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환학생 2- 6일간의 파리일주
프랑스 파리. 이름만 들어도 낭만이 피어오르고 꿈이 샘솟는 도시. 프랑스에 온 지 3주 만에 처음으로 파리 여행을 하게 되었다. 파리에서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릴에 살면서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 하면 학교 개강을 앞두고 몰려오는 오티와 웰컴위크 때문이었다. 2주 동안 살면서 할 소셜라이징을 몰아서 다 한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과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 새 친구들을 만들고, 파티에 참석했다. 이 기간 동안 40명의 사람들과 인스타 친구를 맺었고, 그중 그나마 친구가 되었다 싶은 사람은 5명 남짓이다. 새삼 친구 사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체감했다. 내 안에 있던 외향성을 극한으로 끌어 쓴 후 소셜 배터리가 거의 다 닳았다 싶을 때쯤 난 파리로 떠났다.
이번 6일간의 파리 여행 중 3일을 함께 할 친구는 나의 대학교 친구 S양. 나는 S양을 20살 때 밴드 동아리에서 만났다. 내 첫 보컬 데뷔가 S양과의 듀엣이었고, S양의 마지막 공연에서는 내가 베이스를 쳤다. 꿈을 위해 영국으로 떠나던 그녀의 마지막 솔로곡은 레이디 가가의 'I will never love again'이었는데, 노래가 얼마나 슬프던지 무대 뒤편에서 베이스를 치며 울컥하는 걸 참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눈물로 S양을 보낸 지 1년 만에 우린 파리에서 다시 만났다.
프랑스에 오면 제일 먼저 알게 되는 것은 바로 계획대로 철저히 처리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파리로 떠나던 화요일, 내 계획은 1시부터 3시까지 있는 수업을 들은 후 4시에 기차를 타서 5시에 S양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럼 그렇지, 떠나기 하루 전 수업이 갑자기 4시부터 6시까지로 바뀌었다. 이미 예매한 기차표는 환불이 불가능해서 나는 첫 수업을 빠지고 기차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기차역에 도착하고 보니 기차가 10분 연착으로 떠 있었다. 음, 이건 흔한 일이지. S양에게 미안하다고, 10분 늦는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10분 연착된다던 기차가 30분 연착으로 바뀌었고, 기다림 끝에 탄 기차에서는 갑자기 불이 꺼지더니 승객들 보고 내리라는 거다. 결국 기차는 예정된 시간보다 70분 늦은 5시 10분에 출발했고, 난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낯선 나라에서 1시간이나 기다리게 했다.
나는 프랑스에 불만이 참 많다. 행정 체계가 없고 사람들이 지각을 잘하며 에어컨이 없다는 그런 점들 말이다. 하지만 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우여곡절 끝에 파리에 도착해 숙소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서, 누군가 훔쳐가지 않게끔 배낭을 꼭 안고 창밖을 바라보며 또 1시간을 달렸다. 비좁은 전철 속에서 누군가 악취를 풍기는 와중 저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그래, 나는 파리에 있다. 그 누가 뭐래도 난 파리에 있다. 마치 영화 <프란시스 하>의 주인공 프란시스처럼. 프란시스는 뭐 하나 잘 되는 것도 없고 당장 월세 낼 돈도 없지만 파리로 떠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며 프란시스에게 답답함을 느꼈다고 이야기했지만 내게 프란시스는 특별히 애정이 가는 캐릭터였다. 기차 연착으로 늦게 도착한 덕에 지하철에서 분홍빛 저녁노을을 감상하며 프란시스 생각을 했다. 왜 프란시스는 파리로 갔을까, 이곳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S양과 나는 3일 동안 파리 시내를 누볐다. 퐁피두 센터, 빈티지샵 구경, 피카소 미술관, 몽마르트르, 에펠탑까지. S양이 런던으로 돌아간 후에는 혼자 루브르와 오르세 미술관을 갔고, 주말에는 캐나다에서 온 언니와 파리 디즈니랜드에 갔다. 파리를 누비는 6일간 매일 3만 보 이상 걸어 밤마다 다리가 욱신거렸지만서도 파리를 걸어 다니는 것이 좋았다.
미디어에서 수 없이 본 에펠탑은 실제로 보니 더욱 웅장한 모습이었다. 퐁뇌프 다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 밤늦게 센강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 9시가 되자 반짝반짝 빛나는 화이트 에펠탑. 옷을 정말 스타일리시하게 잘 입는 파리지앵들, 그들이 빵을 굽는 냄새와 테라스에서 풍기는 담배 냄새... 이 모든 게 가슴을 떨리게 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한국 사람들을 감히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여유가 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우리나라는 뭐든지 빠르고 편리하다. 나 또한 '빨리빨리'를 외치는 뿌리 깊은 한국인이다. 어디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사람 많은 풍경에 익숙하며, 만원 버스 뚫기를 제일 잘하는 서울 사람. 반면에 프랑스에서는 어떤 행정 처리도 며칠을 기다려야 하고, 문제가 생겨도 명확한 해결 방법을 잘 알려주지 않아 답답해 미친다. 버스가 있어도 30분 거리 정도는 걸어 다니는 게 기본이다. 가는 길에 음악도 듣고, 바게트도 사고, 잔디가 있으면 누워서 쉬기도 한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진짜 파리지앵 경험은 햇살 좋은 날 공원에서 책을 읽거나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아이러니한 일이다. 살기 불편한 점들이 인간에게 하루에 한 번이라도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프랑스 영화 중 가장 잘 됐다는 영화 <아멜리에>에서 주인공 아멜리에는 몽마르트르에 산다. 아멜리에는 크림 브륄레의 캐러멜을 티스푼으로 깨뜨리는 것, 생 마르탱 운하에서 하는 물 수제비 뜨기를 좋아한다. 나는 뭘 좋아하는지 생각해 봤다. 나, 문가빈은 어두운 방에서 노란 램프만 켜두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 그 외에도 사람들이 웃는 모습, 따스한 햇살이 피부에 닿는 기분이 좋다. 이렇게 소소하지만 구체적인 질문은 쉬울 것 같지만 의외로 시간을 갖고 생각하지 않으면 바로 떠올리기 어렵다. 여유가 없다면 생각할 겨를도 없는 것들이다. 이 글을 읽는 이가 있다면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고 넘기지 말고, 잠깐이라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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