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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빈 Oct 17. 2023

다신 돌아오지 않을 나의 교환학생

대학생이라면 교환학생을 가야 하는 이유

 프랑스에 온 지 딱 두 달이 되었다. 이제 생활에 안정이 생겼다. 그 말인즉슨 더 이상 혼자 빵을 사러 갈 때 긴장하지 않고, 근처 아시안 마켓에 지도를 보지 않고 찾아갈 수 있으며, 전기세를 자동 이체해 두어 전기가 갑자기 끊길 일도 없다는 뜻이다. 또 마트에서 어떤 과자가 맛있는 지도 알고, 지나가다 노숙자를 보아도 "괜찮아, 저 사람 항상 저기에 있어" 하는 여유를 보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빛이 있는 곳엔 그림자도 있는 법, 교환학생들은 여전히 마냥 행복할 수 없다.


 기숙사에서 옆 방을 쓰는 친구 정이와 밤 산책을 나섰다. 정이와 보벙 가든의 운하를 따라 걷다가 문득 물었다. 넌 한국 가고 싶어? 아니, 전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흐르는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 여기 온 지 두 달이 되었으면 그만큼 떠나는 날도 훌쩍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 한 학기밖에 머무를 수 없는 교환학생들에겐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이런 시간은 우리 인생에서 다신 돌아오지 않을 거야. 확신에 찬 그녀의 말에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프랑스에 돌아오더라도 그때는 그저 여행객이거나 혈혈단신이겠지. 지금처럼 한국 학교의 보호를 받고, 부모님께 용돈을 받으며, 전 세계 각지에서 온 교환학생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는 다신 없을 것이다. 이런 기회가 딱 세 달 남았다.


 억울했다. 왜 나는 그런 작고 독한 나라에 태어난 걸까. 이곳처럼 자유와 여유를 끌어안고 사는 나라에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프랑스 노르망디의 드넓은 초원에서 뛰노는 양으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어떻게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인만 빼놓고 이렇게 재밌게 놀았던 것일까. 몇 살이야? 취업은 어디로 생각해? 스펙은 어떻게 쌓고 있어? 어린 나이도 아닌데, 그만 놀고 돈도 좀 아껴야지. 졸업은 언제 해? 한국의 대학교 3-4학년이라면 귀가 닳도록 듣는 이야기. 나이에 연연하며 살아가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겠다는 다짐도 한국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거의 모두가 예외 없이 살아가고 있으며, 예외가 되는 경우 주변에서는 벌써 한심하다는 말이 나온다. 우리들은 이렇게 서로를 압박해 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환학생 친구들은 입을 모아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촘촘한 거미줄 같은 압박 속으로 다시 떨어지기 싫어서.


 교환학생 생활이 꽃밭뿐인 것은 아니다. 많이 외롭다고 하는 친구도 있고, 프랑스 일처리의 쓴 맛을 보아 정이 다 떨어졌다고 하는 친구도 있다. 나는 누구보다도 서로를 이해하는 한국인 친구들과 프랑스 생활을 주로 보내며 한국의 많은 부분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가족과 친구들, 빠른 행정 처리, 24시간 편의점, 김치찌개와 곱창전골. 특히 최근 아시안 게임으로 인해 한국이 떠들썩한 와중 우리들만 고립되어 조금 적적했다. 학교 다니는 동안 알바 세 개를 하며 벌어 놓은 돈도 거의 떨어져 가고, 졸업 걱정도 되기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환학생을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모든 건 겪어봐야 알기 때문이다. 교환학생으로서의 슬픔과 기쁨, 이방인으로서의 서러움과 새로움, 타지에 홀로 떨어지는 일. 그 누구의 도움도 쉽사리 요청하기 어려운, 외국어로 혼자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밀려오는 것. 홀로 외딴 나라에 여행 가는 일,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는 일. 집, 나의 나라 한국에 대한 소중함, 자부심을 난생처음 파도처럼 맞게 되고 그와 동시에 조국의 얼룩까지 마주하게 되는 일. 하루하루가 도전이자 시험대인 타지에 대응하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일. 교환학생만의 경험이 다신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벌써 그리운 시간들을 부지런히 살아내는 일.


 한국에 돌아가면 나는 다시 그 복작복작한 사회 속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적응할 것이다. 다시 도서관에서 전공 공부를 하고, 대외활동을 하며 스펙을 쌓고, 자격증 공부를 할 것이다. 가슴 라인이 드러나는 나시티를 고이 접어 옷장에 넣고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떠나기 전과 같은 일상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을 직접 겪은 나는 절대 떠나기 전의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닐 것이다. 이미 내겐 새로운 바람이 분다.


보벙 가든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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