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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빈 Oct 21. 2023

프랑스의 김치찌개, 노래방 그리고 테러

프랑스 교환학생의 혼란스러운 하루

 그날 아침에는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난생처음 직접 끓여 본 김치찌개였다. 프랑스에 반년간 살러 오면서 한식 재료를 전혀 가져오지 않은 교환학생은 나밖에 없었다. 캐나다를 거쳐 프랑스로 왔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사실 그냥 별생각 없었던 거고, 이만큼 후회할 줄 몰랐다. 아무리 큰 아시안 마켓을 찾아가도 사골 육수를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찌개를 먹는 건 포기해야 했다.


 국물을 못 먹는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김치찌개, 부대찌개 없으면 못 사는 나였다. 뚝배기에 팔팔 끓이고 조미료 듬뿍 넣은 돼지김치찌개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프랑스 음식은 대체로 삼삼해서 자극적인 맛에 익숙했던 내게 밍밍했다.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마라 엽떡을 사진으로만 감상하며 눈물이 났다. 학교 앞에서 산 바게트 샌드위치에 김치를 넣어 먹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쯤 사골 육수코인을 획득했다.


 굶주림 끝에 획득한 육수코인으로 김치찌개를 만들기로 했다. 냉장고를 보니 전 날 카레를 위해 사 둔 소고기가 상하기 직전이었다. 냄비에 양파를 먼저 볶고, 소고기를 가볍게 구운 다음 김치와 마늘을 때려부었다. 참고로 프랑스는 깐 마늘이나 다진 마늘을 따로 팔지 않아서 직접 마늘을 다 까서 다져야 한다. 마늘을 깐 후 다져 보려고 위생장갑 안에 넣어 숟가락으로 때리려고 했는데,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잘 다져지지도 않아 그냥 통째로 넣어버렸다. 보이다시피 나는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 학교를 다니며 자취를 3년 정도 했지만 나는 편의점 VIP였다. 그 쉽다는 떡볶이를 실패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다. 그렇지만 오늘은 다르다. 든든한 사골 육수 코인이 있기 때문이다. 통마늘이 들어간 소고기김치볶음에 물과 육수 코인을 넣고 팔팔 끓였다. 이걸 실패할 수는 없다.


 국물을 한 입 떠먹자 김치의 감칠맛이 목구멍으로 훅 넘어왔다. 큰일 났다. 실수로 너무 완벽한 김치찌개를 만들어 버린 거 아니야? 두 달 만에 먹어 보는 김치찌개는 황홀한 맛이었다. 물론 내겐 소금도 설탕도 조미료도 뭣도 없었지만 구색을 갖춘 김치찌개를 직접 만들었다는 게 의미 있는 일이었다. 햇반을 데워 단숨에 해치웠다. 완벽한 점심식사였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정이와 무료 야채를 받으러 가기로 했다. 릴에서는 학생들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야채와 식료품을 나눠주는 행사가 있다. 이번에도 구글폼을 미리 작성한 후 줄을 서러 릴 센터 쪽으로 가는데, 거리 분위기가 이상했다. 내 가방만 한 총을 든 군인들이 거리에 가득했다. 뒤숭숭한 거리에서 긴 줄을 섰다.


 1시간을 기다렸지만 구글폼에 문제가 있어 야채를 받지 못한 정이와 나는 스트레스도 풀 겸 근처 노래방에 가보기로 했다. 프랑스에서는 처음으로 노래방에 가보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노래방은 과연 어떨까? 놀랍게도 한국 노래방과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오히려 신식이었다. 가사가 나오는 큰 티비 양 옆으로 작은 터치 모니터가 두 개 있는데, 그중 하나로는 직접 타자를 쳐서 노래를 찾아 예약하고, 다른 하나로는 음식과 술을 주문할 수 있었다. 한국 노래는 K-POP 카테고리에 몰려 있었고, 가사도 한글로 나왔다.


 한국 노래가 많지는 않았지만 신나기에는 충분했다. 블랙핑크, 레드벨벳, 방탄소년단의 노래들을 메들리로 부르며 맘껏 소리 지르고 뛰었다. 원래 노래방에서는 신나게 뛰어놀고 나면 발라드를 아주 눈물 터질 만큼 슬프게 불러주는 것이 국룰이다. 유일한 발라드인 에코의 '행복한 나를'을 목 터져라 불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2시간, 돈은 얼마나 나왔을까? 답은 7.5유로. 한국 돈으로는 만원 정도이다. 물론 모든 프랑스 노래방이 이렇게 싼 건 아니다. 물 한 모금도 구매하지 않았고, 리뷰 이벤트에 참여해 한 시간을 서비스로 받아 이 정도의 가격이 나온 것이다. 나와서 정이한테 말했다. "나 이제 한국 안 가도 될 것 같아!"


  신나게 논 후 집에 가는 길, 한 프랑스 친구로부터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대충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알고 보니 바로 옆 동네에서 테러가 일어나 프랑스 내 안전경보가 최고단계로 올라간 상황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사람이 제일 몰리는 곳에서 순진하게 야채를 받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총 든 군인들이 이해가 되었다.


 프랑스에 슬픈 일이 일어난 시간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내가 야채를 받으러 줄을 섰던 시간이었다. 우산을 안 가지고 다니는 프랑스인의 습성답게 사람들은 비를 쫄딱 맞고 있었다. 그게 눈에 걸려 뒤에 있던 사람에게 내 우산을 빌려 주고, 나는 정이와 같이 우산을 썼다. 두 명의 프랑스인은 내게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훈훈한 장면을 연출할 동안 옆 동네의 한 학교에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테러로 죽었다. 세상은 이상한 곳이다.


 프랑스에 온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한국인한테는 생소하고 기이한 사건이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갈등으로 인해 프랑스 사람들이 죽게 되다니.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 싶지만 현실은 잔인하다. 딱 3년 전 10월, 프랑스의 한 역사 선생님이 참수를 당했다. 2015년 11월에는 파리 곳곳에서 집단 테러가 일어나 130명이 죽었다. 그리고 내가 야채를 기다리던 시간, 또 다른 역사 선생님이 죽임 당했다.


 테러가 일어난 지 일주일이 된 지금은 어딜 가도 경찰과 경비원들이 있다. 학교 건물을 들어갈 때 경비원들이 학생증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조금이라도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경찰이 깔려 있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는 가방 안을 확인한다. 파리의 유명 관광지 또한 테러 위협으로 정상적인 운영을 못하는 상황이다. 어제는 파리 전역 14개 공항이 테러 위협으로 긴급 폐쇄되기도 했다.


 일상을 살다가도 꿈에도 몰랐던 그날 생각이 자주 난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친구와 신나게 놀았던 그날. 학생들을 살리려다가 돌아가신 역사 선생님도 그날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전혀 모른 채로 출근했겠지. 나는 그날 비를 맞는 사람을 보고 우산을 빌려줬는데 같은 시간 어떤 사람은 죄 없는 사람을 죽였다.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고 무의미한 곳이다.


 묵직한 마음이 가슴속으로 가라앉으면 일단 무작정 걷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보낸다. 그렇지만 절대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는, 프랑스 보통의 일상. 김치찌개로 시작해서 테러로 끝났던 나의 하루. 아무래도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구색을 갖춘 나의 김치찌개
프랑스 노래방
밤에도 예쁜 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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