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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빈 Nov 07. 2023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노르망디 여행기- 몽생미셸

프랑스 교환학생 일기

 토요일 새벽 6시, 프랑스 릴에서 노르망디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가볍고도 시린 새벽 공기를 맡으니 내 몸도 둥둥 뜨는 것만 같다. 릴에서 몽생미셸로 가는 버스는 7시간을 달린다. 이 시간을 최대한 편하게 만들기 위해 신발도 벗고 아빠다리도 해 보지만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선잠에 들었다가, 창밖을 바라보다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낸다. 머리에 눌러쓴 헤드폰에서 랜덤으로 재생되는 플레이리스트에서 큰 소리가 들릴 때마다 살짝 잠에서 깬다. 노르망디로 가는 길은 초록색으로 가득하다. 해돋이를 맞이할 시간이 되자 차창이 눈부시게 빛난다. 햇빛을 만난 소와 말이 부드러운 감촉을 뽐내고 있다. 그들을 보면서 감출 수 없는 궁금증이 든다. 노르망디의 넓은 들판에서 자란 소들은 행복할까? 적어도 우리나라보단 낫겠지? 잡초가 지겹지는 않을까? 심심하진 않을까? 그때 옆에서 친구가 말한다. 쟤들도 다 사정이 있겠지. 싱거운 물음에 진지하게 답해주는 친구 말에 웃음이 난다.



  버스는 7시간을 달려 몽생미셸에 도착한다. 바위섬 위에 앉은 거대한 수도원은 멀리서부터 보인다. 넓은 갯벌 사이 외딴섬에 홀로 놓인 거대한 수도원은 기묘하면서도 웅장하다. 708년부터 1000년에 걸쳐 준공한 수도원. 실제로 보면 이걸 어떻게 그 옛날에 만들었지?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때는 708년, 생 오베르 주교의 꿈속에 미카엘 대천사가 나타나 바위섬 위에 성당을 지으라고 말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 오베르 주교는 꿈을 무시했다. 미카엘 대천사가 세 번째로 꿈에 나타났을 때에는 화가 났는지 주교의 이마에 상처를 냈다. 꿈에서 깬 주교는 실제로 이마에 상처가 난 것을 보고 바위섬 위에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몽생미셸은 프랑스어로 성 미카엘의 산이라는 뜻이다.


 유럽에 온 후 수많은 성당과 종교적 예술 작품을 마주하며 종교의 힘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인간의 믿음이란 얼마나 강한 것인가. 신앙에서 나오는 굳건한 의지는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든다. 종교의 힘은 다시 말하면 인간의 힘과 같은 말이지 않을까. 개미는 자기 몸무게의 30배에 달하는 무게도 들 수 있다고 한다. 공기처럼 가볍고 조그마한 개미는 인간 같다. 하찮아 보이는 그들이 때때로 대단한 힘을 내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몽생미셸은 중세 시대를 그대로 품고 있다. 마치 미드 ‘왕좌의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다. 당장이라도 세르세이와 제이미가 비밀리에 대화를 나누는 걸 목격할 것만 같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장소인 ‘다이애건 앨리’ 같기도 하다. 벽돌로 된 벽을 몇 번 불규칙하게 두드리면 숨겨진 장소가 나올 것 같다. 영화 ‘호빗’의 난쟁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 같기도 하다. 당장이라도 말을 타고 갑옷을 입은 남정네들이 나타날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또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오만과 편견’도 생각이 난다. 온갖 판타지 영화와 중세 시대 영화가 이곳저곳 떠오르는 장소. 실제로 몽생미셸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로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라푼젤’, ‘천공의 성 라퓨타’가 있다.



 이번 여행을 함께 한 친구들은 상상력이 풍부하다. “나 여기가 뭔가 익숙한 기분이 들어. 전생에 여기 살던 공주였던 거 아닐까?” 뭐 이런 귀여운 상상을 진지하게 하는 윰. 그런 윰에게 “여기가 옛날엔 감옥으로도 쓰였다는데, 너 전생에 죄수였던 건 아닐까?” 하는 샘. 샘은 또 수도원 지하를 구경하며 “여기 용 같은 거 있을 것 같아” 한다. 나는 한 술 더 떠 “내가 수녀가 되어 여기서 사는 모습이 보여. 도망친 반란군을 숨겨주고 그를 쫓아온 사령관에게 그를 보지 못했다며 뻔뻔히 거짓말을 할 거야” 한다. 그러면 자기가 전생의 공주였던 것 같다고 한 윰도 질색하는 얼굴을 해 보인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공주가 품위 없다 하며 웃는다.



 수도원 꼭대기에서 바라본 사람들은 조그맣다. 카메라 렌즈 속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이 쏟아져 들어온다. 아빠와 놀러 온 아이는 신나서 해안선을 거닐고, 갯벌을 걷는 순례자들은 강풍 부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지를 걷어올린다. 이번에는 하나같이 밝은 표정을 한 관광객들을 눈으로 톺아본다. 수도원이나 성당은 왜 항상 높게 짓는지 알 것 같다. 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며 나의 백성들을 우러러본다. 한 사람 한 사람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어쩐지 아주 사랑스럽다. 그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빌어본다. 비록 내게는 아무 힘도 없지만, 그저 그들에게 조그마한 운이 따를 수 있기를. 그들이 여행 가는 날 비가 그치고 해가 뜨기를. 지각하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 마주하는 모든 신호등이 초록불로 빛나기를. 어떤 우연한 계기의 만남을 선연으로 이끌기를. 결국 어둠을 해치우고 새벽빛을 마주할 수 있기를.



 버스는 몽생미셸을 뒤로하고 옹플뢰르로 달린다. 노르망디의 항구도시라는 정보만을 가지고. 저 멀리 지평선까지 펼쳐진 녹색을 수놓은 평야를 보면서 마음이 잔잔해진다. 내 모든 것만 같았던 근심걱정도 여기까지 따라오지는 못하더라. 버스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도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메모장을 켜고, 너무 늦지 않게 브런치에 글을 올려야지 다짐했던 순간. 나른한 공기 머금은 버스 안에서 나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본다. 풀 뜯어먹는 소, 풀썩 누워 잠에 든 양, 들판을 뛰노는 말을 지나치며 옹플뢰르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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