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밤 9시, 하와이를 경유해서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8시간 반을 날아 7월 12일 아침 11시에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다행히 멀미는 피했지만 겨우 2-3시간 얕게 잤을까 말까한 상태였다. 언니랑 서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얼마나 더 괴팍했는지 이야기하며 입국 수속을 무사히 마치고 공항에서 빠져나왔다.
7월 하와이 날씨는 후덥지근하다. 강렬한 햇빛에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는 수다스러운 우버 기사님과 떠들다가 와이키키 시내에 도착해 포케를 하나 사서 해변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와이키키 해변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벼워지고 불어오는 바람은 무거워졌다. 햇빛과 잘 어울리는 밝은 모래색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살은 햇빛에 태우고 머리는 물에 젖었을 때 가장 자연스럽도록 기른 사람들을 여럿 지나쳤다. 모래를 잔뜩 묻힌 서핑보드를 든 자유로운 영혼들을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흘긋 보다보니 금세 해변에 도착했다.
탄성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맑고 푸른 바다는 처음 봤다. 그 앞엔 야자수가 높게 서 있고 고운 입자의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지상낙원이라는 말이 이런 데 쓰이는 거구나 했다. 모래사장에 드러누워 온 힘을 다해 말했다.
"이곳에서 죽고 싶어, 여기서 살고 싶은 게 아니라 여기서 죽고 싶어."
천국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날씨가 일년 내내 따뜻하고, 하늘이 푸르며 사람들이 친절한 곳. 앞으로 살아갈 나날들이 벅찬 지금보다는 삶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인생을 돌아볼 때쯤 있고 싶은 곳이다. 나의 현실적인 고민들이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곳. 그래서 여기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천국은 천국으로만 남아야 하기에 그랬다.
자꾸 이 말을 했더니 언니가 짜증이 났는지 원하면 당장 죽여줄 수 있다며 말만 하라고 했다.
와이키키 해변 바로 앞에 위치한 햄버거 가게에서 치즈버거와 코코넛 슈림프를 먹었다. 시원한 망고 스무디를 한 입 마실 때마다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사실 내게 하와이는 몇년 전 생일 선물로 다희가 선물해 준 정세랑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의 배경으로 읽은 것이 제일 익숙하다. 책에서 김시선의 자식들은 그의 기일에 다같이 하와이를 가는 것으로 그를 기념한다. 공항에서부터 ’welcome to paradise’로 도배된 하와이는 실제로도 천국일까.
우버 기사님과도 이런 대화를 나눴다. 캘리포니아에 살다 오신 기사님은 어디가 더 좋으냐는 질문에 어떤 곳이라도, 심지어 천국마저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는 당신께서 한국 드라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오랫동안 이야기하셨다.
과연 지상에 낙원이란 게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졌던 10시간 반의 환승 대기 시간 동안 와이키키를 누빌 수 있던 시간은 고작 4시간 반 뿐이었지만 어떤 것에 실망하지 않고 환상만 즐길 수 있는 시간으로서는 충분하다. 따뜻하고 청명한 날씨, 여유롭고 멋진 사람들,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투명한 바다. 어떤 고민도 지워버리는 하와이라는 이름. 그 정도만 가지고 갈 것이다. 언젠가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약하며 하와이 여행기를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