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빈 Sep 27. 2023

파리 퐁피두에서 프랑스 사람들 관찰하기

프랑스 교환학생 일기 3

 파리 여행 1일 차였다. S양과 나는 파리 최고의 현대 미술관이라는 퐁피두 센터에 가기로 했다.


 이미 2만 보 이상 걸은 우리는 너무 지쳐 앉을 곳을 찾고 있었다. 퐁피두 센터에 와 보니 사람들이 그냥 바닥에 앉아 있길래 우리도 그냥 철퍼덕 앉아버렸다.



 돌바닥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기묘한 광경이었다. 옛날 것들을 잘 보존한 파리에서 퐁피두는 지나치게 투박하고 현대적인 건축물이었다. 그 앞 돌바닥에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앉아 있었고, 옆에는 관광객들에게 뭐라도 팔아 보려는 길거리 상인들이 소란했다. 그중에는 '새소리'를 내는 법을 돈 받고 가르쳐 준다는 사람도 껴 있었다. 또, 비둘기가 가뿐히 쉰 마리는 되어 보였는데 사람들이 전혀 개의치 않고 함께 앉아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강하게 큰다. 성장과정은 잘 모르지만 비둘기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비둘기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은 비둘기를 정말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보통 비둘기는 유해하고 혐오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 또한 비둘기가 내 근처에서 서성거리거나 날 준비를 하면 움찔하며 저 멀리로 도망가곤 한다. 


그런데 프랑스에 와서는 비둘기를 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파리가 서울보다 비둘기가 더 많은 것 같은데, 사람들은 비둘기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군다. 비둘기를 무서워하는 기색을 보이면 파리지앵들에게 비웃음을 살 수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강하게 컸다고 생각하는 두 번째 이유는 '비'다. 이 사람들은 우산을 안 쓴다. 한국에서는 비가 한 방울만 떨어져도 우산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안 쓰고 비를 맞고 다니면 그 사람은 우산을 까먹은 사람이다. 일부러 안 가져온 사람이라고는 생각도 못 할 것이다. 하지만 어메이징 프랑스에서는 일부러 우산을 안 쓴다. 친구들이랑 떠드는데도 실내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굳이 밖에 나와서 비를 맞는다. 비가 좋아서 그런다?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냥 전혀 신경 안 쓰는 것 같다. 비를 맞던 말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인드? 내가 아는 프랑스 친구는 '귀찮고 손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우산을 안 쓴다고 한다. 오해하지 마시라. 보슬비도 부슬비도 아니고 장대비에 가까운 비이다.



 퐁피두 센터 전망대에 올라와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볼 때면 이 많은 사람이 다들 각자 인생을 열심히 살아간다는 게 새삼스레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가 있으며, 자신이 주인공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주인공인 내 세상에서는 잠깐 지나가는 엑스트라에 불과한 사람들이다. 저들 세상에서는 내가 엑스트라일 뿐이겠지. 스쳐 지나간 얼굴들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아 꿈속의 행인으로 다시 나올지언정 현실에서 다시 만날 확률은 매우 낮은 사람들이다.


 이런 깨달음에 대한 영어 단어도 존재한다. 그건 바로 Sonder(손더). 사전에 따르면 손더란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들 자신처럼 생생하고 복잡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뜻한다. 


 이런 깨달음을 겪게 되면 겸허해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민하고, 마음 아파하고, 기쁨을 느끼며 살아간다. 아주 불공평할 때도 있는 세상에서 비자발적으로 태어나 열심히 삶을 꾸려나가는 것만으로도 많은 수고를 다 한 게 인간들이다. 어딘가 잘못된 세상에서 우리가 의지할 건 서로에 대한 사랑밖에 없다. 인종, 나이, 성별, 국적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일 뿐이다. 발이 닿지 않는 놀이기구에 탔을 때 발을 동동거리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머리를 다듬고, 딸기 타르트를 먹을 때면 기분 좋아지는 그런 인간들 말이다. 



 퐁피두 센터 앞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는 와중에 누군가 프랑스어로 말을 걸었다. 알아듣지 못한 내게 그가 자기 손에 들린 카메라를 들어 보였다. 아! 나와 같은 기종의 카메라였다. 사람 좋게 웃던 그에게 나도 같이 웃어 보였다.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한 순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인종도 언어도 다른 낯선 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릴로 돌아온 후 비 오는 날 우산을 안 쓰고 나가 봤다. 굵은 비는 아니고 가벼운 가랑비였다. 작은 물방울들이 옷 위로 토독토독 떨어지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친구 말대로 손이 편해서 걸어 다니며 문자도 할 수 있었다. 비둘기는 아직 무섭지만 이제 아무 잔디나 돌바닥에 잘 앉고, 비를 맞아보는 기분도 어떤지 알게 되었다.


프랑스에 온 지 한 달, 마냥 무섭고 멀게만 느껴졌던 프랑스 사람들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의 밤, 센 강에서 여유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