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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빈 Oct 09. 2023

삐뚤빼뚤한 집에서 살고 싶어

기묘한 도시 암스테르담 여행기

마약과 홍등가가 관광지인 곳이 전 세계에 또 있을까?

유흥 문화만이 다가 아닌 암스테르담 당일치기 여행기




"암스테르담? 안 갈래."

"왜?"

"거기 홍등가가 한 구역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있대. 마약 하러 많이 가기도 하고. 난 안 갈래."


 친구 김씨가 한 말이다. 내가 주말에 프랑스 릴에서 암스테르담까지 가는 당일치기 투어 버스를 타자고 제안했을 때였다.


 김씨의 반응이 이해가 되기는 했다. 벨기에 브뤼셀에 함께 놀러 갔던 날, 길을 잘못 들어 빨간색 구역에 들어갔던 적 있다. 어딘가 이상한 골목이다 싶었는데 웬 대낮에 정육점 조명 아래 마네킹들이 속옷만 입고 걸어 다니던 것이었다. 예상했겠지만 그건 마네킹이 아니라 실제 여자들이었고,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자들이 누가 봐도 여행객인 우리들을 흥미롭거나 불쾌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김씨는 죽기 살기로 줄행랑을 쳤고, 나는 그녀를 겨우 따라잡아 한참을 달래주어야 했다.


 호기심이 생겼다. 프랑스에서도 남자들이 20살이 되면 마약과 여자를 위해 암스테르담을 가는 것이 관행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런데 네덜란드 하면 생각나는 광경은 풍차와 튤립 그리고 한적한 자연경관 같은 게 떠오르지 않는가? 어쩌다 이토록 가벼운 영혼들의 성지가 되었을까?


 프랑스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한 지 2시간쯤 되자 창밖으로 더 이상 프랑스어가 보이지 않았다. 넓고 푸른 들판의 젖소와 당나귀를 구경하다 보니 금방 네덜란드에 도착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비가 억수로 내리고 있었다. 중앙역에 내려 친구들과 삼삼오오 우산을 쓰고 유명하다는 팬케이크 가게로 달렸다. 달리면서도 이색적인 풍경에 셔터 누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식당에서는 팬케이크, 오믈렛, 크로켓을 시켰다. 암스테르담 팬케이크는 미국식 도톰한 팬케이크보다는 얇은 크레페와 더 비슷했다. 그 위에 햄과 치즈를 올려 단맛보다는 짠맛 위주로 느껴졌다. 반죽이 쫀득한 게 피자를 먹는 것 같았다. 거기에 난 커피를 곁들였고, 한 친구는 맥주를 마셨다. 친구들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한 후 본격적으로 암스테르담을 둘러보기로 했다.


 식당을 나오자 작은 골목이 보였다. 골목에 입장하니 낯설면서도 한번 맡으면 잊을 수 없는 냄새가 풍겼다. 대마초 냄새였다. 대마초 냄새의 근원지는 한 커피숍. 간판에 'coffee shop'이라고 적혀 있던 그곳은 일반 카페가 아니라 대마초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cafe'를 찾아야 한다. 잘못 들어가면 묵직한 대마초 냄새와 눈 풀린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다.


 그 골목에는 커피숍뿐만 아니라 대마초 박물관, 성 박물관 등등이 즐비해 있었다. 이것들은 전혀 어둡거나 음흉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고 자연스러우며 밝은 분위기였다. 친구들과 호기심에 대마초 박물관을 들어갔다. 상점에는 대마초 브라우니, 사탕, 젤리부터 대마초가 박혀 있는 암스테르담 기념품까지 다양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걸 자연스럽게 접하면 마약도 아무렇지 않은 게 될까. 암스테르담의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골목을 빠져나와 국립미술관으로 걸어가는 길에 운하를 마주쳤다. 거대한 운하를 가르는 유람선 안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해 보였다.


 암스테르담은 과잉 관광이라는 용어가 붙을 정도로 주민에 비해 관광객이 많다고 한다. 관광객이 많은 곳을 가면 시끄러울 순 있어도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사람들 표정이 즐겁다는 것.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웃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 포즈를 연구하며 사진을 찍고, 함께 여행 온 벗과 대화를 나눈다. 밝은 에너지가 풍선처럼 팽창하고 솟아오른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잘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내가 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삐뚤빼뚤하고 기울어진 집을 자주 볼 수 있다. 위로 갈수록 뚱뚱해지는 집들은 1층의 면적을 줄여 세금을 덜하려는 의도로 지어진 것이고, 기울어진 집들은 공간을 어떻게든 확장시키려는 의도의 결과라고 한다. 사진에 보이는 집의 사연은 모르겠지만 비슷한 이유이지 않을까.


 대학교에서 무대 관련 수업을 들었던 적 있다. 연극 무대에 올리는 소품을 직접 만들어 보는 수업이었다. 나는 작은 창문 하나를 만들었다.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나사를 박아 고정시킨 후 페인트를 칠하는 고된 과정이었다. 땀 흘리며 노력했지만 다 만들고 보니 내 창문은 삐뚤빼뚤했다. 그걸 본 교수님이 말했다. "푸하하, 망했네!"


 교수님께 비웃음도 받고 결국 무대에 올리지도 못한 내 삐뚤빼뚤한 창문이 나는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나 말고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던 내 창문이, 여기서는 꼭 맞는 집을 찾은 것이다. 이곳에서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나를 따라 발길을 멈춘 샘이 말했다. 와, 이런 삐뚤빼뚤한 집에서 살고 싶어.



 밤이 되자 암스테르담 시내 이곳저곳에 빨간 불이 켜졌다. 독일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유럽 성노동자들은 대부분 인신매매나 납치로 인하여 강제적으로 그런 일을 하게 된다고 한다. 자발적인 경우가 거의 없으며 돈도 벌지 못하고 노예처럼 묶여있는 안타까운 상황이 많다고. 네덜란드 또한 인신매매가 잦아 이를 막기 위하여 매춘을 합법화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성노동자들이 강제적으로 일하는 경우가 없어지고 그들의 건강과 안전 또한 노동권으로 보장이 되는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피할 수 없었다. 관광객이 과도하게 많아짐에 따라 유흥을 위해 온 이들이 말썽을 피우는 일이 많아졌다. 튤립과 풍차의 나라가 마약과 환락의 나라로 전락하기도 했다. 인신매매를 없애려 성매매를 합법화했지만 오히려 성매매 사업이 확장하면서 더 많은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다.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버스를 놓칠까 뛰어가는 동안 아름다운 야경을 눈으로 담았다. 다리 위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사람들, 맑은 운하 위로 떠있는 반달,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사람들, 노란색과 초록색으로 빛나는 건물들, 빼곡하게 서 있는 삐뚤빼뚤한 집들을. 복잡한 문제들은 잊어버리고 그저 눈앞의 즐거운 표정들만 바라보았다. 나 하나쯤은 눈에 띄지도 않는 기묘한 도시에서 이상하게 위로를 받을 줄이야.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삐뚤빼뚤한 마음을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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