전하다. 듣기로는 독립 후 적폐 청산의 일환으로 사창가를 전부 없애고 불법화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빨간 집도, 다른 곳에서는 종종 보이는 위드를 파는 곳도 없다.


치안 외에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래도 수도인 리가(Riga)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구사한다. (기본적으로는 라트비아어가 따로 있다, 그다음은 러시아어가 가장 많다고 한다) 인구가 적어서 그런지 집값이 무척 싸다. 리가(신시가지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살면서 방 하나짜리 아파트가 대략 육십만 원 정도 한다. 솔직히 한국보다도 훨씬 싸고, 유로권인 것을 생각하면 정말 무지무지 싸다. 살아본 도시중에 가장 싸다. 그 외에도 공과금(인터넷 빼고 가스, 전기, 수도, 관리비 다 합쳐서 십오만 원 정도), 택시비(Bolt 어플을 이용하는데, 차로 삼십 분 거리가 이만 원(약 십오 유로 정도)이다. 식재료도 무척 싼 편이라 술이나 수입 과자(주변 유럽 국가가 아닌 나라에서 배 타고 온)를 사지 않으면 한 달 식비가 (내 기준) 이십만 원이 안 된다.


반대로 비싼 걸 이야기하자면.. 외식비가 정말 비싸다. 양식이 꽤 잘 되어 있는 편이고 다른 주변 국가에 비해도 괜찮은 양식 레스토랑이 많은 편이지만, 이런 곳은 대체로 인당 백 유로 (십오 만원 정도)는 생각하고 가야 한다. 가볍게 갈 수 있는 레스토랑(점심으로 먹는 파스타 정도)에 가면 그래도 삼만 원 정도에 먹을 수 있다. 또 가공품이 무지무지 비싸고 쇼핑할 곳이 없다. 화려한 주변국(프랑스, 이태리, 독일, 스웨덴 등)에 비해 이곳은 스타벅스, 다이소, 유니클로가 없을 정도로 입국 브랜드가 없는 편이다. 알만한 명품 부티크는 버버리 매장 하나 정도이고, 편집샵이 있다고 들었으나 가보지는 않았다. 그나마 쇼핑할 만한 자라, H&M 같은 매장들이 있지만 이도 큰 쇼핑몰에나 가야 있어서 차가 없으면 불편하다. 


하지만 공항이 잘 되어 있다. 나름 발트 삼국 중 중앙에 위치한 라트비아는 발틱에어라는 항공사가 있어 북/동유럽 사이에 꽤 유명한(?) 경유지다. 덕분에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비행편이 꽤 많다. 로마, 파리, 런던 같은 유명한 도시는 거의 매일 비행편이 있고, 저가 항공도 꽤 다니는 편이라 런던이나 폴란드는 십만 원에 왕복할 수 있다. 그래서 옷이나 머리는 대부분 파리나 베를린 같은 큰 도시에 가서 해결했다. 대부분 두세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 휴가를 굳이 쓰지 않고도 갈 수 있다.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처럼 혼자서도 잘 노는 집순이가 아니라면 좀 힘들 수 있다. 이곳은 아시아 사람들이 정말 적고, 한국인은 더 적다. 교민을 다 합쳐도 오십 명이 안 되는 수준이며, 거리를 걷다가 한국인을 본 적은 삼 년 살면서 딱 두 번 있다. 한식집은 딱 두 개 있는데, 그럭저럭 먹을 만 하지만 국밥, 내장 볶음 같은 굉장히 한국적인(외국인이 꺼릴만한) 음식은 없다. 물론 옆 나라 가서 놀아도 되지만 아무리 한두 시간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건 상당히 힘들고, 저가 항공이라도 자주 타면 꽤 부담될 수 있다. 


종합하자면 라트비아는 꽤 좋은 나라다. 조용한 환경을 원하거나, 인파를 피해 좀 쉬고 싶거나, 나에게 온전히 투자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살기 나쁘지 않다. 치안도 좋고 사람들도 (살갑지는 않지만) 순박하고, 공기도 좋고(대부분 이곳에 와서 반년이 지나면 알러지와 아토피가 많이 사라진다고 한다), 마을도 예쁘다(언젠가 사진에서 봤던 작은 유럽 마을 같은 느낌). 너무 길지 않게 머문다면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한국인에게 느긋한 재정비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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