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했던 장례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의 빈 공간이 더 실감나게 다가오겠지. 가족수가 적으면 그 빈자리가 더 도드라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해가 거듭하다 보면 슬픔이 무뎌지기도 하겠지.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결코 독립한 적 없던 나도 언젠가는 담담해질 날이 올까.
아버지와 물리적 이별을 한지 보름이 지나는 동안, 나의 시간은 미친듯이 널을 뛰었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지낸 한달을 곱씹다가 아산병원에 입원했던 시간으로 거슬렀다가, 그때만 해도 아버지가 기력을 회복하신 것 같았는데... 아버지가 식사를 거부한 3주 동안의 시간은 나를 더할 수 없는 후회의 늪으로 끌어내렸다. 왜 조금더 일찍 입원시키지 못했을까. 아버지가 굶주리는 동안 손놓고 발만 동동 구르던 행동들이 너무나 후회가 됐다. 적어도 몇개월은, 아니 올해까지는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수년 전으로 껑충 뛰어 싫다는 아버지를 병원에 억지로 모셨어야 했다. 나는 깨어나지 않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 가지마.. 그래도 너무 힘들면 가셔도 돼. 괜히 그랬다.
투병하는 동안 여윈 아버지의 사진들이 지금 보면 오히려 건강해 보이기까지 한다.
상실감과 후회, 슬픔으로 몇날 간을 보내고 나면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온다. 다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득해서 실감이 나질 않는다. 시간은 유년시절로, 학창시절로 거슬러 아버지와의 친밀했던 기억들과 함께 아버지에게 잘못했던 행동들이 켜켜이 끼어든다. 후자의 영향력이 단연 압권이다. 아버지에게 했던 모진 말들, 퉁명스런 전화, 이유없이 솟구치던 짜증들... 풍수지탄. 기다려주지 않는 부모에게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전형적인 못난 자식의 수순을 밟고 있다. 조문을 온 동생은 아버지와 나눈 마지막 대화를 듣고 눈물을 글썽였다. 부럽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부모 자식의 관계가 너무 돈독해도 마음이 힘든 법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명이 다하는 날이 온다. 대부분은 부모가 자식보다 먼저 떠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식을 먼저 앞세운 부모들도 있다. 그들의 헤아릴 수 없는 억장은 어땠을까. 갑작스레 떠난 부모를 둔 자식의 마음이란. 너무나 어이없는 사고로 부모를 잃기도 하고, 느닷없는 사건으로 억울한 죽음을 맞기도 한다. 아무리 돌을 던져도 사라지지 않는 죽음처럼, 삶의 곁에는 늘 죽음이 있어왔고, 그런 날이 언젠가 내게도 바투 다가올 것은 짐작했어도 가장 가까운 죽음은 감당하기가 힘이 든다.
유독 아버지와 관계가 돈독했던 지인 하나가 어이없게 아버지를 잃고 몹시 슬퍼했었다. 얼마전 그녀와 통화를 했다.
"언니, 2년 정도까지는 정말 매일 울었어. 하루도 빠짐없이... 근데 3년 정도 되니까 괜찮아지더라고..."
하지만 전화기 너머 그녀의 음성에는 여전히 울음이 섞여 있었다.
나는 지금의 슬픔과 그리움의 골이 결코 메워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